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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엽시계 Aug 10. 2022

같은 말도 내가 하면 멍멍이 소리가 된다.

미녀는 괴로워


친구들과 흥겨운 술자리에서 수다가 이어진다.

남자들 이야기가 늘 그렇듯이 정치 아니면 스포츠 이야기다.

한국 정치가 왜 이렇게 엉망이냐고 한탄하다 급기야 토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멋진 말을 한마디 한다.     

나의 멋진 말을 들은 친구들의 반응...

“오우~~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그거 누가 한 말이냐?”


친구들은 믿지 않지만 분명 순간 나의 머릿속에서 생각해낸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어떻게 이런 멋진 말을 생각해냈을까 나 자신이 기특하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 말을 내가 한 말이라고 절대 믿지 않는다

나는 친구들이 아는 만큼만 아는 같은 수준에 똑같이 무식한 녀석이니까.          


나와 동등하거나 조금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의 말은 귀에 잘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분명 좋은 말이고 옳은 말이다. 내가 귀를 먹은 것도 아닌데 왜 잘 들리지 않을까?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냥 듣기 싫기 때문에 듣지 않는 것뿐이다.

왜 듣기 싫을까? 혹시 상대가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우월의식 때문인가?

아니라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조언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관심을 두지 않는데서 끝난다면 그나마 낫다. 앙심이나 품지 않으면 다행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팀원들과 해나가고 있다.

팀장은 팀원들에게 자신이 결정한 프로젝트의 방향을 열심히 설명한다.

이때 한 팀원이 감히 팀장님이 결정한 사안에 대해 겁도 없이 태클을 건다.

“팀장님! 이건 무리인 것 같습니다. 현 시장 상황을 보면 이렇게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말세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감히 팀원 따위가 팀장님이 결정한 사안에 이견을 제시하다니 말이다.

팀장님 열받았다. 하지만 팀원들이 보는 앞에서 화를 낼 수는 없다.

우리의 팀장님은 팀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멋진 팀장님이니까.

참고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회의는 끝났다.     

자리로 돌아가는 팀장님의 얼굴이 밝지 않다.

팀장님은 속으로 말한다.

“네가 감히 나를 가르쳐?”, “네가 걱정하는 점은 나도 알고 있었어”     


며칠 후 다시 재개된 프로젝트 회의. 팀장님의 결정은 변한 것이 없다.

다른 의견을 제시한 팀원은 자신의 의견이 무시당한 현실에 의욕을 잃었다.       

        

조직 생활을 해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 겪는 일이다.

소위 상관이라 불리는 윗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부하 직원들의 조언을 잘 듣지 않는다.

자신은 열린 사고를 가졌으니 언제라도 다른 견해가 있으면 말하라고 해놓고 정작 말을 하니 무시한다.

다른 의견을 내지 않으면 왜 의견을 내지 않느냐고 닦달한다.

의견을 말하면 무시하고 안 하면 안 한다고 뭐라 한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몰랐던 지식을 그가 알려주면 그건 나도 알고 있는 것이라고 우기기도 한다.

분명 몰랐던 내용이지만 그가 알고 있기에 나도 알고 있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보다 뛰어난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와 반대로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 알려주면 그건 새로운 세상의 보물과 같은 지식이 된다.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된 김아중 주연의 영화 “미녀는 괴로워”


‘한나’는 뛰어난 노래 실력을 지녔지만 기획사에서 다른 가수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대역 가수로 일한다.

 뚱뚱하고 못생긴 한나는 뛰어난 노래 실력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도 관심을 갖지 못하고 주위의 놀림감이 될 뿐이다.

새로운 삶을 소망하던 한나는 기획사에서 잠적하고 성형외과를 찾아가 리모델링 수준의 수술을 받고 아름답고 몸매도 예쁜 여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기획사를 찾아 간 한나. 누구도 한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녀의 노래를 들은 기획사는 그녀를 “제니”란 이름으로 데뷔시키고 제니는 단숨에 스타에 오르고 자신이 짝사랑하던 남자의 사랑도 얻게 된다.

나중에 그녀의 정체가 밝혀졌지만 그녀의 사연에 많은 팬들은 그녀를 이해하고 사랑해준다.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지만 못생긴 “한나”는 다른 가수의 목소리를 대신했고, 아름다운 “제니”는 스타성을 인정받아 가수의 꿈을 이룬 것이다.

분명 같은 사람이 부른 노래였지만 외모에 따라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천지차이였다.     


분명 같은 이야기를 나에게 전해줘도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하는 말은 뭘 몰라서 하는 헛소리고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전해주는 말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으로 들린다면 는 영화 속에서 “한나”의 아름다운 목소리의 가치는 모르고 "제니"의 아름다운 외모만을 중시한 사람들 중 한 명일지 모른다.          


나에게 누군가가 조언을 해줄 때 그 사람의 지위나 사회적 위치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 그 자체로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성철 큰 스님의 유명한 말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아는 명언이다.

내 친구들 중에 이 명언을 모르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 앞에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내가 지은 말처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친구들 반응은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뭔 멍멍이 소리야?” “저게 비싼 밥 먹고 쉰 소리 하고 자빠졌네”

“야! 인마~ 그럼 산이 산이지 물이냐?”


만일 큰스님이 그 친구들한테 그 말을 했어도 그렇게 반응했을까?     

같은 말을 했음에도 큰 스님이 하셨을 때의 그 말씀은 속세 중생들의 우매함을 깨닫게 하는 아름다운 명언으로 기억되었지만 내가 했더니 그 명언은 친구들에게 멍멍이 소리로 기억되고 말았다.          


이 땅에 현존해 계시는 누군가의 선배님들!

후배의 충고와 조언을 아직 뭘 몰라서 하는 소리로 치부하지 말아 주세요.

그의 사회적 계급이나 경력은 미천할지 몰라도 그가 가진 지식은 상상 이상입니다.

어린아이한테도 배울 것이 있다는데 하물며 다 큰 성인인 후배한테는 얼마나 배울 것이 많겠습니까.

그의 사회적 지위라는 껍데기에 연연하지 마시고 그가 전하고자 하는 말의 진정성을 들여다 봐주세요.

그렇다면 당신은 세상 누구보다 멋진 선배님이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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