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에 필요한 마인드셋
여름휴가로 한 군데를 오래가기에는 아이가 어리고 여건도 좋지 않아, 다양한 곳을 짧게 다녀오며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식힐 수 있었다. 이번 여름 방문한 휴가지 중 하나는 충청남도 태안. 안면도 들어가기 전 해변에 위치한 펜션을 잡고 친구 가족과 함께 갯벌에서 조개도 캐고, 바비큐도 즐기며 짧지만 알찬 휴가를 즐겼다. 해변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들른 곳은 '안면도 쥬라기박물관'
이곳은 다양한 공룡 모형과 화석, 그리고 공룡 시대 전후 생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수많은 아이들과 가족들이 방문하는 인기 명소이다. 열심히 공룡과 생물들을 보며 돌아다니던 현 32개월, 당시 31개월 우리 아들은 이상하게 전시관 뒤편에 쓸쓸하게 치워져 있던 한 로봇 모형에 관심을 가진다.
다른 아이들은 공룡 모형, 혹은 동물 박제에 관심을 가지는데 우리 아들은 로봇에 꽂힌 듯하다. 기계로 만들어진 로봇이 다소 무섭게 느껴졌는지, 자꾸 도망갔다가 다시 와서 로봇을 보고는, 또 도망가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아빠에게 물어본다.
아들 : 로봇 왜 안 움직여? 로봇 어떻게 하면 움직여?
아빠 : 로봇은 코딩을 해야 움직일 수 있어
아들 : 나 코딩할래!!
아들, 그런데 코딩이 뭔지는 아니!!??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들며 코딩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전에도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코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제도권 교육에 코딩을 편입시키고자 하였으며, 우리나라 역시 코딩에 대한 관심도가 2010년대 중후반부터 급속도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 열기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 바로 인공지능의 본격적 대두, 알파고와 챗GPT의 등장이다.
이후 전산학 전공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이공계 학과의 경우 전자, 화공, 기계, 일명 전화기 전공이 대세였는데, 대세의 자리를 전산학 전공에 내어주고 말았다. 개발자의 몸값은 부르는 게 값이 되었다. (최근 개발자 모집 열기는 주춤한 모양새임) 외국의 대기업은 AI 전문가를 찾기 위해 수 억 원의 연봉을 제시하고 있고, 실제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AI 전공을 마친 프레쉬 박사들을 2~3억 원의 연봉을 주고 모셔가고 있다. 국내 역시 삼성, LG 등의 대기업은 물론 네카라쿠배로 통칭되는 IT 대기업들 역시 억대 연봉을 내걸고 인재 영입에 나서고 있다.
이쯤 되면 부모님들의 몸은 근질근질해진다. 우리 아이의 미래를 위해, 인공지능이 대세로 자리 잡은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코딩을 하루빨리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닌지.
모든 사람이 프로그래머가 될 필요는 없다. 향후 인공지능이 대세가 되는 세상에서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반드시 코딩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많은 인공지능 도구와 플랫폼들이 사용자 친화적으로 발전하면서 코딩 없이도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인공지능 시대에는 기술적 리터러시(technical literacy), 더 나아가 AI 리터러시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꼭 직접 코딩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기술이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해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딩을 직접 배우지 않더라도, 역설적으로 기술의 기본 원리와 영향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어야 인공지능 시대를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과학고를 다니던 2000년대 초반, 당시 정규 교과목에 '전산'이 있었다. (지금 영재교나 과학고에도 프로그래밍이 교과과정에 있는 것을 알고 있음) 전산 시간에는 C 언어를 배웠는데, 전설과 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당시 내신 성적은 절대평가로 채점하였는데, 학생들의 실력을 과대평가한 선생님이 시험 문제를 올림피아드 수준으로 출제하여 다수 학생들이 '양', '가'에 해당하는 성적을 받고 만 것이다. 학생들과 학부모의 항의로 재시험 등의 대책이 마련되며 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과학고 학생들이라고 모두 코딩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 준 사건이었다.
카이스트에서 전통적으로 인기가 있는 전공은 전자공학이다. 내가 다니던 시절에도 전자공학이 가장 인기가 있었고, 그 당시 전산학 전공은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인기가 꽤 높은 전공이었다. 하지만 전산학 전공을 하다 적성에 맞지 않아 중도에 포기하고 전과를 하는 학생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내가 전공을 했던 산업공학에서도 프로그래밍 관련 전공 수업이 꽤 있는데 많은 학생들이 프로그래밍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프로그래밍을 피해서 다니는 학생들도 다수 있었다.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공계 마인드가 갖춰져 있고, 이과적인 머리가 뛰어난 학생들이 모이는 곳에서도 전산학, 프로그래밍, 코딩이 적성에 안 맞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저 미래에 유망하다고 해서 적성에도 맞지 않는 아이들에게 코딩을 가르치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 될 수 있다. 강제로 코딩이라는 세계에 던져지게 되면 아이는 반감만 가지게 된다. 마치 수영 못하는 아이를 혼자서 수영할 수 있다며 물에 던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코딩이라는 것은 단순히 배우기만 해서 실력을 쌓을 수가 없다. 아무리 수학을 잘하고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도 코딩이 안 맞을 수 있고, 반대로 입시 교과목에 대한 성적은 조금 떨어질지언정 코딩을 잘하는 학생들도 많이 볼 수 있다. IT 기업에 가보면 학창 시절 성적은 조금 떨어졌지만 개발 하나는 기똥차게 잘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코딩을 단순 기술로 여기고 주입식으로 교육하면 될 것이라고 접근을 하면 큰코다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코딩의 기술적인 부분보다 그 기반에 있는 기본적인 사고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다. 아이들이 먼저 코딩을 비롯한 논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흥미와 호기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코딩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마인드셋, 문해력이나 회복탄력성과 같은 특성들을 개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코딩을 위한 근본적인 능력을 함양하고 마인드셋을 갖추고 있다면 대학 때 전공으로 처음 코딩을 시작해도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 실제로 회사에서 처음 코딩을 접한 사람들 중에 우수한 개발자로 성장하는 사람도 많다. 반대로 코딩부터 배워야지라고 덤벼들었다가 이 쪽 분야에 환멸을 느끼고 다시는 얼씬도 안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코딩을 배우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코딩부터 배워서는 안 된다.
본 포스트에서는 인공지능 시대 코딩의 중요성 및 코딩을 배우기 위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들을 살펴보았다. 다음 글들에서는 아이들의 연령대별로 코딩을 익히기 위한 접근 방법들, 그리고 갖춰야 할 마인드셋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중단 연봉 관련 기사 출처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30818/12075026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