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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망사항 May 09. 2024

사과 대신 망고?

2019년 10월, 베트남 호이안으로 가족여행을 갔다. 망고를 사려고 중앙시장에 들렀다. 망고 가격을 물으니 1kg에 3천 원이라 했다. "네, 주세요!"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금액에 비해 너무 싸다며 우린 좋아했다. 망고를 손질하는 동안 찬희가 잘생겼다는 칭찬도 해주시며 뭔가 짧은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난다. 사장님 표정이 환했다는 건 확실하다. 숙소에서 맛있게 망고를 먹었다.


여행에 돌아와서 알게 된 사실, 우리는 바가지를 썼다. 보통은 흥정하려 하고 그걸 예상해서 우선 높게 부르는데 우리는 아주 수월하게 응한 것이다. 큰 바가지를 쓴 것도 아니어서 재미난 에피소드가 생긴 걸로 만족했다. (찾아보니 2024년 망고 2kg에 3천 원에 구입 가능하다)


온 나라가 사과 때문에 시끄럽다. 평생(?)을 살면서 이런 사과 가격을 본 적이 없다.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부사 1알에 19,800원이라는 사진을 보았다. 명절도 아닌 지금 한 알에 7천 원, 8천 원도 한다. 대형마트에서 작은 사과 4~5개들이에 2만 원에 판매 중이다. 이마저도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은 가격이다.


거의 모든 물가가 올랐지만, 유독 사과 가격이 눈에 띈다. 과일 중에서 기본이라고 생각하며 당연하게(?) 맛봤던 사과를 자주 못 먹고 있다. 예전 같으면 사과농장에서 못난이 사과나 흠달이라 하며 따로 주문했던 사과가 포장이 되어 마트 한 편에 진열되어 있다.


2023년 봄 냉해가 왔다. '냉해'는 농작물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기온 조건보다 기온이 낮아 생기는 농작물의 피해이다(출처: 두산백과). 작년 꽃이 피는 3~4월에 추워지고 비가 많이 내려 꽃이 제대로 열리지 못한 탓이다. (농민들, 유통업 종사자들은 사과 가격 상승을 바로 예측했다.) 당연히 사과 생산이 잘되지 않았고 전년도(2022년도) 대비 수확량이 약 30%나 적다. 농산물 10%만 적어도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데 무려 3 배이다. 그 결과 도매 거래 가격이 거의 두 배로 폭등했다.


하지만 가을에 출하한 사과는 이미 농부님들이 갖고 있지 않다. 지금 이 비싼 사과 가격은 농가 소득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 유통 상인이 이익을 취하고 있는 구조이다. 엄청나게 많은 사과가 지금 스마트한 저온 창고에 보관 중이다. 약품 처리를 하면 1년까지 보관이 가능하다니 이 또한 놀라운 사실이다. 그날그날 시장가격에 따라 물량을 일부 꺼내 판매를 하고 있다. 나라에서는 급히 사과 보조금을 줘서 소비자 구매가격을 낮추었다. 'PD 수첩'에서 저장 창고마다 가득 찬 사과를 보니 화가 났다. 폭등한 사과 가격 때문에 시끌시끌한 바깥 시장과 '평온한' 사과 저장창고의 모습이 너무나 대비된다. '도대체 이게 뭐야?'


사과 가격이 비싸니 왜 사과는 수입하지 않느냐는 소비자의 목소리가 커져간다. 과일 한 가지를 수입하려면 병충해 유입 방지를 위해서 7~8년이 걸린다. 농민들은 농가 소득 하락을 우려해 사과 수입을 반대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입씨름을 하고 있는 동안 웃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중간 유통업자이다. 도매시장(공판장)에서 거래되는 농산물의 수수료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라 매출과 이윤이 아주 안정적이다. 예를 들어 사과 한 상자 5만 원짜리 20박스가 거래되는 경우, 10만 원짜리 10박스가 거래되는 경우를 볼 때, 도매시장에서는 시장가격에 따른 차이가 없다.


농부님에게는 농사가 도박과 다를 게 없다. 백 퍼센트 날씨에 좌우되는 농사, 홍수가 나고 태풍이 오면 애써서 지은 1년 농사가 그대로 사라져 버린다. 요즘처럼 이상기후 현상이 빈번한 이때, 농부님들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마음일 테다. 사과 재배 한계선이 북상하고 있다는 기사가 종종 보인다. 예전에 대구, 경북에서 사과를 주로 재배했는데, 지금은 강원도까지 옮겨간 상태이다. 2050년에는 강원 산간지역에서만 사과 재배가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올봄, 사과 가격이 폭등했을 때 우리 집에서 사 먹은 과일은 주로 태국에서 온 망고이다. 베트남에서 사본 적을 제외하면 망고를 사 먹은 건 올해가 처음이다. 평소에는 비싸기도 했고 굳이 안 먹어도 괜찮았다. 치솟는 사과 가격에 비해 오히려 망고 가격은 착해졌다. 망고를 좋아하는 동거인과 아들은 신나게 망고를 맛봤다. 물가가 오른 상태에서 서민들은 당장 가격을 우선순위에 두게 되고, 우리의 식탁은 바나나, 망고, 오렌지, 칠레산 포도 등 수입과일로 채워지고 있다.


망고는 주로 항공이나 배로 수입을 하는데, 항공으로 도착한 것이 맛과 품질, 신선도 측면에서 조금 더 가격이 높지만 반응이 좋다. 우리 집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달달한 망고가 인기가 많다. 항공으로 온 만큼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고, 보존료(방부제?)를 듬뿍 뿌렸다는 사실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다.


수입되어 온 망고가 배출한 탄소는 제대로 외부비용을 지불한 것일까? 절대 그럴 리가 없다. 가격이 싼 망고를 먹으면서 결국 사과농사를 더 어렵게 만드는 이상기후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기후 위기에 힘을 보탠다. 치킨게임이 아니라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우리는 잘 안다.


당장 사과 가격에 보조금을 주고, 혹여 사과를 수입하는 것만이 해결책이 아니다. 당장은 그걸로 문제가 해결되나 싶겠지만 여러 번 거치게 되는 유통과정이라든지, 중간 유통업자가 큰 이익을 보게 되는 구조는 분명 개선해야 할 점이다. 곡물자급률이 약 25%도 채 안 되는 우리나라에서 농업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있습니까?


기후 위기가 더 심해져 이상기후 현상이 더 빈번하게 일어나게 될 때에도 우리는 안정적으로 75%의 곡물을 수입할 수 있을까? 그때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25% 곡물은 문제없이 생산될까. 지금은 사과로 온 국민이 아우성이지만 매 시기마다 다른 먹거리가 문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 먹거리에 대한 대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예전처럼 사과를 부담 없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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