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북쪽길
Luarca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였기 때문에 아침 일출의 모습은 어떨까? 보고 갈까도 싶었지만 오늘 가야 하는 곳까지 제법 먼 30km 정도라 어둠 속을 다시 나선다. 사과만 하나 베어 먹고, 알베르게를 나와 외곽지대로 나가며 오르막을 오른다. 평탄면 아래로 도시가 만들어졌으니 그만큼 올라가야 한다. 평지만 걷고 싶은데... 현실은 바램과는 늘 다르다. 도시 밖으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빠르진 않지만 천천히 언덕을 다 오르니 도시는 아직 어둠 속에 잠들어 있는 듯 보인다. 화려하지 않은 야경이 내려다 보이는 지점에서 DSLR 카메라로 야경을 찍어본다. 30초 촬영에 노이즈 감소를 위한 자체 프로세싱까지 한컷 찍는데 1분은 걸리는 것 같다. ㅋ
갈리시아에 가까워지며 지붕을 이은 소재가 달라지고 있다. 일반 기와가 아니라 얇게 켠 돌로 지붕을 이었다. 프랑스 길에서도 많이 보았던 방식이다. 지질 운동을 통해 스페인 북부 해안지역은 점판암이 많이 생성되었다고 하는데, 쉽게 구할 수 있는 점판암이 지붕의 기와 대신 사용되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주로 강원도 산간, 특히 정선 지방에서 돌 너와집을 많이 볼 수 있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을 계속 걷는다. 만나는 순례객들의 수 비야비씨오사 이후로 좀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일부 순례자들은 프리미티보 길로 넘어갔나 싶다. 길에서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물론 계속 만나는 인연들도 있다. 오늘은 안토니오,마르따 노인부부와 파블로를 만났다
멀리서 화재가 난 듯 연기가 구름에 연결되는 보기 힘든 장면을 만났다. 올해(2022년) 스페인의 여름은 산불(들불)이 굉장히 많이 발생하고 있었다.
작은 동네들을 잇는 농토 사이의 길을 한참 걸은 끝에 Villapedre라는 마을에서 드디어 바르를 발견했다. 까페 꼰 레체와 또르띠야 데 빠따따스가 반갑다. 3유로의 행복..
이렇게 조용하고, 평온한 길을 무심하게 걷다 보면 비슷한 듯 다른 길들이 계속 이어진다. 이렇게 한적한 시골마을에서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무료할 것 같다는 도회지 사람의 생각과는 다른 치열함이 있을 것이다. 농사를 짓는 삶이란 게 그리 녹록지 않을 테니 말이다.
멀리서부터 보이던 종탑이 삐죽하게 높은 성당에 이른다. 삐녜라의 성인 살바도르의 성당이라고 적혀있다.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낮동안 열어 놓으면 순례자들이 쉬어가기도 하고 기도도하고 그럴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관리의 문제란 게 또 그렇지 않을 테니. 딱히 역사적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성당이다.
기찻길 위로 만들어진 다리(길)를 지나면 살바도르 성당에 도달한다. 길을 알려주는 조개 문양으로 길을 잃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걸을 수 있는데, 이 조개의 방향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방향을 안내한다. 선들이 한 군데로 모이는 방향이 정 방향이지만, 이게 늘 옳진 않다.ㅋ
마을 외곽에 차도를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되어 보이는 공립학교 건물을 만나는데, 현재는 알베르게로 쓰이고 있었다. 남자아이(niño 니뇨)들과 여자아이(niña 니냐)들은 각각 다른 교실을 사용했었나 보다. 상당히 유교적이었던 듯...ㅋ. 한국은 그래도 1970년대 우리네 초등학교는 남녀 합반이었는데. 스페인에서 만난 '남녀 칠 세 부동석'이라니.
옥수수의 바다를 지난다. 미국의 옥수수밭에는 잘못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던데, 이곳은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규모의 옥수수 밭이다.
"Se vende, 판매합니다"라고 써 놓은 옛날 성당 건물을 지나는데 이런 거 사서 수리 후 숙소든 뭐든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가격은 어느 정도나 할까 궁금했다. 취미로 할게 아니라면 먹고살 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 사이로 Navia라는 마을이 보이는데 짙은 초록 나무 사이로 밝은 민트색 페인트가 칠해진 집이 보이는데 너무 인상적이다. 5시간 넘게 걸어 제법 큰 동네인 나비아의 입구는 이렇게 내 기억의 한 곳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나비아는 큰 강을 낀 바닷가의 양쪽으로 제법 큰 마을(도시)이 형성된 곳이다.
마을 중심부의 꽤 큰 바르에 들어가 콜라와 와인 한잔 시켰는데 빠예야 타파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맛있다.
가게 이름이 'Sidrería La Villa 시드레리아 라 비야'인데 '우리 동네 시드라 전문점'쯤 되는 의미인 듯하다.
스페인에서 음식, 술(맥주, 와인 등), 커피를 한 번에 모두 다루는 가게는 통칭 bar인데, 바스크와 아스뚜리아스 지역은 시드라(사과탄산주)가 유명해서, Bar라는 이름 대신 시드라 문화와 관련된 식당 유형에 Sidrería라는 명칭을 많이 쓰는 것 같다.
다리를 건너 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언덕을 오른다. 꽤 힘들게. 언덕 위에서 뒤를 돌아보니 나비아가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인적 드문 시골의 흙길이 이어지다 만나는 마을에는 작은 예배당이 있다. 'Capilla de Santa Ana 까삐야 데 싼타 아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형태의 작은 예배당이다.
조용하고 심심하면서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길은 '또르쎄'로 이어진다. 해변을 배후로 두고 있는 마을인 듯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보인다. 이 마을에서 오레오의 모양이 갈리시아의 전통적인 형태로 변하고 있다. 아래의 오레오는 전형적인 갈리시아 오레오의 형태다.
시골길은 'Cartavio' 마을로 이어지는데 멀리서부터 옥수수밭 뒤로 하얀색 교회당이 눈에 띄었는데, 점점 가까이 다가간다. 길은 이 성당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도착해서 보니 이 성당의 이름은 'Parroquia Santa María de Cartavio'였다. Parroquia는 가톨릭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행정 구역 인 교구를 말하거나 그 교구의 중심에 있는 교회 건물 자체를 부르는 말이며, 우리나라의 본당과 비슷한 개념으로 일상적인 종교 활동을 위해 지어진 성당을 말한다.
까르따비오를 빠져나오면서 도로를 따라 오늘의 최종 목적지 마을인 'La Caridad 라 까리닫'으로 향한다. 차량도 사람도 없는 길이 외로워 보인다.
알베르게 관리자는 7시 30분에 온다고 하니 빠블로와 하비에르 이렇게 3명이 저녁을 먹으러 동네에 나갔는데, 메뉴 델 디아를 파는 곳이 없었다. 작지 않은 동네에 바르는 오픈 했지만 식사를 할 수 없었고, 축제를 하는지 아이들을 위한 탈것등의 놀거리가 좁은 광장에 가득 찼다. 스페인 순례자 빠블로, 하비에르과 같이 나왔는데 저녁을 먹을 수 없었다. 뿔뽀등의 해산물을 먹으러 나왔지만, 식당 점원과 얘기하던 빠블로와 하비에르는 고개를 저었다. 슈퍼마켓도 열지 않아 할 수없이 자판기에서 몇 가지 음료와 스낵을 사서 돌아왔다. 각자 가진 먹을거리를 모두 꺼내 놓으니 제법 푸짐하다. 바게트며, 멸치 통조림이며, 멤브리오와 치즈에 살치촌까지 한 끼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스페인 순례자의 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한 끼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두울 때 길을 나선다. 아직 깜깜한 아침, 자고 있을 다른 순례자들 눈치를 보며 조용하고 빠르게 짐을 밖으로 옮긴 후 출발 준비를 한다. 알베르게가 마을 초입에 있어서 중심부와 좀 떨어져 있기에 10여분 걸어 마을 중심의 성당을 지나 부지런하게 걷는다. 리바데오에 일찍 들어가할 일이 좀 있기에...
자연광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때쯤 도착한 뻴라요 마을을 지나다 북쪽길의 마을들은 일단 좀 세련?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길은 와 오래된 것 같아! 이런 느낌인데 말이다.
얼마간 조용한 숲길을 걷는데 길은 'Río Porcía 뽀르씨아 강'으로 이어진다. 강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좁은 물길을 건너는 오래된 다리와 그 다리 옆의 주택이 조용하니 매우 평화롭다.
아스뚜리아스는 옥수수밭이 참 많다. 그래서 옥수수 재배에 대한 생각을 좀 해봤다. 일단 여긴 옥수수 열매를 따로 수확하지 않는다. 기계로 옥수수밭을 지나며 옥수수 전체를 흡입해 사방 1cm의 칩으로 만들어 버린다. 콤바인보다 큰 기계가 스윽 밭을 쓸고 지나가면 그 자리의 옥수수는 칩이 되어 버린다. 옥수수 칩은 바로 옆이나 기계에 연결된 수송 트레일러에 옮겨진다. 열매 수확을 따로 하지 않고 이렇게 다 베어버린 옥수수 둥치만 남은 밭에 가끔 떨어진 옥수수만 몇 개 줍더라. 오늘 아침에 봤음. 기계의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칩을 만들어버리는 놀라운 힘은 동일했다.
다 자란 옥수수는 어떻게 수확하는지 궁금했는데 궁금증이 다 풀렸다. 이런 방법이 아니라면 이 많은 옥수수를 어떻게 재배했겠어, 인구도 적은 스페인에서 말이지.
칩 형태로 파쇄된 옥수수는 아래 사진처럼 비닐로 덮여 숙성? 된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일정량을 소, 말, 염소 등에게 먹이고 있었다. 생각을 해 보았다. 1. 옥수수를 키운다 → 수확해서 칩으로 만든다 → 소를 먹인다 → 소가 똥을 푸짐하게 싼다 → 발효시킨 옥수수 먹이를 먹고 살을 찌운 소를 잡는다 → 사람이 먹는다. 2. 밀을 키우기 위한 초지에 푸짐하게 삭힌 소똥을 비료로 준다 → 밀이 잘 자란다 → 밀을 수확한다 → 사람이 먹는다. 소똥을 양분으로 밀을 재배하고, 옥수수 밑둥이 남겨진 땅에는 옥수수가 썩고 분해되어 다시 땅의 양분이 되어 옥수수를 키워낸다. 아... 이거 뭔가 되게 순환적이고 친환경적이며 맛있겠다. ^^ 결론은 인간이 먹는다로 귀결된다. 인간이 이 지구별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는 상황은 인간인 내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옥수수밭을 지나면 마을이 또 나온다. 스페인의 마을 빈도와 인구 빈도는 애매하게 적절하다 싶다. 전반적으로 매우 조용하고 한적한 상태로 유지되는 듯하다. 사실 여기도 농촌인구는 계속 줄지 싶다.
마을을 지나 조금 걷자 갑자기 툭 튀어나온 해변은 'Playa de Represas'. 해변 앞으로 올망졸망한 작은 암초들이 서있고 왼쪽에는 해식동굴을 품은 절벽이 장관이다. 상당히 멋지다.
'Playa de Represas'에서 휴식을 취하고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앞선 순례자 2명(독일 여성)이 언덕 높은 부분을 막 넘어서는 모습을 급하게 찍었다. 도보여행하는 분위기가 물씬 풍겨서 참 좋다.
갈리시아와 접하고 있는 마을이라서 그런지 오레오의 형태는 이미 갈리시아 지방의 형태로 바뀌었고, 농로와 차도가 이어지는 길은 연속적인 오르막과 내리막이라서 걷고 있는 나는 몹시 힘들다. 발바닥 감각은 계속 정상이 아니고.
얇은 판석으로 지붕을 이었고, 그 끝에는 돌을 올려 고정해 바람등에 날리지 않도록 해 놓은 듯 보이는 장식도 보인다. 얇은 판석은 갈리시아 지방에서 주택의 지붕 용도와 토지의 경계를 나누는 경계석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Villamil 비야밀'이라는 작은 동네를 통과하는데 콩밭을 볼 수 있었다. 가지런하게 지주대를 박고, 그 지주대에 의지해 콩이 자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아마도 이곳에서 많이 먹는 병아리콩이 아닐까.
이 마을의 집들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집이 많은 듯 깨끗한 집들이 많았다. 오레오의 형태도 아스뚜리아스의 방식과 갈리시아의 방식이 융합된 형태가 많이 보였다.
'비야밀' 마을을 지나면 멀리 연노랑색의 작은 교회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교회건물에 다다르면 바로 해안 절벽 아래로 넓은 모래사장을 가진 해수욕장을 볼 수 있는데 'Playa de Penarronda 뻬나르론다 비치'라고 한다. 육지 쪽으로 폭 들어간 만 형태의 모래사장 해변이 매우 아름답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모래사장이 너무 멋지게 어우러지고 있는 이곳은 빼나론다 해변.
너무나 멋진 실컷 'Playa de Penarronda' 를 한참 바라보며 마음에 담고 얼마 남지 않은 목적지를 향해 걷는다. 바로 이어지는 마을은 최근에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이는 전통형태의 집들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자리잡고다. 오레오는 이 마을 일대에서만 이런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이 마을은 여행자를 위한 숙소로 만들어진 깨끗한 건물이 많았다.
아스뚜리아스의 마지막 마을 'As Figueras 아스 피게라스'에 도착하면 바다(만) 건너 오늘의 종착지이자 갈리시아를 시작하는 첫 번째 도시 리바데오가 멋지게 펼쳐진다. 이제 아스뚜리아스는 이곳에서 작별을 고한다.
피게라스 마을 끝 리바데오로 넘어가기 전 공원에서 빠블로를 만났고 빠블로와 서로 사진 한 장씩 찍어주었다. 빠블로는 다리 건너면 바로 있는 공립 알베르게에 묵는다고 했고, 나는 유심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해서 우선 시내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를 앞세우고 난 뒤 따랐다.
피게라스에서 리바데오로 이어지는 길은 바다 위에 놓인 고속도로 교량이다. 교량의 양쪽 끝으로 폭이 상당히 좁은 인도를 통해 강이자 바다인 이곳을 건너야 하는데 아찔한 높이감의 다리는 꽤 무섭다. 인도와 차도는 철조망으로 나뉘어 넘어갈 수 없게 되어 있고, 다리는 차량 통행이 꽤 많았고, 차량이 지날 때마다 흔들렸다.
리바데오 시내구간은 꽤 길고 번화했다. 많은 식당과 상점이 즐비했고, 필요로 하는 유심 판매처인 보다폰은 점심시간이라 문을 닫았다. 공립알베르게는 도시 초입의 건너온 다리 근처에 있으므로 구글맵을 열어 그론세 앱에서 사설 알베르게인 'Albergue Viruxe' 를 찾았다. 2층의 일반 주택인데 1층을 알베르게로 쓰고 있었다. 알베르게 주인은 예약했냐고 물었고 난 안 했다고 하니 자리가 없다고 했다. 당황한 내가 벗어놓은 등산화를 신고 있는데 다시 들어오라고 하더니 침대를 하나 내어준다. 참 희한하다. 없다던 침대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불쌍해서 내어준 것인지... 내가 머무르는 방에는 2층 침대가 1개와 싱글베드가 놓여 있는대 싱글베드엔 다른 순례자가 다른 쪽 1층은 내가 차지했다. 왜 침대가 없다고 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다행이었다. 12유로에 겟!
리바데오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은 'Torre dos Moreno'라고 불리는 곳이다. 1917년에 인도 스타일로 지은 건물이고 당시로서는 혁신적으로 철과 콘크리트를 사용해지었다고 하며 인디아노(Indiano) 건축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게 왜 인디안 스타일이라는 건지 궁극해 찾아보니 "인디아노"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스페인 식민지였던 아메리카 대륙(특히 쿠바나 아르헨티나 등)으로 건너가 막대한 부를 축적한 후 고향으로 돌아온 이주민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하며, 이들이 고향에 돌아와 자신들의 성공과 부를 과시하기 위해 화려하고 이국적인 스타일의 저택들을 지었는데, 이러한 건축 양식을 "인디아노 건축"이라고 한다는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이 건물들은 종종 식민지에서 유행했던 모더니즘(Modernismo), 아르누보(Art Nouveau) 등의 건축적 특징을 스페인 현지 건축에 접목시켰다고 하며 붉은색으로 반짝이는 지붕은 인상적이며 아름다웠다. 도시의 멀리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다.
동네 성당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빨래, 샤워 후 유심구매 및 시내 구경을 위해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보다폰 가게에서 15유로에 4주 20기가의 유심을 사서 꽂았다. 유심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여권이나 여권을 찍어 놓은 사진이 있어야 한다. 유심은 정상적으로 잘 작동했다. 유심 장착 후 구 도심을 돌았다. 갈리시아의 도시라 그런지 뿔뻬리아(뿔뽀;문어 파는 식당)이 많았다. 맛있어 보이는 집들도 있었는데 혼자 들어가서 먹는 게 좀 애매하기도 하고 오픈전이기도 해서 그냥 디아에서 장을 봤다. 돌아오는 길에 바르에 들러 맥주를 시켰더니 타파스를 2개나 준다. 맥주 2잔과 타파스 4개를 먹으니 저녁을 먹은 것과 진배없었고 게다가 가격은 4.8유로 밖에 안 했다. 뭐지? 횡재한 기분이었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간단히 컵라면 하나를 추가로 먹어준다.
이젠 이 북쪽길은 갈리시아로 진입했고 순례의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