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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 "활동은 나를 지탱하게 해준 것"

위티 평등문화위원회의 '위티 활동가의 네모' 기획연재 ③

  홍일은 나와 운영위원회, 그리고 위티 내 비공식적인 섹슈얼리티 세미나를 함께하는 동료다. 디지털 성폭력과 관련한 운영위원회 캠프를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혼자 읽기 어려운 책들을 기꺼이 함께 읽자고 제안하는 관계이지만, 홍일과는 정작 ‘직접’ 만난 적은 거의 없다. 그건 홍일과 본격적으로 함께하는 프로젝트가 많아진 시기가 코로나가 유행하는 2021년 이후였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만남은 그 나름의 여러 한계가 있기도 했지만,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홍일과 연결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했다. 

  홍일은 ‘스쿨미투 청소년 연대 in 대구’라는 ‘어린보라’의 전신에서 시작해서 지금도 대구를 중심으로 청소년 페미니즘 운동을 하고 있다. ‘어린보라’는 청소년 페미니즘 담론을 중심으로 능력주의, 퀴어 이론, 청소년 쉼터 인권 문제, 섹슈얼리티 등 다양한 의제를 늘 유쾌하고도 깊게 다뤄온 단체로, 위티의 회원조직이다. 위티와 어린보라가 이어지면서 서로가 확장되고 연결되었던 경험들과 홍일 스스로가 해석하는 활동의 경험을 질문할 수 있었다.   


1. ‘어린보라’와 ‘위티’  


[그림] 홍일의 활동 궤적들: 2013년 아수나로 대구지부 활동가, 2018 스쿨미투, 2018 스쿨미투 청소년 연대 in 대구 -> 어린보라, 2019 위티 회원조직, 운영위원회로 함께함. 


하영: 홍일님은 어떻게 어린보라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홍일: 아수나로 대구 지부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하던 사업이 스쿨 미투 제보 사업이었거든요. 원래는 조그맣게 인터뷰집을 만들고 싶었는데, 제보가 막 수십 건씩 오는 거예요. 그 당시에 페이스북 ‘00학교 소식 알려드립니다.’ 이런 데 공유를 했는데. 누군가 올리고 반응이 엄청나게 뜨거워지면서, 또 다른 사람이 공유하고 이렇게 된 거예요. 인터뷰집만으로 하기에는 이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크다, 이래서 아예 별도의 사업을 하게 된 거죠. 이때 아수나로 사람들 말고 다른 사람들도 불러서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그게 이제 지금 ‘어린보라’가 된 거죠.


[사진] 성평등한 학교를 위한 집회, 스쿨미투 행진 포스터 (왼쪽)와 청소년 페미니즘 프로젝트 보라 1020 포스터 (오른쪽) [사진 끝]  



하영: 그러면 홍일님에게 개인적으로 뭔가 어린보라를 만들게 된 게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 것 같으세요?

홍일: 그전에 해왔던 일의 연장선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더 많은 고민을 받아 앉게 된 거긴 하잖아요. 왜냐하면, 그때는 페미니즘과 청소년 스쿨 미투라는 의제를 청소년 운동이라는 것의 한 갈래로 보고 시작을 한 거니까. 그런데 어린보라를 만든 것은 ‘청소년 페미니즘 운동’이라는 그 자체로 운동을 고민하게 된 계기이긴 하죠.

하영: 그 후에 스쿨미투 집회를 하면서 위티와 어린보라가 연결되게 되었고, 또 2021년에는 홍일님이 위티의 중심부로 들어오기도 했잖아요. 홍일님께 이 두 가지 작업을 함께하는 것은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사진] 위티의 찾아가는 설명회 with 어린보라 (출처: 위티 홈페이지) 활동가 7명이 함께 책상에 둘러앉아 어린보라와 위티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을 나누며 서로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끝]


홍일: 어린보라랑 위티랑 같이 하면서 느낀 건, 위티가 (찾아가는 설명회처럼) 서로 만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걸 느꼈었거든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대구에) 오고, 함께 의제에 관련하여 논의하고 이런 것들이 있으니까. 신뢰가 쌓이면서 어린보라가 위티에 소속돼 있다는 느낌을 되게 강하게 받은 게 있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위티와 함께하게 되었죠.  



2. 운영위원: ‘위티’라는 이름으로 참여하기


[사진] 홍일과 진행했던 운영위원회 캠프 세션인 ‘04년생 지현씨의 일일’ 우리는 일상에서 디지털 매체를 어떻게 감각하고 살아가나요? 일상 속에서 겪는 디지털 성폭력은 없을까요?

하영: 2021년에는 저희 세미나도 같이 하고 운영위원회 캠프도 준비하시고 실무도 많이 하셨잖아요. 이번 해는 어떻게 기억에 남나요?

홍일: 그전에는 이제 위티에 소속된 느낌이긴 했거든요. 그런데 회원조직이 아니라 위티 자체의 운영위원회를 참여하면서는 생각의 변화가 있었어요. ‘캐리비안의 페미들’ 캠프를 하기 이전의 운영위원회는 위티의 주도로 진행하고, 그것을 그대로 따라가는 그림이었어요. 사실 거기서 형식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이번에는 (캠프도 함께)하면서 좀 더 ‘위티’라는 이름으로 참여하게 된 느낌을 강하게 받긴 했죠. 올해 이제 뭐랄까 제가 오래 활동을 했잖아요. 나름대로는 그래서 위티 2기 선본(위티 2기를 준비하는 기구)에서는 ‘(위티에 홍일이) 도움을 많이 좀 줬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를 많이 했었거든요,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지혜가. 그래서 좀 도움이 돼야겠다, 싶었는데 막상 이제 닥쳐보니까 제가 모르는 영역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러니까 실무적인 부분이 좀 어려웠어요.

하영: 예를 들면 어떤 부분이 있었어요? 

홍일: 그러니까 캠프라는 것 자체를 처음 해보는 거죠. 온라인 캠프는 더더욱 그렇고. 그러니까 이제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가 전혀 감이 안 잡혀 있는 상황이고, 하다못해 회의록 같은 것들도 (감을 잡기 어려웠어요). 제가 지금 다른 상근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거기서 일하면서야 실무를 배우면서 좀 더 많이 늘었지, 그전에는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경우가 되게 많았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생각보다 제가 모르는 실무가 너무 많아서 미안해진 것도 있고, 제 스스로도 어려운 것들이 좀 많이 있었죠.

하영: 그렇군요. 그럼 그 외에도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을까요? 

홍일: 활동에서, 어린보라에서도, 다 마찬가지인데 나이, 성별, 보이는 성별도 그렇고. 이런 것들이 작용할 때 제가 가지는 권력이라는 게 있잖아요. 어떻게 주변 사람들과 권력 차이를 최대한 줄일 수 있을까, 이런 게 어려운 부분이죠. 그런 게 좀 되게 힘들다기보다는 좀 고민이 많이 되었죠.   



3. 섹슈얼리티 세미나: 중심되기에서 벗어나기


하영: 그렇다면 홍일님께서 위티에서 활동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요? 

홍일: 위티랑 연결된 것 중에서요? 개인적으로 (섹슈얼리티) 세미나였던 것 같기는 해요. 


  섹슈얼리티 세미나는 위티 내 비공식 세미나로, 퀴어, 청소년, 신체, 디지털 성폭력 등 다양한 의제를 섹슈얼리티라는 주제로 엮어서 공부하는 모임이다. 이 세미나에는 현재 홍일, 아고, 도현, 하영과 시기별로 결합하는 유경과 지혜가 함께하고 있다. 세미나에서는 혼자 읽기 어렵거나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나 책을 공부하고, 관련한 의제를 어떻게 단체에서 녹여낼지 고민하는 공간이다.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세미나요. 그게 아까의 고민과도 연결이 될 수 있는 건데. 제가 이제 활동이 어느 정도 쌓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보고 싶은 거랑 듣고 싶은 게 다르잖아요. 서로 그리고 고민도 어쨌든 다를 수밖에 없고. 그랬을 때 (기존에) 세미나를 진행하게 되면 어떻게 되더라도, 제 중심이 되는 거예요. 되게 자연스럽게 제 중심이 되는 걸 피하고 싶은데, 이번 세미나에서는 그런 부분은 없어왔던 거니까. 저는 그 경험이 되게 좋았어요. 그냥 배우는 느낌으로 갈 수 있는 게 좋았어요. 한편으로 이 세미나의 아쉬울 수도 있는 부분이기는 한데, 이게 비공식이라는 거? 이런 게 좀 아쉬운 부분이거든요. 예전에는 정세국에서 의제 관련한 고민을 했었잖아요. 그게 잘 안 되긴 했는데. 어쨌든 그런 것들을 고민할 수 있는 자리를 (섹슈얼리티 세미나처럼) 좀 많이 만들면 좋겠다. 이런 게 있어요. 왜냐하면 그게 안 되니까 담론이 만들어지는 것도 내부와 외부에서 모두 잘 공유가 안 되는 느낌이긴 한 것 같아서.

하영: 그럼 어떤 이야기들을 해보고 싶으세요? 

홍일: 저는 교차성인 것 같긴 해요. 아무래도 제가 이제 청소년 페미니즘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도 스쿨미투에 의한 것이기도 했는데, 그보다도 이 청소년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의 교차성이 어떻게 만나는가였거든요. 여성 청소년 얘기도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그거 말고 다른 얘기들을 좀 더 많이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좀 있었거든요. 그런 고민들?


[사진] 책 ‘퀴어 이론 산책하기’를 읽고 홍일이 남긴 질문들. 왼쪽에는 책의 그림과 오른쪽에는 말풍선이 세 개가 있다. ‘사업으로서의 K-POP은 퀴어한가? 퀴어한 이미지의 차용은 ‘퀴어하다’고 볼 수 있는가? 퀴어베이팅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퀴어한 ‘소리’는 존재할까?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장르로서의 K-POP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어떤 면들을 두고 ‘퀴어하다’고 말하는가? [사진 끝]   




4. 의심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   


하영: 그럼 혹시 활동을 하면서 ‘이거 놓고 싶다?’ ‘왜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부정적인 마음이 들었던 시간들도 있었을까요?

홍일: 전 약간 반대였는데. 저는 병역 문제, 아니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힘들었던 경우가 사실 되게 많았었어요. 근데 그때 활동이라도 안 잡고 있으면 내가 진짜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약간 버틴 것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오히려 이게 약간 더 지탱하게 해준 거긴 하죠.

하영: 어떤 점에서 그러셨던 것 같아요?

홍일: 그냥 이제 일단 개인적으로 되게 상황이 안 좋았을 때는 그냥 진짜로 공장이나 알바나 이런 거 하고. 되게 지쳐서 뻗어 있고. 그래서 상황이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흘러가는, 기계처럼 일하고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뭔가 저한테 이 노동이 유의미한 의미가 되는 것 같지도 않고, 내가 소모된다는 느낌을 되게 많이 받았는데 생활에서. 활동은 제가 고민할 수 있고, 많이 얘기할 수 있잖아요. 이게 잘 안 풀리더라도. 이걸 잡고 있음으로써 제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실천할 수 있다는 느낌. 

하영: 마지막으로 위티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으신지, 또 위티가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의견이 궁금해요. 

홍일: 활동은,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명확한 의제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발전시켜가는 과정이면 좋겠고. 그리고 공간은, 활동 공간으로서는 지금처럼 계속 이게 맞는지 고민하고 질문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그게 필요하다고 느끼는 게, 그러니까 그냥 어느 순간 안주해 버리면 ‘사실은 괜찮지 이 정도면’ 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것 같아요. 계속 귀찮으니까 안 하고 이래버리면 어느 순간 공동체가 되게 망가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계속 의심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하영: 중요한 포인트네요. 관성에서 벗어나는 일. 그럴 때 홍일님에게 활동가가 된다는 건 어떤 것이었나요? 스스로 활동가라고 부르게 된 순간이 있다면? 

홍일: 그게 되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한다고 하고 있는 게 되지 않을 때 제일 힘들었거든요. 이게 관계를 만들어 가는 거든, 아니면 뭔가 사업을 만들어 가는 거든, 이런 게 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될 때가 저는 나를 활동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인터넷에 있는 진보적인 사람, (웃음) 소위 그런 사람과 뭐가 다르지? 이런 고민이 있었거든요. 근데 그래서 그런 것들을 조금씩이나마 실패하든 성공하든 계속 하고 있다고 느낄 때, 내가 지금 활동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하영: 뭔가를 계속해서 실패하더라도 시도하는 과정들, 계속 기획하고 어떤 목표를 위해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과정들인 걸까요?

홍일: 그런 것도 있을 거고, 사실 그것보다는 그걸 위한 관계망을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죠. 그게 안 됐을 때는 저 혼자서 얘기하고 떠들고 이런 거였는데, 제 스스로도 그냥 이건 나 혼자 하는 거지 무슨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되게 많이 했었거든요. 관계망이라고 함은, 어린보라를 예로 든다면, 사람들이 들어오고 그래서 같이 고민하기 시작하고 서로 뭔가를 만들어 가고, 이런 것도 있을 거고요. 그다음에 지역에서 계속 연대를 가거나,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이제 다른 단체의 사람들도 우리를 기억하고 우리한테 또 연대하기도 하고 이런 과정들.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에게 활동이 어떤 의미인지와 활동 공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연결하는 활동가가 홍일이라는 걸 느꼈다. 활동을 하면서 실패하기도 하고, 모든 것이 쉽게 풀리지는 않지만, 활동이 혼자 만드는 일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함께 형성해나가는 작업이라는 걸 강조한 홍일의 이야기는 깊게 남았다. 그래서 홍일이 어린보라와 위티 안팎에서 맺고, 확장해나가는 관계들이 만드는 논의들이 단단했구나, 싶었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물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을 홍일과 앞으로 만들어나갈 이야기들이 오히려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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