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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웰 Apr 16. 2022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

잠깐 쉬어가자

사업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고 비용을 받는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도움을 주었을까? 

돈을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는 가치를 제공하려고 노력해왔다. 이제 나는 돈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다다랐다. 


가끔 머릿속이 멍 해질 때가 있다.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하고 싶지 않을 때, 나는 주로 멍해진다.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월 그렇게 할라 그래> 라는 노래 제목처럼 그래, 그냥 이렇게 멍하니 있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꼭 뭔가를 하려고 애를 쓰고 노력하고 그러다 번아웃이 오면 지쳐서 또 멍 하고. 그냥 이 모든 사이클이 나의 인생이다. 삶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그걸 이제서야 깨닫는다. 내가 나보다 오래 산 사람들을 무슨 수로 계몽한다는 말인가. 내가 너무 교만했지. 


지금은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들도 나 만큼이나 귀찮음을 느낄 테고, 또 돌봐야 할 가족이 있다. 긴 시간 혼자 지내온 나로서는 이해 하지 못하는 아주 많은 복잡한 일들에 둘러 싸여 있지 않을까. 그게 아무리 소소한 일이라도. 인간은 누구나 힘들다. 다만 자신의 아픔이 타인의 아픔에 비해 너무너무 클 뿐이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생각 해 보자. 나 말이다. 내가 책을 쓴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진정으로 나를 위해 쓰는 것인지. 왜 지금 멈추어 있는 것인지. 

그럴듯해 보이는 건 물론 중요한 포지션이기는 하지, 나도 안다. 그래야 타인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 지금 한국은 온갖 자기계발서의 홍수이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 이렇게 해야 할 수 있다, 부자가 되려면 이렇게 해라,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약간의 차이로 풀어 쓴 저자들. 그래, 어차피 방법은 비슷해, 알고 있지만 행동하지 않았기에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지. 나 역시 지금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 행동하지 않는 상황을 잘 인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급류에 몸을 맡겨야 하는걸까.


나는 종종 나를 사랑하는가에 대해 자문을 한다. 너무 과하게 사랑해서 나르시시스트가 될까 두려울 만큼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한다. 그래서 내 인생이 남들보다 더 나았으면 싶은 거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나를 낳아준 부모님을 많이 원망했다. 왜 나에게 더 나은 삶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더 많이 지원 해 주지 못했을까?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나는 알게 되었다. 그게 최선이었다는 것을.  그 시절의 난 그저 부모를 핑계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는 걸. 인간은 어떤 위기가 있어야 극복을 하고 더 발전할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면 성장하게 되는 게 진리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걸까.


내가 아닌 타인을 돕는 다는 것. 그 기준을 나로 두는 것 부터가 문제였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한심해 보일 정도였다. 수시로 남의 험담을 하고, 없는 소문을 만들어 내거나 태어나 처음 미역국을 끓여보는 사람처럼 소문을 끝없이 불리고 키우고 있었다. 나는 그게 참을 수 없었다. 나 자신이 모든 일에 정의롭다 생각했다. 내가 하는 행동은 전부 정당했고 다 이유가 있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유치한 합리화였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해야 하는데 그걸 왜 이해를 하려고 애를 썼나 모르겠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 사람의 길을 가게 하면 되는데 그걸 바꿔보겠다고 온갖 아집을 부렸으니 상대는 나에게 강요와 압박을 느끼고 결국 어떻게든 나에게서 벗어나려 계속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해와 바람의 바람이었다. 이제서야 따스해지고 싶은 바람. 

나는 해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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