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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엽시계 Aug 16. 2022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할렐루야

집을 리모델링하기로 결심했다.

96년도 지어진 우리 집, 당시에는 나름 돈을 제법 들여 보기 좋게 지었다고 자부하지만 세월의 흐름 앞에 집은 이제 완전 구식이다.     

리모델링을 하려고 하니 누구한테 맡겨야 할지 고민이다.

인터넷을 켜고 검색창에 “리모델링”을 치니 수 십 군데의 업체가 나온다.

죄다 자신들의 시공 사례와 후기들을 자랑한다.

후기만 보면 이 업체만큼 뛰어난 업체는 세상에 없다.     


고민의 시간이 계속되던 중 동네 철물점 사장님이 생각났다.

우리 동네에서 30년 넘게 가게를 하시고 동네 집들의 수리를 도맡아 하시는 분.

간단한 수리만 하는 걸로 알고 일단 바닥 배관 공사 부분을 맡기려고 연락을 했다.

그런데 그분이 리모델링도 하신다는 걸 알게 되어 견적을 의뢰했다.

공사 금액은 내 예상을 초과했지만, 그분의 인품을 알기에 공사 전체를 맡겼다.      

    



공사 시작 전 친구와 술자리에서 리모델링 이야기를 했다.

친구 曰 “계약서는 제대로 썼냐? 하자 보증보험 증권은 받았냐?”

계약서? 그런 건 쓰지도 않았다. 그냥 구두로 계약금 얼마 공사 후 잔금 얼마 이런 식으로 약정을 맺었다.

동네 장사하는 사람이 동네 사람 상대로 사기 칠일은 없을 것이란 확신이 있어서였다.     


친구는 나보고 정신 나간 놈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믿을 놈 어디 있다고 그 큰 금액의 공사를 계약서 한 장 없이 하냐는 것이다.

가족한테도 사기 치는 세상인데 동네 사람한테 사기 치지 못하겠냐고 말한다.         

 

그래! 맞는 말이다.

세상에 믿을 놈 어디 있다고 계약서 한 장 없이 그런 계약을 한단 말인가?

계약서를 꼼꼼하게 작성해도 사기당하고 법정을 왔다 갔다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지 않은가. 그러다 공사는 해보지도 못하고 고민만 하는 시간이 계속될 것 같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서 내린 결론은 “그래 그 사람을 믿어보자.”       

  

드디어 대망의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었다.

지인은 공사를 날림으로 할 수 있으니 집주인이 감시를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나는 공사 시작 후 일절 참견을 하지 않았다.

아니 공사가 시작된 후 일 때문에 지방에 내려갔고 사장님한테 모든 걸 믿고 맡겼다.

솔직히 내가 공사를 지켜본다고 뭘 알아?

속이려고 작정하면 지켜보고 있어도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면 나야 “아! 네~”라는 대답밖에 못할 건 뻔한데.          


3주간의 시간이 흘러 공사는 끝났고 리모델링이 완성된 집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깔끔하게 잘 돼서 믿고 맡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금을 다 치르고 나니 사장님이 나에게 한 말이 있다.

“아무 의심 없이 저를 믿고 모든 걸 맡겨 주셔서 정말 마음 편하게 공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공사를 마친 집을 보니 계약에 없던 부분까지 수리를 해주셨다.

나한테 감사의 의미로 해준 서비스 공사란다.  

  



한국 코믹 연기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배우 박중훈이 주연한 영화 “할렐루야”     

사기와 협박으로 살아가는 전과 덕건.

출소 후에도 다른 사람을 협박하여 돈을 갈취하는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사고 피해자는 개척교회 목사,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그의 지갑에서 신분증과 편지를 발견한다.

그가 한 대형교회로부터 개척교회 건립자금 1억을 기부받기로 된 사실을 알고 기부금을 가로채기 위해 목사로 신분을 위장하고 교회에 잠입한다.     


배운 것 없고 사기로 살아온 그가 목사의 흉내를 내는 것은 어려웠지만 나름의 방식을 동원하여 신도들의 고민을 해결해 나가고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얻게 된다.

불순한 목적으로 교회에 잠입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을 보며 덕건은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덕건은 개척자금을 받아내는 데 성공하지만 경찰에 자수하고 교회를 찾아가 사죄를 한다.


남을 속이고 배신하며 살아왔지만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의 믿음만큼은 차마 배신할 수 없어 과거의 자신과 안녕을 고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난 것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다.

내가 나를 못 믿을 때가 있는데 하물며 남을 믿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웃과소통이 단절된 세상이 만든 결과물이겠지.

하지만 언제까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믿음이라 하지 않는가.

믿음이 아니고 사랑 아니냐고? 내 말을 믿지 못하시네.

세 단어를 가나다순으로 배열해 보시라. 믿음이 먼저지.

믿음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라 말할 수 없다.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이 없는 소망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이래도 믿음이 제일이라는 내 말을 믿지 못하시는가?

          



내가 누군가를 믿지 못하면 상대 또한 나를 믿지 못한다.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만 하다 보면 빈곤의 악순환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믿음이라는 것이 사라진 빈곤한 세상에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누군가를 전적으로 믿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믿었다가 뒤통수 맞고 후회하는 사람이 많으니 섣불리 믿을 수도 없다.     

누군가를 무조건 믿으라는 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사람, 내가 오랫동안 지켜봐 온 사람조차 의심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집을 리모델링할 때 사장님을 의심 없이 믿고 맡겼기에  사장님은 나의 믿음에 보답을 해주었고,

사기꾼으로 살아온 덕건은 자신 믿어준 사람들로 인해 새 삶을 얻게 되지 않았는가.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그를 믿음으로 대한다면 그가 정말 막 돼먹은 인간이 아닌 한 나의 믿음에 보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만일 그래도 뒤통수를 맞는다면? 그건 아마도 나의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겠지.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지만
믿음은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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