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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푸른 Jan 30. 2024

쌀로별과 빼빼로

오후에 교육이 있다. 그래서 아침에 회사로 11km, 점심에 교육장으로 10km, 퇴근 때 집으로 12km를 전기 자전거로 이동해야 한다. 벌써부터 허벅지가 저린다.


출근해서 일하는데 저번주에 프로젝트에 합류한 젊은이가 인사한다. 이름은 신지. 몇달 전에 이미 인사를 나눴었는데 처음 본 듯 군다. 알던 사이라고, 그때 들었던 그에 대한 얘기를 해줬다. 너희 부모님은 더치와 일본인인데 더치 아빠의 성씨가 별로라 일본 엄마의 성씨를 따랐다고 했잖아! 그제야 우리가 구면임을 기억했다. 


잠시 후, 파티션 건너에 있는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coffee?" 힐끗 보니 모니터를 보고 있다. "alright." 그가 컵을 챙겨 내 쪽으로 왔다. 나도 컵을 챙겨 커피머신으로 갔다. 적극적으로 친교활동을 하는군. 커피를 뽑고 테이블로 가자고 했다. 서로 경력과 사는 곳을 얘기했다. 신지는 곧장 일 관련 질문을 했다. 내가 아는 선에서 대답했다. 신지는 내 대답의 결함을 지적했고 나는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말했다. 신지는 '너는 사실 모르는구나' 했다. 쟤보단 내가 더 잘 아는데 설명을 못하면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심과 정말 모르는 걸 수도 있겠단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신지는 내 사수는 아냐고 물어서 그럴 거라고 했다. 신지는 바로 일어섰고 나도 따라갔다.


신지는 내 옆에 있던 사수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고 사수는 나와 비슷한 대답을 했다. 신지는 알겠다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사수가 한 대답이 내 대답과 비슷한데도 확연히 달랐던 신지의 태도에 초라해졌다. 혹시 사수의 대답이 나랑 좀 달랐을까? 그럼 옆에 있는데도 내가 못 알아들었다는 뜻. 그렇담 못 알아들은 데다 더 낫게 설명하지도 못한 게 된다. 무능의 콤보다.



점심에 교육장으로 가서 교육을 들었고 교육은 예정보다 빠르게 끝났다. 집에 오니 긴 자전거 여행에 허기가 진다. 창고에 있는 네덜란드 쌀로별을 꺼내 먹는다. 기름에 튀긴 느끼한 과자라 반 봉지 넘게 먹으니 속이 느끼하다. 그래도 더 처먹고 싶다. 오늘 겪은 수모에 대한 값싼 위로로. 자전거도 오래 탔으니 괜찮을 것이다. 어서 빼빼로를 집어든다. 달다해서 한 봉지가 금세 뚝딱이다. 다 처먹고 나니 속은 느글거리지만 승자가 된 것 같다. 역시 나의 최종 파괴자는 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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