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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이는 별 Nov 27. 2023

집 4화-경기 신도시에서 서울로


    

     

건강이 나빠져 명예퇴직을 했다. 더 이상 경기도에 살 필요가 없었다. 서울로 이사가고 싶었다. 살던 아파트를 내놨다. 남편이 방해를 했다. 이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부동산에서 손님을 데려오면 문 열어 주지 말라며 안 판다고 소리를 치며 내쫒았다.     

남편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무슨 일이나 처음엔 완강히 반대하나 설득을 하면 따라온다. 집은 큰 돈이 걸려 있어 형식적으로라도 동의가 필요하다. 뒷끝 있는 말은 덤으로 따라오지만 이미 일은 끝난 후라 개의치 않는다. 매매 계약을 했다.     


학교에 근무하다보면 동학년 선생님들과 친해진다. 교실도 가깝고 매일 만나 협의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가정사 이야기도 나눈다. 동학년 선생님 중 딸 사위가 서울 서부 이촌동에 아파트를 4억5천에 샀는데 8억 5천이 되었다고 했다. 아니 무슨 아파트가 얼마나 좋길레 그렇게나 비싸진단 말이지. 서울은 국립국악원에 연수차 오가던 사당과 방배정도 밖에 모른다. 차를 운전해 서부 이촌동을 갔다. 용산 정비창 개발소식에 이곳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었다. 60 년대 마을 같은 곳이었다. 비싸기도 할뿐더러 낯설어 순교지 성당을 지나 동부 이촌동으로 건너왔다. 처음 와보는 동네인데 오래 살던 곳처럼 마음이 편했다. 고즈넉한 동네 분위기가 맘에 쏙 들었다. 남편도 나도 여기서 살자고 했다. 햇볕을 좋아해 남향집을 샀다. 앞엔 한강공원 뒤엔 국립박물관과 용산 가족공원이 있었고 가까이 이촌역이 있었다.      


기존 아파트를 잔금까지 다 받은 후 서울 집 계약을 했다. 동생이 집을 팔면서 계약금을 받고 이사 갈 곳의 집을 계약했다. 중도금을 받을 날짜가 되었을 때 매수자가 잠적을 했다. 연락이 되지 않으니 다른 사람에게 팔수도 없다.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우리 집을 산 매수자가 집값의 80 %를 은행 대출로 사는걸 보고 놀랬다. 우리는 은행 대출을 받아 본적이 없었다. 지금도 은행 대출은 없다. 대출도 자산이라고 레버리지로 활용하라고들 한다. 대출과 갭투자로 부를 이룬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기회는 늘 있었으나 나는 그릇이 작다. 옆에 안전주의자 겁쟁이 남편이 있다.      

일가구 일주택자로 수익은 억대로 났지만 양도세는 없었다.     


신도시 집값은 서울 집 사는데 부족했다. 대신 서울집은 전세금이 많았다. 전세를 주고 기존 살던 신도시에 전세를 살다가 2년 후 서울로 이사 왔다. 서울 트라우마는 없어지고 전철의 편리함과 한강공원의 저녁 노을, V자를 그리며 이동하는 철새들의 모습, 조용한 용산 가족 공원 박물관의 한적함이 편안했다.

여름날 저녁 이촌 한강 공원에 나가 바람을 쐰다. 강가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노래를 불렀다. 강 건너편 도로에 줄지어 달리는 자동차의 불빛이 마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기차 같았다. 이사를 반대하던 남편은 매일 한강 변에 나가 운동을 했다. 단지 내에 주민센터가 있어 다양한 문화강좌를 이용할수 있다. 남편은 헬스와 수영도 했다. 아침 등교 시간이면 젠틀한 일본인 선생님들이 스쿨버스 밖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는 모습을 본다. 일본인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유치원 초 중 고가 다 있다.  심심산골 계곡에서 태어나 여러곳을 거치며 살았다. 그중 이 동네가 제일 살기 좋았다.      


용산 미군 부대가 평택으로 이전하기 전 구경을 간 적이 있다. 지인이 그곳 군무원이었다. 차를 타고 부대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곧 공원이 될거라는 말을 들었다. 이곳이 공원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지를 눈으로 직접 보고 가슴에 품었다. 뜻밖에 그곳 가까이에 집을 마련했다. 국립박물관 계단 위에 올라가 공원이 될 곳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었다. 이촌동 아파트는 국립박물관 가는 길이 지하 내부로 연결이 되어 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둘째에게 이 집을 증여하고 우리는 수도권 전원 주택을 살 계획으로 강화 양평 광주를 돌아봤다. 시간 날 때마다 돌아 다녔으나 남편은 다 싫다 했다. 큰 딸이 말했다. 나는 경기도 집을 주고 동생은 서울 집을 주느냐고. 그래 동생도 과천 집을 사 주겠다. 과천은 저층 주공 아파트 단지들로 이루어져 쾌적하고 살고 싶은 곳이었다. 전철역도 가깝고 양재천 지류가 흐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지금은 재건축으로 인해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선 곳이 늘었다. 전세를 안고 샀다가 돈을 모아 월세로 돌렸다. 둘째 고등학교 때 청약 통장을 만들어 주었고 청약을 위해 친구 집으로 주소도 옮겨 놓았지만 매매했다. 당시 부동산 경기는 바닥이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2013년이었다. 집은 내가 필요할때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딸이 과외를 한 돈이 이십만원이면 오십만원으로 만들어 딸 명의의 저축을 했다. 취업 후 봉급은 모조리 저축하고 필요한 용돈을 내가 주었다. 그걸 증빙으로 증여세를 아낄 수 있었다. 딸은 해외로 이직하면서 과천 집을 팔아 해외에 집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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