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낀 아름다운 북쪽길
아스뚜리아스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구간이 아빌레스에서 루아르까에 이르는 구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마도 가을이 깊어가는 9월 말이라는 계절과 맑은 날과 비 오는 날의 공존, 그리고 오레오 더하여 지형의 고도차가 적절히 섞여 아스뚜리아스를 잘 느끼게 해주는 구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대략 500km 정도 걷는 동안의 모든 길이 좋았지만 이 구간은 특색 있는 길로 기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10유로 내외로 잠도 자고, 씻고, 빨래하고, 요리할 수 있는 장소까지 제공되는 곳이 공립 알베르게다. 당연히 시설이 좋을 순 없지만, 일부 오스텔(호스텔 hostel) 보다 좋은 곳도 있다. 특히 2인실을 주는 곳도. 하지만,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면, 실망할 일도 없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는데 좋은 점들이 발견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횡재한 기분도 드니까. 아빌레스의 순례자 알베르게 또한 나에게 인상을 남긴 한 곳이 되었다.
구도심을 빠져나오면서 슬슬 언덕이 이어진다. 오늘도 제법 획득 고도가 있어 꽤 힘든 구간이지 싶다. 중심가를 벗어나 오르막 차도를 따라 한참을 걷는다. 오르막이 끝나는 평평한 지대에도 집들이 상당히 많다. 한순간 화살표가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지도앱을 켰더니 길을 잘못 들었다 150미터쯤 다시 되돌아가 화살표를 찾아 제방향으로 진행한다. 어두울 땐 항상 긴장이 필요하다.
비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우비와 싸우는 동안 장 트러블이 느껴져 바르를 계속 찾으며 걸었는데 학교 근처 상가에서 바르를 발견하고 반갑게 입장한다. 거추장스러운 우의를 우선 벗고 짐을 의자에 올려둔 후 주문하고 넓고 조용하고 쾌적한 화장실에서 편안하고 감쪽같이 트러블을 해결했다. 이 길에서 아주 가끔 장트러블로 급하게 화장실을 찾게 되는 일이 있는데 이렇게 큰 동네에선 당연히 바르를 찾아가면 되고, 인적 드문 곳이라면 그저 살짝 몸을 숨길 수 있는 장소에서 자연과 교감을 하면 된다. 여성 순례자들 중에는 그래서 우산을 들고 다니는 분들이 있다. 비를 막는 용도 + 자연과의 대화 시 몸을 가리는 용도. 우산 대신 헐렁한 원피스를 입고 해결하는 경우도.
간단히 요기와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순례길 화살표를 찾아가는 길에 바로 가파른 언덕을 만난다. 짧지만 제법 힘들게 올라가야 하는 언덕 위에 순례길 경험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형태의 성당이 우뚝 서 있다. 'Iglesia de San Martín de Laspra'인데 종탑의 반대쪽 끝으로 추가 건축된 부분에 성당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있었다. 하지만 앱에서 이미 확인한 것처럼 cerrado(closed) 상태. 이곳에서 묵어가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가 꽤 많은 지역을 많은 비를 맞고 걷는다. 비야르, 엘 무로 등의 마을을 지나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고 인적 드문 산정상부의 평탄한 지대의 흙길을 지나는데 비가 엄청 쏟아진다. 등산화에 비가 들어가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닐봉지로 스패츠 비슷하게 만들었지만 비의 양이 생각보다 많아 무용지물이 되었고 등산화는 이미 안과 밖이 다르지 않았다.
비가 언제 내렸냐는 듯이 순식간에 날이 갠다. 힘들게 정상부에 올라서니 해발고도는 약 240미터쯤 된다.
내리막 넓은 임도에는 아주 홍수가 났다.
물길인지 숲길인지 모를 길을 헤치고 편안한 포장길과 Soto del Barco라는 이름의 마을로 접어들자, 마음이 좀 놓인다. 아직 갈 길은 한 시간 남짓 남은 듯하다. 마을에 접어들어 우뚝 솟은 탑도 하나 보인다. 멋져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탑까지 가보긴 싫다. 강을 따라 조성된 조용한 마을을 지나니 상점들이 있는 로터리가 곧 나온다. 바르에 들러 잠시 쉬어 갈지 생각도 했지만, 오늘 숙소까지 멀지 않아 그냥 통과했다.
'무로스 데 날론'에서의 숙박은 중심에서 좀 떨어진 입구쯤의 Fali´s albergue de peregrinos "la naranja peregrina"라는 곳으로 '氣'에 관심이 많은 듯한 남자 오스삐딸레로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수용인원이 많지 않아 작고 아담하고 정원이 참 좋아 보였는데, 비가 내려 이용할 순 없었다는.... 숙박비는 15유로였고 저녁은 10유로(저녁을 먹을 건지 물어본다. 가능하면 같이 먹는 것도 좋겠다)
알베르게에서 머무를 때 침대 위치를 잘 골라야 한다.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단층 침대를 골랐는데 문 앞이라 밤새 화장실 들락 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편히 잘 수 없었다. 뭐 그래도 잠을 자고, 씻고, 신발 말렸으면 된 거다.
무로스 데 날론 마을 중심을 통과하면서 Iglesia de Santa María 성당을 만났다. san, snato, santa 모두 같은 성인이라는 뜻으로 성인에게 봉헌하는 의미에서 성당 이름을 만드는 것 같다.
san, santo, santa는 영어의 saint로 성스러운, 신성한, 성인. 성자, 성녀를 지칭한다.
*참고 : 'san'은 'santo'의 축약형으로, 남성 성인의 이름 앞에 붙습니다. 특히, 이름이 'Do' 또는 'To'로 시작하지 않는 경우에 주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 San Diego (샌디에이고), San José (산호세) 등이 있습니다. 'Santo Domingo'나 'Santo Tomás'처럼 이름이 'Do' 또는 'To'로 시작하는 경우에는 'san'으로 줄이지 않고 'santo'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어원은 라틴어 'sanctus'.
무로스 데 날론 마을 중심 광장의 특징 없는 작은 성당을 지나 판데리아(빵집, Panderia)에서 커피 마시는 사람들이 있길래 같이 끼어 앉아 카페 꼰 레체 한잔. 1.2유로.
이렇게 어두운 길을 가다 보면 화살표를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 찾기 어려운 곳에 있는 것도 아닌데 강력한 랜턴 빛의 도움을 받아야 찾아진다. 갈림길, 골목길에서는 항상 주의 깊게 살펴보면 화살표가 분명히 있다. 그것도 제법 잘 보이는 곳에.
한 시간 넘게 숲길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자 도로 옆으로 학교가 있는 마을을 통과한다. 학교 지나면 바로 'Palacio de los Selgas 셀가스의 궁'이 나온다. 구경하고 싶지만, 어디나 이 시간엔 관람이 어렵다.
*참고 : IES (Instituto de Educación Secundaria)
IES는 스페인 교육 시스템에서 "중등 교육 기관"을 의미하는 약어. 스페인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제공하는 학교를 통칭하는 명칭. 한국의 중·고등학교와 비슷한 개념.
길을 걷다 보면 별생각 없이 걸을 때도 있고 힘들어서 현 상태를 빨리 벗어나고픈 생각이 들 때는 더 많다. 하지만 가장 많은 생각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멋지네' 하는 생각이다. 사진에 잘 담고 싶어 과도한 카메라를 들고 왔지만, 스마트폰으로 찍는 경우가 많다. ㅋ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는 늘 함께 한다. 가끔 고속도로, 기찻길과 만나는 순례길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차량을 이용하면 금방 갈 곳을 이렇게 걷는 것에 대한 등등.
유난히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다고 생각되었다. 힘들게 오르막을 오르니 해변이 떡하니 나타나 잠시 마음과 다리를 위로해 준다. 멀리 'Playa de La Concha 꼰차 비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잠시 땀도 식히고 담배 연기도 바람에 날려본다.
길은 해변 쪽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다시 내륙 산간지대로 이어진다. 아... 힘들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힘들다.
다시 구름이 많이 끼고 빗방울도 찔끔 뿌리기도 한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걷다 다시 숲길로 내려갔다가 올라와서 만난 마을. 정말 잘 가꿔 놓았다.
땅에 떨어진 것과 거의 상태가 비슷한 사과를 어제 디아(Dia)에서 6개에 3.6유론가에 샀는데.... 여긴 버려져 있네. 그건 그렇고 색상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 카메라를 들이대 본다.
차도를 따라 기차역에 만들어진 오늘의 목적지 숙소로 향한다. 'Novellana' 마을 외곽 기차역에 만들어진 알베르게는 마을과는 동떨어져 있어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기대감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주인장이 예약했는지를 묻는다. 아... 예약 풀이란다. ㅠㅠ 눈물을 머금고 다음 마을의 숙소를 찾아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뻰시온(펜션)'이 있다. 부지런히 걸어 다음 마을인 'Santa Marina'로 향한다. 이곳 뺀시온 앞 바르에서 까스트로를 만나 이곳 쁘라다 뻰시온에서 하루 쉬어가기로 했다. 트윈룸인 독방을 12유로에 저녁 식사는 10유로 내고 얻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좀 쉬고 7시 30분 저녁 시간에 맞춰 다시 식당으로 가니 전에 비야비씨오사에서 만났던 게이코 할머니가 서양 할아버지와 같이 저녁을 하기 위해 앉아계신다. 이번 순례길에 도움을 많이 받고 계신 듯했다. ^^
퍼스트는 닭고기 수프 하나라 고를 것도 없었고 쎄군도는 초리소(스페인식 순대라고 하는데)와 뽀요(닭) 중 골라야 했는데 초리소는 짜다는 생각이 박혀있어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하게 닭고기찜과 감자튀김을 골랐다. 와인과 함께한 저녁 식사는 꽤 만족스러웠다.
맛있는 식사 후 완전히 어두워진 마을과는 달리 아직 마지막 남은 빛을 뿌려대고 있는 바닷가의 노을은 정말 처연하게 아름다웠다. 카메라를 들고 오지 않았기에 아쉽지만, 스마트폰으로라도 찍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노을빛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하늘을 바라봤다.
중간에 자주 깨지 않고 비교적 잘 잔 듯싶다. 역시 혼자 자야 질 좋은 수면이 가능한 것 같다. 어제 빨아 놓은 옷이 완전히 마르지 않고 축축하다. 입어서 말리는 것도 나쁘진 않다. 7시 30분쯤 나와도 하늘은 아직 동트기 전이다. 동트기 전 검푸른 하늘에 비행운이 멋지다.
리본 마을의 아름다운 집구경을 하며 마을 끝에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걷는데, 숲길, 아스팔트길, 다운, 업의 길이 초반에 반복되어 아침부터 땀이 삐질삐질 흐른다. 오늘도 역시 힘든 길이다.
작고 예쁜 마을 몇 개와 한적한 차도, 마을마다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아스뚜리아스의 오레오를 보는 재미가 또 있다.
'Barcia 바르씨아'라는 동네로 진입하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남은 거리를 알리는 표지가 있어 지나가던 서양 커플에게 사진을 부탁해 한 장 찍는다.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을 몇 갠가 지나치고 루아르까 Luarca에 도착한다. 생각지도 못한 매우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와우"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다른 해변 도시와 마찬가지로 도심 안쪽에는 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우리나라 전곡 일대의 용암대지처럼 평원 사이 비교적 넓은 계곡 지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 중심지까지 100여 미터의 높이를 낮추며 내려온다.
검색을 해보니 루아르까는 흰색 건물들과 S자 모양의 만으로 유명하다고 하며 Atalaya 예배당, 등대 그리고 노벨상 수상자인 Severo Ochoa의 묘지가 있는 공동묘지 등이 유명하다고 한다.
목적했던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고풍스러운 전통 양식의 3층 건물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오스삐딸레로가 없어 게시물을 찾아보니 길 건너 호텔에 관리인이 있다고 한다. 호텔로 가 벨을 누르고 "요 쏘이 뻬레그리노"라고 말하니 좀 기다리란다. 13유로 주고 체크인.
알베르게는 작은 궁전 혹은 저택(palacete)으로 불리는 건물의 1층에 자리 잡고 있는데, 원래는 알베르게가 아니었고 1층만 리모델링을 통해 알베르게로 운영하는 듯했다. 샤워 시설, 화장실 괜찮고 침대 나쁘지 않고, 키친은 있는 듯 없는 듯했지만, 전자레인지와 냉장고가 있어 간편식 정도는 가능했다. 배낭에 들어있던 라면을 엘지 전자레인지에 넣어 끓여 먹었다. 마을 구경 겸 장 보러 나가 복숭아, 사과, 방울토마토, 물, 파인애플주스 1리터, 과자 한 봉지 사서 돌아오니 마음이 든든하고 편안하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