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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하니 Apr 16. 2022

우리 엄마에게 배신당한 사람들

엄마가 날 두고 떠났다. (3)

자살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심리 중에 이런 게 있다고 한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치는 사람이야. 내 가족들도 차라리 내가 없어지는 게 편할 거야.'


자신이 죽어 없어지는 게 주변 사람들을 위한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도 혹시 그런 생각을 한 걸까. 만약 그랬다면 내가 절대 아니니 말도 안되는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는 엄마를 사랑하고 필요로 한다고 단호히 말해줬을 텐데. 지금에서야 그것을 확인할 길이 없으니 뼈에 사무치게 아쉽다.






내가 한창 우울증으로 가족에게 말 못하고 힘들어 하고 있을 때, (현재 나는 일 년 째 정신과에 다니고 있다.) 자살을 생각하면서도 내가 절대 하지 않은 생각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내가 가족에게 민폐일 것이라는 것. 내 가족도 차라리 내가 없는 것이 편할 것이라는 생각.



엄마의 경험으로 인해 나는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오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얼마나 날 필요로 하고 사랑하는 지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도 그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그래서 정말 힘들고 힘들어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오면 가족에게 솔직히 모두 털어놓고 도움을 구하자고 생각했다. 


'나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 도와줘.' 하고.


내가 그 어떤 짓을 한다고 해도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그것이 내 죽음보다 최악일 순 없을 테니까.


실제로 그 순간이 왔을 때 나는 가족에게 폭탄 발언을 하듯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우울증이 정말 심하다는 것, 매일매일 자살을 생각할 만큼 힘들다는 것, 모두 다. 다소 과격하고 극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엄마와 달리.



혹시라도 이 글을 읽으러 들어온 분들 중에 스스로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라는 생각이 들어 자살을 생각하고 있거나 내가 자살하고 난 뒤 남겨진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당장 그 터무니 없는 생각을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그 어떤 인간 말종이라도 당신 가족들은 당신이 살아있길 바란다고, 혹여나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살아서 그 책임을 지길 원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엄마는 그 단순한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아니면 알면서도 쥐뿔만큼도 관심이 없었거나.



그래서 우리 엄마는 우리 가족을 남겨두고 자살을 했다.





나는 종종 엄마의 죽음을 두고 '엄마가 우리를 배신했다'고 표현하곤 한다. 주로 상담실에서 감정이 격해졌을 때 하는 말이지만 본질적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엄마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모두 배신하고 죽음을 택했다. 어떤 기대냐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도 계속해서 있어줄 거라는 기대.


최근에도 엄마의 친구분들을 종종 만나곤 하는데, 그 분들이 가끔 말씀하신다.


"네 엄마가 지금 있었다면 정말 재밌게 같이 놀고 있었을 텐데."


이제 학원 뒷바라지할 자식들도 다 컸고, 대학도 다 보내놨으니 시간에 쫓기는 것 없이 여유롭게 놀고 있었을 텐데.


그 분들의 그런 말을 들으면 생각한다. 우리 엄마의 친구분들은 앞으로 당신들의 인생에 소중한 친구가 당연히 함께할 거라고 생각하셨겠지. 같이 놀러가고, 골프를 치고, 커피를 마시면서 함께 늙어갈 거라고 생각하셨겠지.


그 기대를 배반한 건 바로 우리 엄마다.



엄마가 죽고 나서 우리는 살던 집을 급하게 팔고 마치 도망치듯 이사를 떠나야 했다.


그 집은 아빠가 평생 살 거라고 생각하며 샀던 집이었는데, 그런 식으로 그렇게 떠나야 할 줄 아무도 몰랐다. 아빠는 엄마와 함께 늙어갈 집을 사며 당신의 남은 인생에 배우자가 영원히 함께할 거라고 기대했겠지만 역시 우리 엄마는 그 기대도 배반해버렸다.


나의 기대를 말하자면, 뭐, 말하기도 입 아프다.


당장 생각나는 것부터 대학 입시, 직장, 결혼식, 출산, 데이트, 엄마와 딸이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생각나는데, 그걸 모두 말하자면 에이포 용지 백 장으로도 모자를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 옆에 엄마가 있었다면 내가 해주고 싶고, 사주고 싶은 것 또한 에이포 백 장을 넘어가지 않을까.


그 모든 것들을 버리고 죽음을 택한 건 엄마다.


내가 말을 조금 심하게 하는 것 같나? 엄마가 이 글을 본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하지만 뭐라고 말이라도 하고 싶으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날 두고, 우리를 두고 가지 말았어야지.


이건 모두 엄마의 탓이다.



가끔 나는 평생 남을 먼저 생각하고 이타적으로 살았던 엄마가 생의 마지막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 한 번 이기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 엄마의 자살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이렇게 생각한다고 마음이 편해지진 않지만 그것이 엄마의 선택이니까, 엄마는 그 선택을 해서 후회했을까. 만족했을까. 남겨진 우리는 영영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엄마 스스로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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