위티 평등문화위원회의 '위티 활동가의 네모' 기획연재 ⑩
라원은 에너지 넘치고, 센스 있는 위티의 홍보국장이다. 홍보국은 2021년 위티 조직 개편 이후 뉴스레터, 홈페이지의 디자인을 전면 담당하고, 홍보와 디자인 관련한 업무를 주관하는 곳이다. 2021년 이후 홍보국의 행보와 도전의 중심에는 라원이 있었을 정도로, 라원은 늘 위티에서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동시에 홍일과 같이(링크 참조) 위티 회원조직인 대구의 ‘어린보라’에서 활동하는 라원은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로서의 위티와 어린보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라원과 인터뷰를 하며 가장 궁금했던 것은 라원이 주도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홍보국 활동에 대한 것이었다. 활동을 하며 홍보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시도를 해나갈 때 그 동력과 의미를 질문하고 싶었다. 라원은 인터뷰에서도 즐겁고 활기차게 자신의 이야기를 남겨주었다.
[사진] 집회 단상 위에 다섯 명의 활동가가 올라와 있다. 라원은 왼쪽에서 두 번째에 서서 커다란 판 위에 쓰인 ‘스쿨미투 요구안’의 표지를 찢고 있다. ‘스쿨미투가 추방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안’이 쓰인 카드가 찢어진 종이 위로 드러난다. [사진 끝]
하영: 라원님의 사진을 언제 봤냐면, 스쿨 미투 집회에서 처음 본 것 같은데 그렇죠?
라원: 네 맞아요. 그 청와대 앞에서 했던 거.
하영: 맞네요. 그렇게 위티와 라원님이 만나게 되신 걸까요? 라원님이 위티와 연결이 되게 된 계기 혹은 과정을 이야기해주세요.
라원: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스쿨 미투 고발을 했는데, 그 고발의 과정은 길면서도 짧았거든요. 고발한 이후에 모든 일들이 짧게 진행이 되어서, 삽시간에 다 끝났고. 사과도 엄청 빠르게 진행이 되었어요. 그런데 스쿨미투 자체가 빨리 끝났음에도 후유증이 길었어요. 그때 ‘저는 계속 활동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시에 sns로 연락이 왔던 ‘스쿨미투 청소년 연대 in 대구’라는 단체를 만났어요. 그 단체가 지금의 ‘어린보라’이고요. 미투 집회에 참여해달라고 해서 기자회견에 가기도 하면서 처음으로 ‘활동’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일을 하게 되었어요.
하영: 그렇다면 위티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라원: 위티라는 단체를 처음 알게 된 건, 발언 제안이 들어오면서였어요. 서울에서 청와대 앞에 집회를 했을 때, 저한테 스쿨 미투 고발자 이름으로 발언을 하면 어떻겠냐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제가 그때 처음으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라는 것이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사실 그전에는 거의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걸 페미니즘> 책(책 링크) 읽고, 지혜가 강연을 한번 왔었나, 그 정도로 알음알음 알고 위티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었는데,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집회에 가서 발언을 하게 된 것에서부터였어요.
하영: 그 이후에는 위티보다는 어린보라에서 주요하게 활동을 하시면서 연대하는 느낌으로 위티와 연결되다가, 작년부터 홍보국에 들어오신 걸로 이해하면 될까요?
라원: 네, 맞아요.
하영: 어린보라에서도 굉장히 많은 행사들을 하잖아요. 위티와 어린보라의 활동을 같이 하는 건 어떠세요?
라원: 올해 학교를 들어가게 되면서 어린보라에서 역할을 많이 내려놨어요. 왜냐하면, 저희가 운영위원이 4명인데 그전에는 더 적었거든요. 두 명이서 할 때도 있었고 3명이서 할 때도 있었고 사실 지금이 제일 많은 4명. 줄다가, 다시 늘다가, 안정세다가, 이렇게 소규모로 운영되는 단체이다 보니까요.
사실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요. 그러니까 포스터를 만들거나 디자인적인 일은 할 수 있지만, 속기록을 정리한다거나, 회의 안건을 쓴다거나, 회의를 소집한다거나, 그런 것들은 사실 (저에게) 실무 능력이 거의 없는 상태예요. 그래서 많은 실무적인 일은 맡지 않았고. 기획을 하거나, 뭔가 아이디어를 던지거나, 모임 진행을 하거나, 아니면 어린보라 이름으로 연대체에 나가서 발언을 하거나 이런 것들을 했어요. 연대체 담당자 회의에 참석하고 회의 결과를 같이 교류하고. 그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주요하게 이 단체를 이끌어 나간다는 느낌은 잘 받지 못했고, 실제로 그런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어요. 어린보라 내에서 약간 그랬고요.
하영: 라원님에게 홍보국 합류가 새로운 일들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걸까요?
라원: 네, 사실 활동가에게 필요한 자질이라는 게 있잖아요. 제가 발언이나 이런 건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느끼는데. 고민을 한다거나, 책을 많이 읽는다거나, 담론에 대해서 자기 생각이 확고하게 있다거나? 그런 부분들이 있어야 된다고 느끼는데, 저는 그렇지 못한 활동가였거든요. 담론에 대해서 내 생각이 불분명하고. 남들의 얘기를 일단 다 들어보고 싶고, 나는 잘 모르겠고, 책을 읽는 것도 별로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세미나나 발제도 그렇게 즐기지 않는 그런 활동가였는데, ‘내가 활동에 소질이 없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단 말이에요. 활동의 소질이라는 말도 이상하긴 한데. 이제 활동과는 거리가 먼가? 아니면 활동에서 내가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일이 적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홍보국 일을 하면서, ‘잘하는 분야가 달랐던 걸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도 하고 재미있었고 가치도 많이 얻었어요.
하영: 어떤 가치요?
라원: 하고 싶은 걸 다 해봤기 때문에, 홍보국에서. 좋더라고요. 사실 다 활동한다고 해서, 단체 내에서 디자인 얘기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브랜딩이라든지. 특히나 작은 단체에서는 그런 걸 더 하기 힘드니까. 모임이 더 우선이고 브랜딩이나 홈페이지, 이런 거는 작은 단체에서는 인력도 없고 여력도 부족하니까. 하기 힘든데, 위티에서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은 활동을 찾은 것 같아서 가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영: 그럼 라원님이 홍보국에서 하셨던 일 중에서 뭔가 인상 깊었던 일화라든가 아니면 이런 일이 재미있었다-이런 것들이 있으셨나요?
라원: 인상 깊었던 일은 브랜드 스프린트를 했던 건데 저도 사실 브랜딩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던 상태였거든요. 그전부터 위티의 디자인이나 그런 걸 하고 싶다라는 마음은 있었는데. 사실 저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고, 배운 것이 없기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찾아보고 공부하면서 일을 진행할 때가 좋았어요.
브랜드 스프린트(brand Sprint)는 세상에 위티의 가치를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워크숍이다. 위티의 핵심적인 가치는 무엇인지, 위티가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등을 함께 상상하고, 새롭게 정립한 가치를 기반으로 단체의 브랜드 전반을 리뉴얼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브랜드 스프린트 작업 자체를) ‘위티’라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위티가 작은 조직이기 때문이라는 설명보다는, 위티가 가지는 여러 가지 가치들이 있잖아요. 열려 있고, 유동적이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런 가치들이 약간 위티가 지향하는 가치잖아요. 우리가 약간 딱딱한 조직이었다면, 혹은 별로 홈페이지 개선에 별로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 하는 조직이었으면 할 수 없었던 일들인데. 그런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어요). 또 처음 하는 스프린트고, 프로젝트 자체도 사실 다들 처음이실 텐데, 스프린트에도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셨잖아요. 참여해 주셔서 의견도 많이 나눠 주셨고 ‘내가 생각하는 위티는 이런 거다’라고 얘기해 주셨고. 그게 디자인 과정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그래서 저는 즐거웠어요.
하영: 저도 작년에 브랜드 스프린트에 함께 참여하며 라원님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전반적으로 라원님이 위티와 함께하는 과정에서 마음이나 생활의 변화들이 있으셨는지 이런 것들이 궁금해요.
라원: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도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거. 그건 제 생각 변화의 계기가 되었어요. 그 전에는 많이 고민을 했었거든요. 나 이렇게 책 읽기 싫어하고, 이렇게 토론하기도 싫어하고. 근데 이렇게 뭔가를 활동을 해도 되는지, 활동을 혹은 잘 할 수 있는지가 고민이었는데. 그냥 분야가 다른 게 아닐까? 뭔가 회계를 엄청 잘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근데 그 사람이 단체에 꼭 필요한 것처럼.
[사진] 책상 위에 ‘할수있따’가 적혀진 노트북과 화면에 ‘함께 나누고 힘내서 2022년을 꾸며보아요. 새해도 파이팅합시다!! 위티 홍보국 워크샵’이 쓰여있는 노트북이 놓여있다. [사진 끝]
하영: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라원님 위티에서 홍보국 활동을 계속하시고 싶으신 마음이 있으신가요?
라원: 저는 너무 하고 싶어요. 진짜 너~무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아직 이런 말 이상하게 들리긴 하는데 아직 못한 일이 많아서 뭔가 이상해요. (웃음) 아직 못한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더 하고 싶어요.
하영: 어떤 걸 하고 싶으세요?
라원: 그동안 홈페이지, 뉴스레터나 sns처럼 외부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개편하는 데 집중해왔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반면에 내부적인 역량을 키우는 일을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실 반대가 돼야 되는 거 아닌가? (웃음)라는 생각도 했는데 제가 그러니까 내부 역량을 먼저 키우고 외부적인 것들을 했어야 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올해 초에 홍보국 방향을 정하는 회의를 하면서 저희가, (웃음) 제가 과한 의욕을 보여서 진짜 홈페이지와 뉴스레터 개편 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거든요. 처음에 나왔던 게 워크숍을 할까, 우리 내부에서 디자인 워크숍을 할까, 아니면 홈페이지와 뉴스레터 개편을 할까였는데, 제가 개편이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개편을 선택했는데 생각보다 우리가 준비되지 않았고, 그래서 힘든 면도 있었고. 많이 배워야 되는 면도 있었고. 공부를 더 했으면 좋았을 걸, 이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었지만. (웃음) 그래서 내년에도 할 수 있으면 저는 내부적인 역량을 더 쌓고 싶어요.
[사진] 위드레터 홍보 문구. 반짝거리는 흰색 배경 위에 스마트폰 모양과 ‘이번주 위드레터를 지금 확인해보세요!’ 문구가 검정색으로 쓰여있다. 스마트폰 안에는 ‘오늘의 앱 미리보기’로 ‘볼거없톡?’, ‘뉴스짹짹’, ‘위티캘린더’, ‘안궁금그램’과 웹툰 ‘정년이’ 그림이 나와있다. [사진 끝]
하영: ‘내가 활동을 하고 싶다’라고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라원: 저는 재미를 쫓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재밌을 것 같아서 시작했어요. 사실은 홍보국 일도 사실 재밌어서 하고 있어요. 스쿨미투로 고발한 것도 사실 그렇게 엄청 큰 대의가 있었다기보다. 그냥 잘못된 말하는 선생님들 너무 싫었고. 이 선생님들 다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 한 번 혼났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있잖아요. 그런 가벼운 마음에서 시작했고요. 스쿨미투가 그렇다고 해서 물론 가볍지 않아졌지만. (웃음)
하영: 그러면 지금까지 해오셨던 여러 가지 일들이, 라원님이 이야기하셨듯이 재미를 이렇게 쫓을 수 있는 그런 과정이었을까요?
라원: 네, 저는 재밌었어요. 저는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거든요. 어디 강의를 한다거나 얘기를 하는 것도 좋아해서 어린보라에서 그런 기회가 많았고. 그래서 제가 재밌게 활동할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많이 맞춰줬어요. (웃음) 제가 공부하기 싫어하고, 그런 걸 또 알기 때문에. 저한테는 발언할 기회를 많이 주고, 어디 나가는 기회도 많이 주고, 연대체 활동도 제가 할 수 있게 도와주고. 그렇게 많이 도와줘서 또 제가 재미있는 일만 쏙쏙 골라서 할 수 있게 되어서. (웃음)
하영: 그럼 이 위티의 활동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가 됐으면 좋겠는지, 이런 게 궁금해요. 뭔가 위티가 어떤 단체가 되어야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이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이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를 정리하기가 어려우면, 내가 하는 활동이 이렇게 공허하게 남을 때가 있잖아요.
라원: 활동은 결국 나한테 가치를 줄 수 있어야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뭐 사회적으로 뭘 바꿔내는 가치가 아니라, 나한테 즐겁고, 내가 가치 있고, 내가 보람찬 일이어야지, 소진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저한테 (활동이) 어떤 의미냐, 하면 전 ‘재미있는 것’이에요! 위티는 재미있고 다양한 것도 시도해 볼 수 있고, 어떤 변화든 간에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구성원들이랑 얘기해 보면, 그게 또 가능하잖아요. 그래서 또 그 재밌는 거를 또 함께 해 주는 사람도 있고. 위티가 어떤 의미냐, 하면 역시 재밌고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있다.
하영: 라원님이 원하는 위티의 모습도 그런 모습에 가깝겠네요.
라원: 재미있는 공간! 재미지상주의적 인간이라. (웃음)
하영: 저도 그래요!
라원: 맞아요. 저는 위티가 진짜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활동하며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없겠죠. 일이니까. (웃음) 그렇지만 스트레스 받으면서 사람들이 결국에는 재밌어서 활동하고, 재밌어서 위티에서 같이 하고, 또 재밌어서 또 프로그램이나 행사나 그런 거 계속 나오고. 그래서 꾸준히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종종 나에게 활동은 무거웠다. 활동에서 다루는 의제들이 가진 무게 때문이기도 하지만, 활동을 하는 마음은 비장하고 확신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라원의 “꾸준히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활동에 대한 후기는 오히려 활동에서 ‘누군가와 함께함’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하게 했다. ‘활동’에 대한 정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욕구가 ‘활동’을 위한 동력과 아이디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어쩌면 작은 즐거움이 큰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진되지 않고 지속 가능하게 활동할 수 있기 위해서는 대단한 게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치고 스트레스 받는 일들이 대내외적으로 생기더라도 함께 이 공간을 꾸려간다는, 프로젝트를 해나간다는 재미가 생각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라원의 이야기가 활동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상상력을 가져다주리라 생각한다.
* 홍보국에서 준비하는 위드레터로 쭉 위티의 이야기를 받아보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