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아도 밟히지마 ep.05]
취업 전 합격했던 곳은 작은 규모의 인터넷 방송국이었다. 방송국은 워낙 채용 기회가 적고 공채가 열린다고 해도 보통 한 명, 많아야 두 명을 뽑기에 큰 방송사가 아니어도 많은 경쟁자가 몰린다. 방송국 경력도 없었고 대학생이었던 내가 합격했던 이유는 자기소개에 있었다. 합격 후 며칠 뒤에 국장님께서 말씀해주셨는데 훨씬 뛰어난 지원자가 있었지만, 나의 자기소개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실력보다 앞으로의 가능성 덕에 내 인생의 첫 방송국에 입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부끄러운 곳이었다. 방송국이라기보단 주로 지역의 뉴스와 홍보, 광고 영상을 만드는 프로덕션이었고, 단독 건물이 아닌 상가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었던 아주 작은 곳이었다. 사무실에 들어가면 전 직원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비록 인터넷 방송국이었지만 아나운서로 합격한 딸을 자랑스러워했던 부모님에게도 난 한 번도 방송국 사진을 보여드린 적이 없다. 그저 열심히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버틴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다양한 일을 했다. 뉴스 진행뿐 아니라 지역 축제 현장 리포팅, 영어 MC, 홍보영상, 안내방송 제작 등 프로덕션답게 많은 영상을 제작하는 곳이었기에 유일한 아나운서였던 나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참 많았다. 그중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해야 하기도 했다.
입사하자마자 눈에 띄었던 것은 그곳에 있던 강아지였다. 회사 사무실 안에 강아지가 자유로이 돌아다녔고, 그 강아지는 회사에서 키우는 모두(?)의 강아지였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딱 거기까지였다. 일하는 곳에 애완견이 있다는 것도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배변 훈련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강아지는 이곳저곳에 실례(?)를 했다. 뉴스 하러 들어가다 밟을 뻔한 똥을 가까스로 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방이 오줌과 똥이었다. 그럼 그것을 누가 치우는가? 그건 바로 똥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의 몫이었다. 출근하자마자 눈을 감고 다니고 싶은 현실이었다.
출근한 지 2주가 지나고 한 선배가 화장실 청소는 돌아가면서 하는 거라고 알려줬던 날, 그리고 화장실 청소를 하던 채로 뉴스를 하러 들어갔던 날, 나는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하는 일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모 지역 의원이 촬영을 마치고 메이크업은 아나운서가 지워줬으면 한다는 말에 모두들 내게 어쩔 수 없음을 부탁하는 눈빛을 보냈던 적이 있었다. 그날은 집으로 돌아와 많이 울었다. 서럽고 또 서러웠던 그날 밤을 잊지 못한다.
상처받을 일이 더는 없었으면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내 기대와 다르게 다른 환경에 놓일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만약 누군가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이야기한다면 묵묵히 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고 위로해줄 것이다. 나도 거짓말처럼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는 모두 과거가 되었다. 이제는 웃을 수 있다.
“어떠한 부정적인 경험도 자기가 어떻게 승화하느냐에 따라 치욕의 과거가 될 수도 있고, 빛나는 월계관이 될 수도 있다.” - 책,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