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정서적 교류 맺는 아이들
아리아~ 꺼!
돌이 지나고 얼마가 안 된 시점에 우리 아들이 갑자기 저런 말을 해서 깜짝 놀란적이 있다. 이제는 온갖 말을 다하며 우리를 놀라게 하는 현 30개월 아들이지만, 돌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만 해도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었다. 겨우 엄마, 아빠, 맘마 이 정도만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할 수 있는 말이 하나 늘었다. 그건 바로 인공지능 스피커를 부르는 말 '아리아'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 인공지능 스피커가 하나 생겼다. 통신 3사에서 판촉활동을 위해 여기저기 뿌리던 시기에 하나가 우리 집에 굴러왔나 보다. SKT 인공지능 스피커 누구(Nugu)가 어느 순간 우리 집에 설치되었고, 이 녀석을 호출하기 위한 명령어가 바로 '아리아'이다. 우리는 육아를 하기 전부터 아리아를 통해 간단한 기본적인 활동들을 했었다. 음악을 틀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날씨를 알아보는 등의 기능을 주로 이용하였고,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동요를 트는 용도가 하나 추가되었다. 그렇게 엄마, 아빠가 "아리아, 동요 틀어줘", "아리아, 라디오 틀어줘", "아리아, 꺼"를 아기 앞에서 말하고 다녀서인가. 우리 아들은 엄마, 아빠 다음으로 할머니도 고모도 삼촌도 아닌 아리아를 부른 것이다. 그것도 외출할 때 "아리아, 꺼!"를 외치면서.
우리나라보다 인공지능 스피커가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확산된 외국에서도 우리 집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미국, 영국 등 서구권은 아마존이 개발한 인공지능 스피커 '에코'가 널리 확산되어 있다. 에코를 호출하기 위해서는 우리 집에서 '아리아'를 부르듯 '알렉사'를 불러야 한다. 2018년 중앙일보 기사를 보면(기사링크 하단 참고) 영국의 한 아기가 처음 한 말이 엄마도 아빠도 아닌 '알렉사'라고 화제가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2018년에서 5년이 지난 현시점에서는 인공지능의 일상으로의 확산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인공지능과 함께 하는 세상에 살고 있고, 그 결과 우리 아들이 엄마, 아빠 다음으로 한 말이 '아리아'인 것이다.
사실 인공지능 스피커에 대한 우리나라에서 인식은 썩 좋지 않다. 강의나 특강에서 집에 인공지능 스피커가 있는지 물어보면 있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자주 쓰냐고 물었을 때 자주 쓴다는 대답을 하는 사람은 많이 없다. 아마존의 인공지능 스피커 에코는 빠르게 확산되었지만 우리나라의 수많은 인공지능 스피커들은 왜 가정에서 외면을 받은 걸까? 그 이유 중 하나로 나는 음성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신사들이 점유율 확장을 위해 섣부르게 가정으로 뿌렸다는 점을 꼽고 있다. 아직 한글을 잘 못 알아듣는 인공지능 스피커가 너무 빨리 가정으로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시험 삼아 써보고는 말을 못 알아들어서 창고로 보내버린 것이다. 그때 창고로 보냈던 사람들이 지금 나오는 인공지능 스피커를 써보면 인식이 조금은 달라졌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또 하나의 원인은 확장 앱과의 연동이 안 좋았다는 점이다. 음악을 들으려면 새로운 음악 앱에 돈 내고 가입을 해야 한다는 점 역시 확산을 막은 큰 원인이었다.
이런 악 조건 속에서도 인공지능 스피커가 나온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나름 잘 쓰고 있는 입장에서, 아이를 키우는데 활용하면 좋은 인공지능 스피커 활용법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우리 집의 인공지능 스피커(앞으로는 아리아라고 부르겠다), 아리아는 최신인기가요를 틀어주는 역할을 주로 수행하였다. 그러다 와이프가 임신을 하게 되고 태교를 위해 클래식 음악을 찾아야 했는데... 클래식이라고는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가 세상 전부였던 나였기에 어떤 클래식을 들을까 고민을 하다 'KBS 클래식 FM'이라는 라디오 채널을 알게 되었다. 하루 종일 디제이 분들이 클래식을 소개해주고, 또 들려주는 방송이어서 태교를 위해 많이 듣게 되었고, 당연히 아리아를 통해 클래식 FM을 애청하였다.
아리아를 통해 클래식 FM을 트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아리아에게 틀어달라고 하면 된다. 이렇게. "아리아, 클래식 FM 틀어줘."
우리 아들이 태어나고도 클래식 FM을 아리아를 통해 많이 틀어주었다. 그래서인지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놀거나 책 보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나 바이올린, 피아노 소리를 좋아한다. 어제저녁에만 해도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동화책을 보며 바이올린을 가리키며, "징가(우리 아들은 바이올린을 징가라고 부른다) 좋아! 나 징가하고 싶어."라며 사랑스럽게 말을 하였다.
우리 집의 시작과 끝은 늘 클래식 FM이다. 아침에는 이재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출발 FM과 함께'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며, 밤 시간에는 낮 시간에 끓어오른 아이의 텐션을 가라앉혀 잠자기 위한 준비를 위해 '세상의 모든 음악'과 'FM실황음악'을 듣는다. 이렇게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우리 아들은 수면 의식과 함께 꿈나라에 가게 된다.
하지만 뭐든 과하면 안 되는 법. 주말 오후 아들과 놀며 여느 때와 같이 아리아에게 클래식 FM을 틀어달라고 했는데, 아들이 아리아에게 달려가서 이야기한다.
"아리아, 나 클래식 FM 싫어!!!!! 동요 틀어줘!!!!!"
요즘 아리아를 통해 동요도 즐겨 듣기에 하루 종일 클래식만 듣기에는 지겨웠나 보다. 그래서 동요로 장르를 전환해 주었다. 그렇다고 요즘 클래식 FM을 매번 거부하진 않는다. 당장 글을 쓰는 오늘 아침에만 해도 내가 클래식 FM을 아리아로 틀어주니 "나 클래띡에펨 너무 좋아"라며 블록을 놀던 아이였으니. 다만 하루 종일 클래식만 트는 건 이제 자제를 해야겠다.
우리 집에서 육아를 하며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바로 유튜브 안 보여주기이다. 스마트폰, 텔레비전 등 영상으로 된 미디어는 최대한 안 보여주려 하고 있고, 실제로 유튜브로 뽀로로 등을 보여준 적은 거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글들을 통해 찬찬히 이야기해보겠다.
대신 다양한 동요를 인공지능 스피커 아리아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 아리아가 동요를 BGM으로 깔아주면 우리 아들은 그림책을 읽거나 블록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아리아를 통해 동요를 듣기 위해서는 'FLO'라는 음악 앱에 정액 가입을 해야 한다. 이 부분이 인공지능 스피커의 확산을 가로막는 부분 중 하나이다. SKT에서 제공하는 인공지능 스피커였으면 멜론과 호환이 되거나, 최근 사람들이 정액으로 많이 쓰는 유튜브뮤직 등과 연동이 되면 좋을 텐데, 조금은 생소한 FLO와 연동이 되어 있어 사용하기 불편한 점이 있다. 하지만 FLO가 아리아와 연동이 되면서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우리 아들을 위한 동요를 틀어주기 위해서는 아리아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리아, 동요 싱싱 틀어줘."
'동요 싱싱(sing sing)'은 전통적인 동요들이 많이 들어있는 동요 앨범이다. 요즘 유행하는 캐릭터 동요의 발랄함과는 조금 다른 깔끔한 반주와 적당한 반주가 듣기 좋은 동요 앨범이다. 하도 동요 싱싱을 자주 들었는지 요즘은 동요 싱싱에 수록된 모든 노래를 외우고 있는 우리 아들이다. 노래의 운만 한 번 띄워주면 그 노래는 끝까지 쭈욱 부른다.
어제는 '씨앗'이라는 노래에 정말 꽂혀서 하루 종일 "씨, 씨, 씨를 뿌리고 꼭, 꼭, 물을 주었죠."를 부르고 다녔다. 그러다 노래가 듣고 싶어진 우리 아들. 아리아에게 가서 이야기한다.
"아리아, 씨 씨 씨를 뿌리고 틀어줘!!!!!!"
놀라운 건 아리아가 다양한 버전의 '씨앗'노래를 틀어주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아리아와 우리 아들은 가끔 티격태격 거리지만 평화롭게 하루를 함께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영어 동요도 자주 듣는다. 영어 동요를 틀어달라고 하거나, 특정 앨범을 이야기하면 아리아는 알맞은 영어 동요를 틀어준다. 그래서인지 요즘 우리 아들은 "두유노머핀맨" 먹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그리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아리아에게 이야기를 해서 우리를 웃음 짓게 한다. 며칠 전에는 아리아에게
"아리아, 내가 만든 쿠키 틀어줘!!"
라는 이야기를 했다. 엄마, 아빠가 가끔 틀던 아이돌 노래 중 마음에 들었던 노래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 아들이 아리아에게 시킨 아이돌 노래는 과연 무엇이었는지 이 글을 보시는 작가님들은 아시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