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엽시계 May 03. 2022

당신의 어머니를 뺏길 수도 있다.

약장수

이 약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지금이야 없지만 70-80년대만 하더라도 동네 넓은 길가에 약장수들이 나타났다.


건장한 남성 여럿이 지금은 보기 어려운 차력 쇼를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맨손으로 차돌 격파, 강철 휘어 뜨리기, 입으로 불을 뿜는 불 쇼 등등..


그런 공연을 하다 잠시 약 봉투 하나를 내보이며 설명을 한다.

그 약은 먹으면 천하장사가 되고 안 낫는 병이 없는 만병통치약이다.

 의심을 잠재우기 위해 구경꾼 중 남성 한 명을 불러내어 그 약을 먹인다.

그 약을 먹은 남성은 그의 설명처럼 정확히 5분 후 천하장사가 됐다.


차력을 보인 사람들처럼 맨손으로 차돌을 격파하고 머리로 벽돌을 우습게 격파한다.

그 남성은 감탄하면 말한다. “우와! 정말 나도 이런 걸 할 수 있네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약을 사고 자리를 떠난다.


약장수와 한 패라는 걸 그때는 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까?     

그 시절 약장수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볼거리가 많지 않았던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들의 공연을 즐겁게 보며 약을 사주기도 했다.      

    



그런 약장수들은 꽤 오래전 홍보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등장했다.

제품을 홍보한다고 할머니들께 광고하며 선물도 공짜로 드리고 효도 공연을 한다고 꾀여 홍보관으로 할머니들을 유인했다.     

열정적인(?) 공연 중간마다 온갖 건강식품이나 용도가 불분명한 자석요 등을 할머니들께 비싸게 팔아 이익을 챙긴다.


차력 쇼를 선보였던 과거의 약장수는 발전된 시대에 맞춰 새로운 방식으로 그렇게 나타났다.     


공짜로 준다는 계란 한 판, 휴지 한 팩의 대가는 너무 컸다.

할머니들은 자녀들과 불화를 겪었고 외상으로 사들인 홍보관 물건 값을 갚기 위해 대출을 받는 일도 생겨났다.     


큰 사회적 문제화되어 뉴스나 시사 프로에 자주 나와서 인지 지금은 그런 자들을 보기 어려워졌다.

지금도 존재하는데 내가 모르고 있을 수도 있겠지.     




나의 어머니도 홍보관을 다니셨던 적이 있다.


홍보관에 다니시지 말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행히 나의 어머니는 물건을 마구 사 오시지도 않았고 설령 사 오신다 해도 집에 필요한 물건이라 그나마 안심이 됐다.

물론 정상가보다 더 비싼 값에 사 오시지만 그들에 대한 노동의 대가라고 생각하며 애써 참았다.     


홍보관이 그렇게 재미있냐고 어머니께 여쭌 적이 있다.

어머니가 대답하셨다.


“아이고~ 젊은 애들이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살살거리면서 얼마나 애교를 떨어대는지 좋아 죽는 할망구들이 한둘이 아니다.

친아들도 그렇게는 못 하지.. 암 ~ 못하고말고..”


마치 나 들으라고 하는 말씀 같아서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그래! 바로 그런 이유였다.

뉴스에서 보도하듯이 단지 그 할머니들이 세상 물정 몰라서, 제대로 배우못해서 그들에게 속아 물건을 비싸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외로워서.. 자식들이 보고 싶어서 할머니들은 홍보관으로 했던 것이었다.

그들이 장사를 한다는 걸 알지만 공연을 하는 순간만큼 그들은 할머니들의 아들이었고 딸이었다.

그것도 친아들도 안 떠는 온갖 애교를 살살 거리며 알랑방귀 뀌어대는 그런 다정한 아들.


그런 아들이 물건을 못 팔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지갑을 연다.

영업인들의 첫 고객이자 단골 고객이 바로 어머니였던 것처럼...     




독립 영화 중에 “약장수”라는 영화가 있다.


자신의 아픈 아들의 약 값을 벌기 위해 홍보관의 약장수가 된 주인공.

자신의 아들을 위해 그는 누군가의 아주 다정한 아들이 된다.     


홍보관에 모인 어머니들은 그의 모습에서 자신의 아들을 발견한다.

그렇기에 알면서도 속아주는 우리의 어머니처럼 그들에게 지갑을 연다.     




지금은 가정을 이루면 분가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는 것도 바쁘고 사는 곳도 다르다 보니 연락을 잘 안 하게 된다.

기껏 명절이나 되어야 자신의 자식을 볼 수 있으니 그 외로움이야 오죽하실까.     

그러기에 어머니들은 홍보관에 모여 나름의 위안을 받는 것이 아닐까?


세상 물정을 모르고 못 배워서가 아니라 자식을 보고 싶은 그리움에 자식을 대리하는 그들에게라도 자식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말이다.     


어머니 찾아가 뵌 적이 언제인가요?

어머니께 직접 전화를 드려 안부를 물어 보신 게 1년에 몇 번이나 되시나요?    


지금 바로 당신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목소리만이라도 살살거리며 애교를 부려 보심은 어떨까요?


홍보관 약장수에게 소중한 우리의 어머니를 뺏겨서야 되겠습니까?
이전 13화 이제는 첫사랑과 헤어져야 할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