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마을을 구했으니

학교 사회

by 반짝이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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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식을 마친 후면 친목회 주관으로 일정을 잡아 나들이를 간다. 2박 3일 갈건지 1박 2일 갈건지 바람잡이 선생님이 나선다. 아이들이 어리면 자고 오는건 힘들어해 참여 인원이 적어진다. 당일치기로 다녀오자는 의견도 나온다. 이때 바람잡이 선생님은 일일이 찾아 다니며 빠지지 말고 다같이 가야 된다고 적극적인 독려를 한다. 1박 2일이라도 가야된다고 못가는 선생님을 죄인 만든다. 참여 여부를 묻는 회람 칸에 일단 간다고 동그라미 표시를 한다. 이 바람잡이 선생님은 시어머니가 살림을 해주신다. 집안 살림 걱정 없이 산다. 맘껏 놀러 다녀도 된다. 나는 하루만 집을 비우면 나간집 된다. 바람잡이 선생님은 부장과 교장 교감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했다. 시어머니 음식 솜씨가 기가 막히다고 했다. 특히 맛있는 소갈비찜은 입에서 살살 녹더란다. 손이 많이 가는 나물류까지 다 맛있었다고 한다.오랜 친구인 란이는 우리 시어머니 음식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못 먹어 봤다며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음식을 그리워 했다. 늙어 시어머니를 모시지 못한걸 후회했다. 나는 시어머니 음식을 먹어본적이 없다. 아예 음식을 안하셨다. 깻잎장아찌가 입맛 돋우는 밑반찬인줄 몰랐다. 김인자 선생님이 나눠준 깻잎장아찌를 얻어 먹곤 이런게 밑반찬이구나를 알았다. 친정 어머니의 밑반찬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오랫동안 몸이 아파 친정어머니의 반찬을 보내지 못했다. 오빠와 동생이 어머니의 반찬을 걱정하며 방법을 강구한다고 했다.결국 반찬가게의 손을 빌렸다. 밥 한숟갈도 입에 넣지 못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평소 사먹지 않던 국산콩 두부를 사다 된장국을 끓여 놓고 출근했다. 몸이 아프면 멀쩡하던 치아까지 아프다. 입맛을 잃어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는 내가 반찬을 해다 주어야할 사람들이다. 솜씨가 없는 나는 식구들 먹을 음식도 두시간은 걸려야 먹을만한 음식이 만들어진다.


고등학교 시절 솜씨 좋은 친구들은 쉬는 시간이면 뜨개질을 했다. 조끼까지 짜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아예 시작을 못한다. 어차피 끝까지 마치질 못한다는걸 안다. 가정 시간에 바느질도 완성해 보지 못했다. 가정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태임아, 넌 바느질 솜씨는 안갖고 태어났나보다.”

음식 솜씨도 안 갖고 태어났다. 집안 어른들에게 보고 배운 것도 없다. 먹어본것도 없다. 애들은 지 아빠가 해준 음식을 잘 먹었다. 윤기 자르르 돼지고기 볶음이나 닭 도리탕 고등어 무조림등 식탁에 냄비째 놓고 잘 먹었다. 특히 꽃게 무침을 잘 먹었다. 쓰다 보니 금손 남편이 있는걸 알지 못했다.

동생 시어머니는 고추장과 된장을 주셨다. 직장 생활 하느라 언제 살림하느냐며 며느리 주실때마다 내 몫도 챙겨 주셨다. 안타깝게도 일찍 돌아가셨다.


외로운 내게도 솜씨 좋은 남의 시어머니들 못지 않게 가끔씩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선생님이 있었다. 방학식날 전직원 바람쐬러 갈때에 맛있는 음식을 잔뜩 준비해오던 김인자 선생님이다. 야들야들 하얀 한치회가 상할까봐 얼음주머니에 담아 가져 온다. 누가 무얼 좋아하는지 미리 알고 갖추갖추 준비해 온다. 솜씨도 좋다. 잔치상 차림이다. 내가 이런 복도 있구나. 전날 장봐다 혼자서 밤새 장만한 음식들이다. 배부르게 실컷 먹는다. 이런 때면 뒷말하는 선생님도 꼭 있다.

“너무 음식을 많이 해왔네. 딱 맞게 해오지,”


김인자 선생님은 동짓날이면 뜰통에 팥죽을 써와 수업 끝 난후 데워놓고 먹으라며 부른다. 호박죽은 여러번 얻어 먹었다. 월례 행사다. 호박죽은 언제 먹어도 별미다. 그때 급식 시행이 되기 전이다. 파전도 물론이다. 김인자 선생님 남편은 닭을 길렀다. 부화장에서 막 깬 병아리들을 가져다 영계 될 때까지 기르는 작업을 하셨다. 여름이면 이 삼계탕용 닭을 상자째 담아와 우리들에게 마리당 500원에 팔았다. 시장에 갈 시간이 없는 나는 선생님이 가져오는 닭고기가 고마웠다. 500원이라니 거저 나눠 주는 것이다. 여러 마리를 사다 먹을 수 있다. 먹는 것만 챙기는 게 아니다. 생글생글 잘 웃는다. 큰 언니다. 위로도 해주고 조언도 해준다. 속상한거 일러도 된다. 교장 교감에게 어려워 말 못하는것도 말해주고 조정해준다. 분란이 있다 싶으면 금방 화해를 시킨다.


선생님도 나도 기한이 다 차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다. 그 학교엔 종일 유아반이 있다. 젊은 아기 엄마 선생님들에게 인기다. 1순위 희망지였다. 김인자 선생님은 이 학교에 특별 초빙교사로 갔다. 젊은 엄마 선생님들이 많은 학교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학교에서도 천사는 여전히 빛났다.


몇 년후 소식을 들었다. 이 아름다운 천사 선생님에게 그만 유방암이 찾아왔다. 퇴직하고 제주도로 이사 갔다. 김인자 선생님이 좋아 옆 땅을 사 집을 지어 이사 간 조인자 선생님을 만났다. 이분도 반듯한 분이다. 사람은 끼리끼리 만난다고 하지 않던가. 캐리어를 끌고 제주도 가던 중 전철 역에서 만났다. 어찌나 반가운지 한참을 두손을 붙들고 마주 바라봤다. 우린 신도시 학교 개교 멤버다. 남다른 동지애가 있다. 생글생글 웃으며 세상을 다 이해해줄 것 같던 선생님이 그립다. 나도 그 옆에서 살고 싶다.

쓰다보니 30여년 교직 생활 중 좋은 선생님들이 굴비 엮듯 줄줄이 나온다. 나도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들의 대열에 들어 있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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