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장갑

by 마구리


밭일 세 번째 날이 지나자 장갑에 구멍이 뚫려 있다. 감자 나르고 가끔은 찍기도 하고 대부분은 찍어 놓은 감자 구멍에 흙을 덮는다. 오전 6시 30분가량 일이 시작되어 5시 전후엔 마치는 일정이다. 그렇게 세 날을 지나니 장갑을 갈 때가 온 거다.


보통 감자밭 하면 파슬파슬한 흙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 밭은 능률도 오르고 일이 쉬 끝난다. 감자 나르기도 편하고 무엇보다 찍고 덮는 데 큰 힘이 들지 않는다. 그럴 때면 함께 일하는 동료가 부르는 흥 돋는 노랫소리도 간간히 들리고 엉덩이 돌리며 허리 펴고 하늘 바라보자며 실없는 농담도 오가곤 한다.


올해(2022년) 감자밭은 사정이 달랐다. 기존 논을 감자밭으로 전환하면서 토질이 통상의 감자밭과는 달랐고 무엇보다 봄비가 오는 통에 흙이 질퍽해졌기 때문이다. 파종기는 하루하루가 바쁘기에, 비만 오지 않는다면 어지간한 밭은 들어가기 마련이다. 첫날 파슬파슬한 밭 만난 후 둘째 날과 셋째 날은 질퍽한 밭에서 일해야만 했다.


감자 밭일 세 번째 날이 지나자 장갑에 구멍이 나서 더 이상은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손 보호해 준 장갑에게 감사를.


감자 나르면서 발이 푹푹 빠지는 건 기본으로 감수해야 했다. 파슬한 밭에서 일하는 거에 거의 세 배는 힘이 더 들었다. 당연히 찍을 때 기계 돌아가는 속도가 늦어진다. 빠지는 발을 걷어 올리느라 시간이 더 들기 때문이다. 베테랑 감자 농사꾼들도 지난 이틀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힘이 든다 한다. 흥겨운 가락 대신 방귀소리만 여기저기 요란타.


압권은 찍어 놓은 감자씨 구멍에 흙을 덮는 일이다. 파슬한 흙인 경우엔 한 삽 떠 슬쩍 덮으면 서 쭉쭉 나가면 그만이다. 땅이 젖어 있는 경우엔 일단 흙을 뜨는 게 난망이다. 또 그걸 씨 구멍에 들어 올려 구멍을 막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아서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는 거다. 게다가 밭고랑은 왜 이리 긴지 덮어도 덮어도 비닐 씌운 밭고랑이 끝나질 않는 거다.


그렇게 세 날을 보내고 나니 장갑에 구멍이 뻥 뚫려 버리고야 만 거다. 오늘도 여기저기서 장갑에 구멍 나도록 일하는 분들이 천지삐까리일 거다. 논과 밭은 물론이거니와 공장과 길거리 그리고 식당에서 무수한 장갑들이 일하는 사람들 손을 거친 도구로부터 보호하고 있을 거다. 수많은 이들의 손길을 거쳐 내가 있어 왔고 지금 있고 또 있을 수 있을 그다. 그 손들의 노고에 경의와 감사를 보낸다.


2022-3-18, 마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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