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알아간다. 나이 마흔이 넘어...
오랜만에 책상에 앉았다. 아니, 사실 계속 앉아있었지만 쫒기듯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외부에서 들어온 일이든 내가 만들어 낸 일이든....
1월이 되었음에도 새로운 마음가짐은 커녕 새로은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마무리해야하고 준비해야할 것들로 가득했던 12월과 1월의 중순이 지나고 해방되고 싶어서 가족들과 제주도를 왔다.
정말 육지로 부터 육체적인 분리, sns으로부터 해방, 일로부터의 자유,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부터의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사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일이 잡히지 않을 만큼 벌려진 일들을 감당하기도 집중하기도 어려운 딱 그런 상황에서의 도피처였다.
그런데 왠일.... 제주로 출발하려는 1월 23일부터 나의 여정은 뜻하지 않게 돌아갔다.
지금 나는 한적한 산방산 아래 제주 숙소에 있다. 사진 속 숙소의 책상이 아늑하게 나를 부르는 듯했다. 무엇에 이끌렸는지 그냥 자리에 앉아 불과 3일간의 일정을 여기에 기록하려 한다.
23일 아침, 11박12일간의 제주여행을 출발하려한 그 아침... 제주의 기상상황 악화로 결항되었다는 문자 한통이 날라왔다. 지연은 되어봤어도 결항이라니....우여곡절끝에 24일 오후 6:20분 비행기 4좌석을 다시 예약하고 하루 미루어진 김에 뭘 할까 하다가 집청소 열심히 하고 정리하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24일 공항에 도착하자마다 두번의 지연이 더 있었고 제주에 도착하니 밤 11가 지나있었다.
착륙전 20분은 정말 땀이 날 정도였다. 이렇게 흔들리는 비행기를 타본적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손에 땀이 나고 기도가 절로 나왔다. 칠흑같은 어두움에 불빛하나 없는 그 바다, 수면 바로 위로 떠서 가는 비행기... 언제쯤 불빛이 보일까? 싶은 그 때에 비로소 공항에 진입하고 착륙을 했다. 비행기안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그리고 앞뒤 옆을 보아도 알수 없는 그 어둠을 보며, 내가 계획한 돈을 지불했다 여긴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날씨가, 환경이, 하늘 길이 열려야 가능하구나.. 싶었다. 자연이 인간에게 허락을 해줘야 하는 것이였다. 그렇게 자연은 그 좁은 비행기안에 작은 존재인 인간에게는 너무나 두렵고 경이로왔다.
차안에서 이미 둘째는 그대로 잠 들어버렸다. 이 차가운공기에 괜찮을까....? 싶던 숙소...
오자마자 작두콩넣고 물을 끓여 따뜻하게 마시고 온기를 좀 덥히며 그렇게 어렵사리 온 제주에서 하룻밤을 잤다.
24일 이타미 준 바람이 들려주는 건축, 전시회를 보고 그리도 가보고 싶던 비건식당 AND유CAFE를 간것까지 좋았다. 그런데 한통의 전화..... 나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소식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둘째의 컨디션이 안 좋아보여 체온을 쟀는데... 39.1도. 하~~~~큰일이다. 산너머 산이다.
아이가 아프니 다 같이 올라가는건 무리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럼 어떻게 갈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내가 1박2일, 남편이 1박2일로 장례식장을 바톤터치하며 다녀오기로 했다. 아픈 아이는 우선 동네 의원으로 데려가 감기약과 해열제를 처방받고, 나는 남편에게 모든걸 맡기고 우선 출발했다. 그렇게 24일 저녁 비행기로 제주에서 김포로 다시 날라갔다.도착한 장례식장, 할머니의 죽음은 곧일것이라 예상해서인지 유일한 딸인 우리 엄마를 제외하고는 모두 담담했다.
25일 입관하는 모습속의 나의 할머니.. 내 기억속의 나의 할머니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할머니는 그렇게도 손주들을 이뻐했다. 우리 공주님 왔어요... 하며 벨을 누르기도 전에 문을 열고 나오는 할머니... 할머니 집에 돌이 되기 전부터 들락날락했던 나... 짜장면을 처음 사주신것도 할머니고, 마실에 매번 데리고 다니며 할머니들 속에서 (물론 그 땐 할머니들이라 하기엔 젊은 50대) 웃고 떠들며 어른들 이야기를 훔쳐듣고 깔깔대었고, 맛있는 약과와 옥수수, 칼국수 등을 먹은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사랑받았는데, 정작 나는 할머니에게 사랑을 제대로 표현한적도 드린적도 없는거 같아, 그 아쉬움에 마음이 아팠다. 내리사랑이 맞는거 같다. 사랑은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는 건가보다.
치매로 고생한 4년, 중환자실에 투석도 못한채 수혈을 받다 돌아가신 할머니.. 입관할 때 본 할머니의 모습은 내가 알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였다. 참 고왔었는데...멋쟁이셨는데... 우리를 이뻐하다 못해 이빨로 콱콱 깨물며 사랑을 표현했었는데... 그런 할머니는 치매로 고생하시면서 나의 첫째 딸을 보고 진화야~~ 하고 내 이름을 부르고, 나의 둘째 딸을 보고 수화야~~ 하고 내 동생이름을 부르셨다. 아직도 할머니의 기억속에 나는 어릴적의 모습이였나보다. 그런 아픈 할머니를 4년 넘게 매일 먹이고 씻기고 돌봐드린 사람이 우리 엄마다. 우리 엄마는 병간호로 늙어버리고, 허리가 아파 정형외과를 가고, 온갖 고생을 하면서 옆에 붙어 계셨는데, 아직도 못다한 말과 아직도 자식된 도리로 못했다 여기고 아쉬운 것들이 너무 많으신거 같다. 그 엄마의 흐느끼는 뒷모습이 나를 슬프게 했다.
정말 인생은 뜻대로 되는게 없다는 말이 맞다. 뜻대로 될 수 없는게 인생이다. 죽음은 더욱 그렇지 않은가?
그 마지막이 아쉽지만은 않길, 외롭지 만은 않길, 사랑이 흘러가 자녀들이 든든하게 그 가는 길을 담담히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엄마를 안아드리고 다시 제주로 오는 밤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제주공항에서 남편과 바톤터치를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사진 속의 책상이 이유없이 나를 끌어당긴다.
무엇이라도 주저리 남기라고 말이다...
2017년, 2021년 제주에 한달사기 두번, 그리고 너무 쉬고 싶고 가족에게 집중하고 싶어서 다시 찾은 제주. 그동안 나는 너무 바빴다. 바쁨에도 휘발되고 싶지 않은 기록을 남기려고 브런치북도 시작했지만 여실히 쓴맛을 보고 있는 중이다. 하하~~~
그런데 제주에 와도 나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고, 일과 연결되어 있어 일을 하기 위해 노트북을 키고, 끊임없이 지인들에게 연락이 오고 모임을 하고 있으며, SNS에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하물며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 죽음을 직면하고 오기까지 했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내 계획과 생각대로 할 수 없으며, 내가 웃고싶고 쉬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 갑자기 슬픔이 오고 불안이 오고 걱정이 온다는 것... 그렇게 제주와 서울을 오가는 3일이 참 진했다. 돌아와서 이제 아픈 아이를 잘 쉬게 하고 남은 제주의 여행을 계획없이 보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