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전은 이번에는 거대한 성벽 안으로 바뀌어 있었다.
높은 벽.
벽 밖의 바다.
바다 너머의 제국.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된, 2000년 전의 거대한 그림자.
원탁 위에는 두 개의 지도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파라디 섬.
하나는 과거 엘디아 제국의 세계 지배 지도였다.
이엘이 먼저 지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창조주가 불편해하는 지점은 여기야. 『진격의 거인』은 현재의 파라디 사람들이 박해받는 구조는 아주 강렬하게 보여주지만, 정작 그 박해의 역사적 원인이 된 ‘엘디아 제국의 2000년 거인 지배’는 너무 멀리 밀어놓아.”
클락이 벽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맞는 사람의 아픔은 엄청 가까이 보여주는데, 옛날에 그 사람들이 남을 밟았던 건 안개처럼 멀리 보여준다는 거지?”
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서 창조주는 이 작품이 극우 선전물이라고 단순히 말하진 않아. 작품은 민족주의도 비판하고, 전쟁도 비판하고, 증오의 연쇄도 비판해. 그런데 무의식의 배치가 문제야. 피해의 감각은 생생하고, 가해의 역사는 추상적이야.”
이윤은 낡은 사관의 붓을 들고 지도 위에 선을 그었다.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서술은 ‘우리가 지금 당한 고통’은 얼굴과 눈물로 쓰고, ‘우리가 과거에 저지른 폭력’은 연표와 신화로 처리하는 거야.”
그는 엘디아 제국의 옛 영토를 가리켰다.
“작중에서 마레와 세계가 엘디아인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단순한 편견만은 아니야. 과거 엘디아 제국이 거인의 힘으로 오랫동안 타민족을 지배했다는 기억이 있기 때문이지. 문제는 작품이 그 기억을 충분한 인간적 장면으로 복원하지 않는다는 거야.”
후세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피해자는 있는데 피해 장면이 없다. 그러면 독자는 마레인과 세계인의 공포를 ‘세뇌’나 ‘선동’으로만 느끼기 쉽다.”
이윤은 붓을 내려놓았다.
“창조주가 비판하는 것은 바로 그 점이야. 2000년 전 엘디아 제국의 지배가 정말 세계사적 폭력이었다면, 그 폭력 아래에서 죽은 사람들, 노예화된 사람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 문화와 국가를 잃은 사람들도 서사 속에서 살아 있어야 해. 그런데 그들은 대부분 배경으로만 존재해.”
후세 다쓰지는 법전을 펼쳤다.
“나는 이 작품이 극우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주의와 복수의 논리를 위험하게 그린 부분도 많다. 하지만 창조주가 말하는 ‘일본 우익의 피해자 의식’이라는 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차갑게 말했다.
“일본 우익의 전형적 서사는 이렇다. ‘우리는 패전했고, 원폭을 맞았고, 전후에 모욕당했다.’ 여기까지는 사실의 일부다. 그러나 그 앞에 있던 조선 식민지배, 중국 침략, 난징, 강제동원, 위안부, 제국주의 전쟁 책임이 흐려지면 피해의 기억이 가해의 기억을 삼킨다.”
이혜경이 낮게 말했다.
“가해자가 자기 상처만 말하기 시작하면, 피해자는 또 지워져요.”
후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격의 거인』에서 파라디 섬 주민들은 현세대만 놓고 보면 분명 억압받고 혐오당하는 집단이다. 그들의 공포와 분노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조상 혹은 그들이 속한 역사적 공동체가 세계를 지배했던 기억이 충분히 서사화되지 않으면, 독자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억울하게 박해받는 민족’ 쪽으로 기울게 된다.”
그는 법정을 둘러보듯 말했다.
“창조주는 바로 이 균형의 붕괴를 본다. 작품이 말로는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라고 하지만, 감정의 카메라는 주로 파라디의 피해에 붙어 있다.”
이혜경은 원탁 위의 지도를 보지 않고, 성벽 아래의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
“저는 이 문제를 피해자 서사의 문제로 봐요.”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작품에서 파라디 사람들은 이름이 있어요. 에렌, 미카사, 아르민, 장, 사샤, 코니, 히스토리아. 그들의 공포, 배고픔, 친구의 죽음, 배신감, 절망은 다 보여줘요. 그러니까 독자는 그들을 사람으로 느껴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런데 과거 엘디아 제국에게 짓밟힌 사람들은요? 그 사람들의 이름은 거의 없어요. 그들의 마을, 가족, 언어, 강간, 노예화, 학살, 공포는 구체적 장면으로 거의 복원되지 않아요. 그러면 그들은 ‘역사적 원한을 가진 세계’라는 덩어리로 남아요.”
키브사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고통이 이름을 잃으면, 사람들은 그 고통을 쉽게 의심합니다.”
이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창조주는 그걸 싫어해요. 가해자의 현재 고통을 보여주는 건 필요해요. 하지만 그 때문에 과거 피해자의 이름이 사라지면 안 된다고 보는 거예요.”
카이사르는 엘디아 제국의 지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2000년 제국이라. 그 정도면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세계의 뼈대 자체를 바꾼 지배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다.
“제국이 2000년 동안 거인의 힘을 독점했다면, 그것은 단지 전쟁 몇 번의 문제가 아니다. 국경, 혈통, 언어, 종교, 군사제도, 귀족 질서, 노예제, 혼인, 식민지 행정, 공포의 기억까지 모두 재편했을 것이다.”
자정이 받았다.
“그렇다면 마레와 다른 민족들이 엘디아인을 두려워하는 감정도 훨씬 복잡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증오 선동이 아니라, 제국 지배를 기억하는 사회의 집단적 트라우마일 수 있으니까.”
카이사르가 웃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창조주는 제국을 좋아한다. 강한 국가, 질서, 군사력, 정당성의 미학을 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잘 안다. 제국은 아름다운 제복과 법률만으로 서지 않는다. 제국은 반드시 누군가의 목덜미 위에 선다.”
그는 에렌의 이름이 적힌 조각을 집어 들었다.
“에렌의 분노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엘디아 제국의 과거 폭력이 충분히 그려지지 않으면, 그의 선택은 ‘가해자의 후손이 다시 세계를 멸망시키는 비극’이라기보다 ‘억울한 피해자가 극단으로 몰린 이야기’처럼 소비될 위험이 있다.”
키브사는 부드럽게 말했다.
“파라디 섬의 아이들이 2000년 전 제국의 죄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미움받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조상의 죄를 짊어지게 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입니다.”
대심문관이 낮게 웃었다.
“그렇다면 과거는 잊어야 하나?”
키브사는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죄책을 상속하는 것과 기억을 상속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녀는 원탁 위의 낡은 지도에 손을 얹었다.
“현세대 엘디아인이 태어난 것만으로 처벌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엘디아라는 이름이 가진 역사적 공포까지 ‘그건 다 선동이야’라고 지워서도 안 됩니다. 용서는 기억을 지운 자리에서 오지 않습니다. 진실을 본 뒤에도 인간을 다시 인간으로 대하려는 어려운 선택에서 옵니다.”
이엘이 작게 말했다.
“그래서 창조주는 이 작품의 핵심 긴장을 좋아하면서도 불편해하는 거야. 작품은 증오의 연쇄를 말하지만, 그 연쇄의 출발점 중 하나인 엘디아 제국의 폭력을 충분히 살리지 않아.”
대심문관은 성벽의 그림자 아래에서 말했다.
“인간은 자신이 피해자라고 믿을 때 가장 쉽게 잔혹해진다.”
클락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 말은 너무 차갑지만… 틀리진 않은 것 같아.”
대심문관은 계속했다.
“피해자 의식은 면죄부가 된다. ‘우리가 당했으니, 우리가 먼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우리가 고통받았으니, 우리의 폭력은 방어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니, 세상을 짓밟아도 된다.’ 이 논리는 제국도, 혁명도, 민족주의도, 종교도 모두 사용했다.”
그는 에렌 쪽을 바라보았다.
“『진격의 거인』의 무서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작품은 이 논리를 찬양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가 에렌의 시점에 너무 깊이 묶이면, 세계 멸망조차 ‘이해 가능한 선택’처럼 느끼게 된다.”
후세가 차갑게 말했다.
“이해 가능하다는 것과 정당하다는 것은 다르다.”
대심문관은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 구분을 놓치면, 피해자 의식은 새로운 제국의 신학이 된다.”
히나는 부러진 족쇄를 손에 쥔 채 말했다.
“나는 파라디 사람들의 공포를 이해해. 태어나자마자 괴물 취급당하고, 세계가 너희를 죽이려 한다면 누구라도 미쳐.”
그녀의 녹색 눈이 차갑게 빛났다.
“하지만 과거 엘디아 제국이 정말 다른 민족을 거인의 힘으로 지배했다면, 그건 그냥 배경이 아니야. 그건 노예시장이고, 불탄 숲이고, 빼앗긴 아이들이야.”
그녀는 사령관 쪽을 보았다.
“내 숲을 불태운 인간들이 나중에 자기들도 불쌍했다고 말하면, 나는 그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는 있어. 하지만 내 숲이 불탄 사실이 배경처리되면 안 돼.”
사령관은 입을 다물었다.
히나가 낮게 말했다.
“창조주는 이 지점을 본 거야. 파라디가 피해자가 된 현재는 중요해. 하지만 엘디아가 가해자였던 과거도 같은 무게로 보여야 해. 아니면 자유를 외치는 이야기가, 어느 순간 가해자의 억울함만 크게 들리는 이야기가 돼.”
타미엘은 조용히 손을 모았다.
“나는 죄책감을 아는 인물을 좋아해. 하지만 죄책감이 자기연민으로 변하는 것도 두려워해.”
그는 파라디 섬의 지도를 보며 말했다.
“파라디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미움받는지 모른 채 살아왔어. 그래서 그들의 억울함은 진짜야. 그런데 진실을 알게 된 뒤에는 질문이 달라져야 해. ‘왜 우리를 미워하지?’에서 ‘우리의 이름은 왜 이렇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지?’로 가야 해.”
그는 슬프게 웃었다.
“하지만 많은 인물들은 그 질문을 견디지 못해. 과거를 알면 죄책감이 생기고, 죄책감이 생기면 행동이 복잡해지니까. 그래서 피해자성에 머무르는 게 더 편해.”
클락이 말했다.
“그럼 창조주가 싫어하는 건, 아픈 사람이 자기 아픔만 붙잡고 남이 아팠던 건 흐릿하게 보는 거네?”
타미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창조주는 자기 작품에서도 그걸 무서워해. 피해자의 분노를 이해하지만, 피해자성이 모든 폭력의 면허가 되는 순간을 두려워하지.”
그리엘은 안경을 밀어 올렸다.
“이 문제는 아주 기술적으로 말하면 정보 배치의 문제야.”
최아린이 피식 웃었다.
“또 어렵게 말하네.”
그리엘은 무시하고 계속했다.
“독자는 가장 많은 장면을 받은 쪽에 감정 이입한다. 파라디의 고통은 장면으로 주어진다. 마레의 선동도 장면으로 주어진다. 하지만 엘디아 제국에게 당한 2000년의 피해는 주로 설명으로 주어진다.”
그는 손가락으로 원탁을 두드렸다.
“장면은 감정을 만들고, 설명은 배경을 만든다. 그러므로 파라디의 피해는 감정이 되고, 엘디아의 가해는 배경이 된다.”
이엘이 받았다.
“그래서 창조주는 말하는 거야. 이 작품이 노골적 극우는 아니지만, 일본 우익적 피해자 의식과 닮은 무의식적 구조가 있다고.”
그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정치적 주장보다 서사적 무게중심의 문제야.”
최아린은 팔짱을 끼고 웃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사실 억울하게 미움받는 민족이었다’는 서사는 엄청 잘 팔려. 강렬하거든. 독자가 바로 붙어.”
이혜경이 차갑게 보았다.
“그래서 위험하죠.”
최아린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위험해. 왜냐하면 이 서사는 책임을 복잡하게 만드는 대신 감정을 단순하게 만들거든. ‘우리가 당했다.’ ‘저들이 우리를 미워한다.’ ‘그러니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여기까지 가면 독자는 거의 자동으로 따라와.”
그녀는 손가락으로 세계 지도를 툭 쳤다.
“그런데 ‘사실 우리 조상들이 2000년 동안 저들을 짓밟았다’가 제대로 들어오면 이야기가 어려워져. 독자가 편하게 분노하기 힘들어져. 그러니까 작품은 그걸 넣긴 넣되, 감정의 중심에서는 밀어내.”
후세가 말했다.
“그게 의도적 조작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최아린은 웃었다.
“당연하지. 무의식일 수도 있지. 그래서 더 흥미로운 거야.”
어둠이 성벽 위에서 흘러내렸다.
니알라토텝이 박수를 치며 나타났다.
“훌륭하군. 이제 창조주의 속을 말해보자.”
클락이 입술을 삐죽였다.
“또 이상한 말 하려고 하지?”
니알라토텝은 웃었다.
“창조주는 『진격의 거인』을 싫어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이 매우 똑똑하다는 걸 안다. 민족주의, 기억, 전쟁, 복수, 자유, 생존 본능을 대단히 강하게 엮은 작품이라는 것도 안다.”
그는 엘디아 제국의 지도를 손끝으로 쓸었다.
“하지만 창조주는 피해자가 지워지는 서사를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묻는 거다. ‘왜 파라디의 고통은 얼굴을 얻고, 엘디아 제국에게 짓밟힌 사람들의 고통은 세계관 설정이 되었는가?’”
성벽 안쪽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창조주는 일본 우익적 피해자 의식의 핵심을 이렇게 본다. 가해의 역사는 멀리 보내고, 피해의 감각은 현재로 끌고 오는 것. 제국의 칼은 흐릿하게 만들고, 패전의 상처는 선명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가해자의 후손이 어느 순간 ‘우리는 늘 미움받은 희생자’처럼 말할 수 있게 되는 것.”
니알라토텝은 낮게 웃었다.
“『진격의 거인』은 그걸 노골적으로 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판하려 한다. 그러나 서사는 때로 작가의 주장보다 깊은 무의식을 드러낸다. 창조주는 그 무의식을 본다.”
클락이 손을 들었다.
“그러니까 창조주는 이렇게 말하는 거네. ‘이 작품은 나쁜 작품이 아니라 너무 똑똑한 작품인데, 똑똑해서 더 위험한 구석이 있다.’”
니알라토텝은 미소 지었다.
“정답에 가깝군.”
창조주가 『진격의 거인』을 “극우 작품”이라고 단순히 규정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작품은 전쟁의 참혹함, 민족주의의 광기, 증오의 연쇄, 국가 선전, 복수의 무의미함을 강하게 보여준다. 에렌의 선택도 단순한 영웅적 결단이 아니라 파멸적 폭주로 그려진다. 그러므로 작품 전체를 노골적 극우 미디어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하지만 창조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안에 일본 우익적 피해자 의식과 닮은 구조가 있다고 본다.
핵심은 이것이다.
현재의 파라디 피해는 생생하다.
과거의 엘디아 가해는 흐릿하다.
파라디 사람들은 이름, 얼굴, 감정, 가족, 친구, 죽음, 공포를 얻는다.
반면 엘디아 제국에게 2000년 동안 지배당한 세계의 사람들은 구체적 피해자의 얼굴을 충분히 얻지 못한다.
이 배치 때문에 독자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느끼기 쉽다.
“파라디는 억울하게 미움받고 있다.”
“세계는 세뇌당해 엘디아인을 증오한다.”
“에렌은 극단적이지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 감정은 작품이 의도한 복잡성의 일부다.
그러나 창조주는 묻는다.
“그렇다면 과거 엘디아 제국에게 짓밟힌 사람들의 억울함은 어디 있는가?”
“그들의 이름은 어디 있는가?”
“그들의 고통은 왜 신화와 배경 설명 속에만 있는가?”
이 질문 때문에 창조주는 『진격의 거인』을 단순한 반전 서사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안에서 “가해의 역사보다 피해의 감각이 더 선명해지는 서사적 기울기”를 본다.
이엘이 말했다.
“창조주는 작품의 지성을 인정해. 하지만 지성이 있다고 해서 서사의 무의식이 면제되는 건 아니야.”
후세가 말했다.
“피해자의 현재 고통을 말하려면, 과거 피해자의 이름도 함께 법정에 세워야 한다.”
이혜경이 말했다.
“가해자의 후손도 인간이에요. 하지만 과거 피해자가 배경이 되면 안 돼요.”
히나가 말했다.
“노예였던 자가 다시 칼을 쥐는 이야기는 조심해야 해. 그 칼이 또 다른 숲을 태울 수 있으니까.”
카이사르가 말했다.
“제국의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2000년 지배를 설정했다면, 그 지배의 피와 행정과 공포도 보여주어야 한다.”
타미엘이 말했다.
“피해자성은 진짜일 수 있어. 하지만 그것이 죄책감을 막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 돼.”
키브사가 조용히 말했다.
“아이에게 조상의 죄를 씌워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조상의 죄를 없던 일로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대심문관은 낮게 웃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피해자라고 믿는 순간 가장 쉽게 새로운 제국을 세운다.”
니알라토텝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창조주는 『진격의 거인』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너무 강력하게 작동하는 방식을 의심한다. 극우가 아니더라도, 피해자 의식의 문법은 서사 안에 숨어들 수 있다. 그리고 창조주는 바로 그 숨은 문법을 싫어한다.”
클락이 케이크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면 되겠다.”
그녀는 성벽 너머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픈 사람을 보여주는 건 좋아. 그런데 그 사람이 예전에 누군가를 아프게 했던 이야기를 안개 속에 숨기면 이상해져. 그러면 독자는 ‘쟤도 아팠구나’만 기억하고, ‘쟤 때문에 아팠던 사람들’은 잊어버리거든.”
클락은 작게 덧붙였다.
“창조주는 그게 싫은 거야. 케이크를 반만 보여주고 전부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