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학교 중 학군 좋다고 소문 난 곳으로 옮겼다. 집에서 도보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처음 가던 해 교과서 업무를 배정 받았다. 일년에 두 번만 한달 정도 일하면 된다. 학생수에 맞춰 학년별 과목별 수를 맞춰 주문하고 배부하면 된다. 그닥 복잡한 업무가 아니다. 2학기 되기 전 교과서가 왔다. 교과서 보급소에선 트럭으로 싣고와 현관에 쏟아놓고 가버렸다. 운동장에 내려 놓는다는걸 안된다고 사정해 겨우 현관에 들여 놓았다. 저 많은 교과서들을 어떻게 하나. 아무도 관심이 없다. 교장 교감도 행정 실장도 남의 일 보듯 모른 척이다. 이상하게 학교 기사님 두 분이 도끼 눈으로 저걸 어떻게 하나 보자 관심을 가지고 알짱거린다. 눈치 마이너스 백이다. 고구마 밭이다. 기사님은 먼저 태클을 건다. 현관에 두면 안된다고 빨리 옮기라고 했다. 학년별 과목별 숫자와 학생 수를 맞춰 각 학년에서 가져갈 수 있도록 조치하면 되는데 이 기사님은 자꾸 재촉을 한다. 아직 교과서를 아동에게 배부할 시기는 아니다. 빠르다. 전입 전출생들을 감안해야 한다. 동학년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했다. 아이들을 동원해 1층 현관에서 3층 빈 교실로 옮겼다. 새 교과서 묶음 덩어리는 아주 무겁다. 아이들이 고생했다. 기사님들은 계속 쳐다보기만 할뿐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뒷마무리 청소까지 다 마쳤다. 학년별 과목별 교과서 숫자와 학생 수를 맞추다보니 교과서 수가 많이 부족하다. 보급소에 찾아가 가져왔다. 전입 전출생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
학교 기사님이 교과서 보관 교실을 자주 들락거린다. 드디어 교장을 찾아가 교과서 보관 교실 청소 상태가 좋지 않다며 일렀다. 교장은 직원 회의 때 뜬금없이 이 말을 알렸다. 뭔소리인지 자물쇠로 잠가 놓고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는데. 열쇠는 내가 갖고 있다. 물론 기사님도 갖고 있다. 교실 모든 열쇠 꾸러미는 기사님도 관리한다. 눈치 마이너스 나는 빗자루를 들고 가 청소를 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교과서 운반 수당이 있다는걸. 기사님 두 분이 그걸 받아가고 싶었는데 눈치없는 이 바보탱이가 못 알아 먹는다. 그 수당이 있다는걸 미리 알았더라면 행정실장에게 말해서 수당을 받아 갈 수 있도록 해주고 아이들 고생도 시키지 않을 수 있었다. 교과서 운반 수당이 있다는걸 전혀 몰랐다.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지불할리도 없다. 이런건 알고 있는 기사님이 솔직하게 의논을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도 모르는 수당을 두고 자기들끼리 차지하려 사람을 괴롭힌거다. 교과서 운반 수당을 받은 적이 없다. 학교 돈에 대한건 우리 교사들은 아무 권한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다. 크지 않은 돈이었을테고 행정실에서 알아서 처리했을거다. 기사님들이 사정을 알게 되었는지 제풀에 죽어 간섭이 사라졌다. 이런 경우를 가끔 겪었다. 모르는 사이에 오해를 받아 미움 받고 있는지 조차 눈치못채다가 한참 후 잘못 알았다며 느닷없는 사과를 받은 적이 있다.
어느 날 자타공인 잘 생긴 남자 선생님이 만나자고 했다. 할 말이 있으시단다. 마음이 예쁘게 뵈지 않으니 내 눈엔 전혀 잘 생겨 보이지 않는다. 시커먼 도둑놈 같다. 같은 날 같은 장소로 출장을 다녀왔다. 나, 시선생님, 재주 많고 예쁜 여선생님, 그리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하고 반듯한 지은 선생님, 이렇게 넷이서 출장을 갔다. 창의적 학습 결과물 대회였다. 우리반 아이는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덕분에 나도 지도교사상으로 도교육감상을 수상했다.시선생님은 예쁜 여선생님과 같이 있고 싶어 따라간 출장이다. 물론 둘은 일찍 만나 미리 갔다. 시선생님은 물었다.
“김선생, 그날 출장에 지은 선생님도 갔었죠? 지은 선생님이 우리 둘 사이를 소문 낸거 맞죠?”
이 남자는 내가 자기들 편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사랑에 빠지면 상황판단이 안 된다. 진즉에 알고 있었다. 이 둘의 연애를. 동학년이라 매일 볼 수밖에 없었다.
“지은 선생님은 절대 소문 낼 사람이 아닙니다.”
정작 둘의 연애를 소문 낸 사람은 교과서 운반 수당을 받을 수 있을까하여 나를 괴롭힌 기사님이었다. 숙직을 하는 날이면 건물 실내 전기 차단을 해야 한다. 그래야 잠을 잘 수 있다. 시선생과 예쁜 그 애인이 퇴근을 않고 저녁 늦게까지 둘이 남아 행복에 빠져있는걸 이 기사님은 매일 확인한다. 기사님은 선생님들이 늦게 퇴근하는걸 싫어했다. 대놓고 우리도 좀 일찍 쉽시다며 빨리 가라고 짜증을 냈다. 일부러 전기를 차단해 쫒아내기도 했다. 기사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둘의 연애를 퍼뜨렸다. 그냥 봐도 안다. 연애하는지 싸우는지. 이 둘은 자기들만 아는 비밀이라고 아무도 모를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다 퍼진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제야 이미 퍼진 소문을 지은 선생님이 잘못 알고 소문을 펴트린 걸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경악케 한건 재주 많고 예쁜 애인 선생님이다. 그 시선생 집에 가끔 들러 사모님이 해주는 밥을 대접받고 싸주는 반찬을 챙겨 온다고 했다. 직접 그 말을 자랑스럽게 했다. 동학년이라 그 둘의 행복한 표정들을 매일 여러차례 마주한다. 수업 시작종이 울려도 교실 들어갈 생각을 잊은채 둘은 마주보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혼자 고민도 많이 했다. 이 일을 사모님께 알려야 하나. 어떻게 언제 알려야 하나. 고민만 많이 하다 결국은 못하고 그 학교를 떠나왔다.
나도 처녀때 나쁜 남자에게 끌렸다. 그냥 살짝 마음이 간 것 같은데 벌써 저렇게들 알아차리고 놀렸다. 빵을 사서 그 나쁜 남자에게 갖다 바치고 있었다. 놀리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네가 무엇을 먹으려드냐. 이몽룡도 성춘향에게 반해 온갖 먹을 것을 권했었지. 정신 차리고 다시 보니 그 나쁜 남자에게 애인이 있다는것까지 건너건너 들려왔다.
‘입은 왜 저리 큰거야 . 말은 왜 저리 교양없이 해. 멋있는데라곤 하나도 없잖아’
큰 키에 좋아보여 마음 끌렸는데 그 큰게 뵈기 싫어졌다. 다행히 콩깍지가 금방 벗겨졌다.
애인에 빠진 시선생은 지은 선생님을 입 싼 여자로 만들려 했으나 그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들은 오히려 어처구니 없어 다들 웃고 말았다. 이구동성 지은인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감춰줄줄 아는 사람이지. 지은 선생님은 모두가 인정하는 입 무거운 사람이다. 이마에도 써졌다. 나 착함, 나 바름, 성실, 최선 다함, 희생적임.
어느 날 인자 언니네 닭을 사게 되어 지은샘과 나눠 먹으려 갖고 갔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현관문이 빼꼼히 열려 있다. 주희야 부르니 지은샘 남편이 문을 연다. 현관 바로 입구에서 마늘을 까는 중이었다. 이런 자상한 남편은 지은 샘이나 되니까 만나 사는거다. 이 집은 몸이 불편한 장인 장모를 모시고 살았다. 이보다 더 긴 말이 필요없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들이란 바로 이 부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런 분의 장점 중 자녀를 잘 키운다. 딸 주희는 서울대 약대를 나와 지금 약사를 하고 있다. 약국 앞을 지나갈 때마다 보기 좋다.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