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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와 부하의 평행우주

by 수메르인 Mar 19. 2025

"오늘 구내식당 왜 이리 부실해?"

"몰랐어? 어제 사장이 먹고 갔잖아. 어제는 반찬이 하나 더 나왔대."


그게 진짜 사장 때문인지는 모른다. 확실한 건 우리 회사 구내식당에선 항상 고기반찬이 넉넉하게 나온다고 사장이 믿고 있으리란 점이다. 사장과 우리는 다른 평행우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장의 세계에서 직원들은 회사에 충성을 다한다. 모든 기능은 효율적으로 작동하며 회사의 전망은 밝다. 그리고 구내식당에선 항상 영양 만점의 고기반찬이 나온다.


몇 년 전 사장이 남부 지역에 위치한 사무소에 방문했다.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사장이 사비로 저녁을 사기로 했다. 소장은 바닷가에 있는 나름 유명한 식당을 예약했다. 허름한 외관과는 달리 가격은 비쌌다. 충성심 가득한 소장은 직원을 시켜 미리 백만 원을 결제해 뒀다. 열명이 거나하게 먹었고 사장은 삼십만 원 남짓 지불했다.


"그 식당 참 싸고 맛있더구먼. 이쪽 오는 사람들에게 추천해 줘야겠어."


상사의 평행우주를 지탱하는 힘은 성실하게 맡은 일을 다하는 나머지 과몰입해버린 부하직원들이다. 회사원의 미덕이 상사의 지시를 빈틈없이 이행하는 것이라면 아부와 성실의 경계는 희미하다. 회사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서 직원은 하나의 부품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의 언행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알기 힘들다.


반면 직원들이 사는 세계는 흠이 많이 보인다. 각각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와중에 회사라는 조직의 미래는 산으로 간다. 젊은 직원들은 호시탐탐 탈출을 꿈꾼다. (그중에 일부는 성공하여 또 다른 부조리의 세계에 합류한다.)


운이 좋으면 승진을 하면서 조금씩 평행우주의 이동을 경험하게 된다.


몇 년 전 조직관리자가 되자마자 사람들이 친절해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갑자기 나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 영업 부서를 담당하게 되자 하루아침에 나는 하청업체들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같이 식사를 하는 기회가 늘어나고 디저트 같은 소소한 선물도 받는다. 예전 같으면 만나기 힘든 부류의 사람들과도 접점이 생긴다.


나에게 상냥한 사람들을 보며, 저 얼굴 뒤의 미소는 진심인지 연기인지 가끔 의심한다. 나중에는 안도하게 된다. 진심이든 가식이든 상관없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한 그들은 저 가면을 벗지 않으리라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직위가 주는 권위는 마치 거품처럼 자리를 떠나면 사라질 테다.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퇴직 임원들을 보며 초연해지리라 다짐했었다. 막상 경험해 보니 왜 그들이 놓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수완 좋은 몇몇은 거품이 꺼지기 전 다른 거품으로 올라타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그것도 나름 좋은 일이다. 


중요한 건 위치감각이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는 자각. 위치는 바뀔 수도 있다는 인정. 그래야 평행우주를 이동할 때마다 멀미에 비틀거리지 않고 똑바로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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