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편향의 늪에서 구해내기
아직 31개월인 우리 아들은 요즘 부쩍 뽀로로를 보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유아 때부터 최대한 동영상 노출을 자제시켜 왔고, 집에서는 티비를, 외출해서는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여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음에도 불가피하게 한 번씩 본 뽀로로가 마음에 든 우리 아들. 최소한의 노출을 했음에도 유튜브를 보여달라고 하는 아들을 보며 동영상 중독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이들과 청소년들, 그리고 성인들에게도 흔히 볼 수 있는 동영상 중독. 특히나 유튜브 중독은 어린아이들의 두뇌 발달 저해, 충동 조절력 저하, 집중력 저하라는 많은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스마트폰이라는 강력한 디지털 기기로부터 유발되는 강력한 일방적 영상 자극. 이러한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는 아이의 두뇌는 현실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2011년 6월 CNN 방송에서 처음 사용한 '팝콘 브레인'이라는 용어는, 영상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아이들이 빠르고 강한 정보에만 반응하고 느리고 약한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는 뇌를 가지게 되는 현상을 표현한 말이다. 2011년 등장한 팝콘 브레인이라는 용어는 최근 쇼츠 영상이라고 불리는 짧은 영상들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다시금 화두에 오르고 있다. 과거 TV나 인터넷 영상을 반복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뇌는 영향을 받았는데, 최근 유행하는 1분 이내 쇼츠 영상을 반복 시청하는 것은 지루한 걸 견디지 못하고 집중력을 가지지 못하는 아이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유아의 유튜브와 같은 영상 노출로 인한 두뇌 발달 문제 제기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며, 관련 연구도 많이 진행되었다. 다양한 결론이 도출되었지만 결국 얘기하는 방향성은 일치한다. 과도한 영상 노출은 두뇌 발달에 치명적이 될 수 있다고.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발달위원회에서는 반복적인 유아의 영상 시청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다.
미디어를 조작할 때 사람의 몸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전신을 움직이는 체험은 늘 빠져있다. 즐겁게 자신을 움직이는 자극이 전혀 없기 때문에 미디어를 통한 감각 체험은 온전히 잃어버린 시간에 불과하다. 더욱이 모니터 화면을 마주하는 동안 아이의 두뇌발달은 훼손된다.
영상과 두뇌발달의 연관성 문제는 의학을 연구하시는 많은 분들이 정리를 해주셨고,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유튜브 알고리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유튜브는 기본적으로 사용자가 자주 시청한 영상과 비슷한 것을 추천해 준다. 추천 영상은 나의 취향을 반영하고 있어 유튜브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든다.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목적은 간단하다. 사용자가 최대한 유튜브에 오래 머물러서 광고 수익을 높이게 하는 것. 이를 위해 구글은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 사용자에게 유사한 영상을 지속 추천해 주고, 사용자는 신속한 맞춤형 영상 추천을 받아 자신이 좋아하는 영상만을 반복 시청하게 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90년대를 한 번 생각해 보자. 그때도 영상 미디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지속적으로 있었다. TV라는 미디어는 많은 아이들을 중독시켰고, TV는 '바보상자'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가지기도 하였다. TV라는 바보상자가 비록 영상 매체를 아이들에게 일방향적으로 주입시켰지만, 그럼에도 지금처럼 편향성 문제는 덜하였다.
90년대 초, 매일 저녁 6시가 되면 골목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향한다. 바로 KBS 2TV에서 해주는 만화영화를 보기 위해서이다. (같은 맥락에서 매주 일요일 오전 8시가 되면 아이들의 눈은 떠졌다.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기 위해서) 아이들은 만화를 보겠다는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어떤 만화를 볼 지에 대한 선택은 할 수 없었다. 당시 유행했던 다양한 만화영화들을 보며 저녁을 먹은 아이들은 다음 날 학교에서 전날 본 만화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하곤 하였다. 독수리 오 형제가 어떤 괴물을 물리쳤는지, 슛돌이가 어떻게 골을 넣었는지 따라 하며 웃던 남자아이들이지만 특정 만화에 대해서는 언급하기를 꺼려하였다. 바로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세일러문', '천사소녀네티'와 같은 여자 아이들이 주인공이거나 '베르사유의 장미'와 같은 순정만화이다. 당시 공중파 밖에 없었고, 만화를 하던 채널은 KBS2가 유일했기에 (부산은 SBS가 나오지 않았다) 많은 남자아이들이 여성향 만화를 봤었을 건데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부끄러움의 대상이었고, 실수로 이야기를 꺼낸 아이는 그날 놀림의 대상이 되곤 했다.
당시 나도 그러한 남자 꾸러기 중 한 명이었다. 로봇 만화를 좋아하면서도 여성향 만화도 어쩔 수 없이(?) 보곤 했다. 그중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만화는 순정 만화 풍이었음에도 상당히 흥미를 끌었다. 남장여자 주인공 '오스칼'이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시대 흐름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는 초등학생이었음에도 가슴 벅찬 무언가를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이 만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게 혼자 마음속으로만 좋아하던 만화였는데, 어느 날 우연히 동네 친구가 실수로 베르사유의 장미를 재밌게 보고 있단 말을 나에게 하게 되었고, 남자 중에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심스러운 마음이 들며 한참을 만화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시대라면 상상하기 쉽지 않은 광경이다. 당시의 TV 환경 역시 미디어 중독이라는 문제점을 많이 야기시켰지만, 지금처럼 알고리즘으로 무장하고 있지는 않았다.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음으로써, 역설적으로 아이들은 다양한 장르의 미디어를 접할 수 있었다. 과거의 어린 나는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순정만화를 보았지만, 알고리즘으로 둘러싸인 현대의 남자아이들은 다양한 영상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알고리즘은 계속해서 봤던 영상을 추천해 주고, 편향된 세계로 아이들을 인도하고 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선호하는 콘텐츠 위주로 추천을 지속한다. 여기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의견은 듣지 않게 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같은 콘텐츠만을 탐닉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만 모이게 된다. 이렇게 현대의 사람들은 '확증편향'이라는 늪에 빠지게 된다.
미국의 엘리 프레이저는 그의 저서인 '필터 버블'에서 저서의 제목과 동일한 필터 버블 개념을 제시하였다. 필터 버블은 사용자에게 맞게 필터링된 정보가 머치 버블처럼 사용자를 가둔 현상을 의미한다. 인공지능이 만들어주고 있는 버블은 현대의 바쁜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해 필요한 정보를 바로 제공해주고 있기에 편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사용자들의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은연중에 말이다.
최근 뉴스를 본 적이 있는가? 신문을 1면부터 끝까지 본 적이 있는가? 현대의 바쁜 사람들은 뉴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볼 여유가 없다. 종이 신문은 이미 구시대의 문물이 되었다. 대신에 네이버, 다음 등의 포털에서 선정한 자극적인 기사 타이틀만을 보곤 한다. 그것도 연예, 스포츠 혹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 혹은 증오하는 정당과 연관된 정치 기사에 치중되어 있다. AI 시대의 이러한 정보 큐레이션은 훨씬 더 정교하게 개인들이 선호하는 정보만을 제공하고 있고, 이러한 편향성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버블 내에서 자신들이 믿는 것만 더 믿게 만드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가 점차 극단적이 되어가고 서로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고 있는 데에는 이러한 버블 현상도 한 몫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마찬가지이다.
필터 버블을 주장한 엘리 프레이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며, "우리는 서로 세상에 대한 시각을 공유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생활 방식과 다른 욕구를 가진 사람들과 서로 살을 맞대어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른들도 버블에 갇혀 힘들지만, 더 문제는 바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을 만지면서 자라고 스마트폰을 손에서 한 시도 놓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 이들에게 인공지능이 추천해 주는 서비스는 달콤한 유혹을 넘어 너무나도 당연한 옵션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은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많은 것을 경험하며 가치관을 형성해가야 한다. 하지만 최근의 편식과 같은 정보 섭취는 아이들의 올바른 가치관 성립에 방해가 될 수밖에 없다. 편식이 몸 건강을 망치듯이, 인공지능으로 인한 정보 편식은 아이들의 정신 건강을 망치게 된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버블을 터트릴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어른들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균형 잡힌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편향적인 정보들로부터 벗어나도록 늘 신경 써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세상의 소식을 다양하게 접하기 위해 종이 신문을 구독해서 아침마다 보고 있다. 종이 신문을 발간하는 신문사의 편향성도 유의해야 하긴 하지만 포털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기사들을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구독의 가치가 있다.
아이들은 왜곡된 시선을 가지지 않도록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특히나, 유튜브와 같은 매체에 중독되지 않도록 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유튜브는 물론이거니와 최근 유행하는 쇼츠 영상에 빠지지 않도록 늘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다음 글에서는 우리 집에서 아이가 유튜브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하는 소소한 방법들에 대해 한 번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얼마 전 전국이 집중호우로 난리이던 때의 이야기이다.
31개월 우리 아들의 할아버지께서 그 와중에도 산악회를 간다고 해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아빠와 고모가 전화 통화를 마치고 아들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했다.
아들 : 할아버지 산에 가지 마!
아빠 : 왜 산에 가면 안 돼?
아들 : 왜 안 돼?
아빠 : 비가 많이 와서 안 돼
신문 1면에 나온 산사태 사진을 보고 이게 뭐냐고 물어보길래 비가 많이 와서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는지, 할아버지 등산 가는 것을 말리던 우리 아들의 귀여운 모습에 모두가 빵 터졌다는 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