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웅에서 안중근 의사 역의 주인공은 누가 죄인인가를 반복해 부른다. 역설적인 이 노랫말은 커다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삼십여 년의 교직 생활을 하며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준 상처가 무수함을 상기한다. 나도 죄인이다. 어딜 가면 전직 교사라는 말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교사라고 말하면 행동에 제약이 생긴다. 선생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잣대를 들이민다. 재직 시엔 둘이 번다고 주위에서 바라는 게 많았다. 특히 양가 모친과 형제들이 대놓고 달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덕 보려고 아들 키웠다고 했다. 친정어머니는 큰 딸은 살림 밑천이라며 두 분 다 노골적으로 바랐다. 퇴직 후엔 연금 받아서 어디다 쓰냐. 베풀며 살아야지. 청력이 나빠져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명퇴했다. 연금이 적다. 내 앞가림할 정도밖에 안 된다. 딸들과 식당 가서 밥 먹을 때 내가 부담한다. 어려서 가난하게 살아 아끼며 사는 게 몸에 배어 노년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98세인 친정어머니는 너는 돈도 많으면서로 시작되는 압박은 여전하시다.
내리 3년을 내반에 온 아이가 있었다. 작고 마른 아이였다. 한 학년에 9반이나 있었다. 이런 우연도 드물다. 1학년 때는 그냥 묻혀 지내다 2학년이 되었다. 나도 학군지에서 살았으니 그도 나도 같은 동네에서 살았을 테지만 가정환경은 도무지 알 길이 없고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게 맞다. 2학년이 되었다. 여전히 글을 읽지 못했다. 친구도 없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받아쓰기를 하면 늘 영점이었다. 가끔씩 모든 글을 ㅈ자음 한자만 반복해서 쓰거나 알 수 없는 자음 모음을 나열하는 아이가 간혹 있으나 1학년을 지나면 나아진다. 이 작은 아이는 2학년이 되어도 자음 만을 암호 부호처럼 잔뜩 썼다. 칸을 모두 채운다. 아니 지난 일 년 간 나는 이아이에게 무얼 가르쳤단 말인가. 책임감에 아이의 글 읽기에 박차를 가했다. 왜소한 체격으로 맨 앞자리에 앉히고 따로 할 공부를 주었다. 읽고 쓰기가 시급했다. 그러나 아이는 늘 졸고 있었다. 반 아이들 중 누구도 이 아이에 대해 관심도 없다.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조차 없으랴.
당시 교내 합창부가 내 업무 분장이었다. 담임 배정과 업무 분장 시 바꿔달라는 선생님도 있으나 이는 특수한 상황이 아닌 한 이의 없이 맡는다. 합창부 보조로 난임 치료를 받느라 늘 조퇴해야 하는 선생님을 배치해 주었다. 방과 후엔 합창부 연습을 해야 한다. 합창 부원들을 소집하는 것도 어렵다. 이 일만 해줘도 수월할 텐데 보조 교사는 도움이 될 수 없었다. 혼자서 힘들었다. 대외 합창부 경연은 경쟁이다. 무슨 대회든 하다 보면 열성을 내기 마련이다.
합창부 연습이 없는 날엔 수업 끝난 후 혼자 남겨두고 읽기를 시켰다. 올핸 별수를 써서라도 읽고 쓰기는 할 수 있게 하리라. 나의 자존심이 걸려있다. 아이를 더 다그쳤다. 화를 내가며 가르쳤다. 화낸다고 더 잘할 아이가 아닌 걸 알면서도 나한테도 짜증이 났다. 이번 해에도 또 합창부 업무가 주어졌다. 대회 전날까진 매일 연습을 했다. 합창부 연습을 하고 나면 진이 빠진다. 교대 다닐 적 심화반은 국어교육이었다. 합창 대회 나가면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자 다른 대학 음악교육학과를 전공한 친구가 늘 나왔다. 그는 라쿠카라차 노래를 멋들어지게 지휘했다. 부끄럽고 기가 죽었다. 힘만 들지 효율적이지 못한 내 합창 지도를 받는 아이 들에게도 미안할 일이다. 아이들은 진심으로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다. 반별로 중창대회를 하는 행사 시엔 온 학교는 노래로 활기가 넘친다. 내버려 두어도 스스로들 어찌나 열심인지 밝고 맑은 노래 부르기 이름에 걸맞은 분위기가 조성된다.
합창부 지도는 이아이에게 쏟아야 할 여력을 남겨두지 않았다. 이게 핑곗거리로 내 책임을 가볍게 했다. 2학년 1년이 아무 진전 없이 흘러갔다. 나도 그도 3학년이 되었고 준이는 또 내 반이 되었다. 3년을 가르치게 되었다. 나를 다시 만난 준이는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나는 죄인이 되었다. 이번엔 반드시 읽고 쓸 수 있어야 한다. 작년보다 더 다그쳤다. 학창 시절 내내 장학생을 유지했던 자존심과 유능한 교사여야 한다는 사명감이 아이 앞에서 무너져 내려선 안된다. 또 화를 내며 가르쳤다. 나에 대한 화가 겹쳤을 것이다. 어제 배웠던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매일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오늘은 가자만 익히자. 내일은 나자다. 가나다라 마바사 아자 차카 타파하는 입으로 하는데 도통 읽어 내질 못한다. 무려 3년째다. 환장할 일이다. 3학년이 끝나갈 겨울이 되었다. 마음이 더 급해졌다. 이대로 널 둘 수는 없어. 추운 교실에서 퇴근 시간까지 집에 보내지도 않고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아이는 그 와중에도 졸았다. 가끔씩 미술 시간이나 실험적인 수업을 할 때면 흥미를 보였다. 겨울방학이 되기 전 수업 시간의 반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나눈다. 우리 집 아이들의 사진을 남기기 위해 마련한 카메라를 가져와 반 아이들의 개인별 사진을 찍어준다. 연출도 물론 필요하다. 사진을 찍으며 준이 웃어야지 했더니 웃으며 즐거워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미술 데칼코마니 수업을 할 때도 즐거워했다. 결국 읽지 못한 채 겨울방학을 맞았다.
그해 겨울밤 성탄 전야제 행사를 마치고 자정이 넘어 집으로 가던 중 그 집만 불이 환하게 켜진 마늘 가게 앞을 지나가다 가게 안을 보게 되었다. 커다란 다라에 든 물에 잠긴 마늘을 까고 있는 아이를 본 순간 가슴이 쿵 무너졌다. 넌 이 시간까지 그렇게 마늘을 까고 있었구나. 가게에 나와 형들과 함께 다라 주변에 둘러앉아 마늘을 까는 모습이 가슴에 박혔다. 너에겐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었구나. 따뜻한 위로와 다정한 선생님이 필요했구나. 미안해. 미안해. 3년간 지은 죄가 밀물처럼 밀려오던 날 밤이었다. 그 작은 아이 하나도 보듬지 못한 나는 지금까지도 죄인이다.
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