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겉보기엔 영낙없는 아줌마다. 키도 크다. 얼굴도 크다. 엉덩이도 넓다. 그러나 온 운동장에 음악이 울려 퍼지고 단상 위에서 무용이 시작되면 순간 딴 사람으로 변한다. 그 유명한 전설의 무용가 최승희가 되어 2천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을 하나로 만든다. 선생님들은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티셔츠에 츄리닝 바지는 그 어느 화려한 궁중무 의상을 뛰어넘는다. 뒤로 돌아서서 춤을 추면 전교생이 하나가 되어 자유롭게 있는 자리에서 다같이 춤을 춘다. 매일 2교시가 끝나면 중간 놀이 시간이다. 학교는 살아있는 어린이 나라가 된다.언젠가 아이들을 데리고 경복궁에 간적이 있다. 국립 민속 박물관의 개관 기념으로 매주 토요일 3시면 무료 공연이 진행되었다. 한성준의 손녀 한영숙 선생의 살아 생전의 태평무가 준비되어 있었다. 뜻밖의 좋은 기회였다. 발 디딤새가 화려한 태평무를 바로 눈 앞에서 구경했다. 정중동이라 불리는 입춤도 한영숙 선생이 추니 명무다. 이때 궁중무에 반해 두산 아트홀로 국립국악원으로 찾아 다녔다. 호두까기 인형이나 백조의 호수 공연은 돈이 만만치 않다. 우리 춤은 단돈 몇 만원이다. 명목은 아이들 눈 틔워주기였으나 내가 반해 다녔다. 결국 국악대학원까지 등록했다. 약한 체력이 견뎌내지 못하고 학업은 중도 포기했다.
한낱 초등교사의 춤을 화려함의 진수인 태평무와 견주다니 그것도 명인에 갖다 대다니 하겠지만 우리 정자 선생님의 춤은 살아있는 역동적인 춤이다. 한영숙 선생은 아담하고 귀여운 분이다. 정자 선생님은 한영숙 선생보다는 선이 굵고 큰 역동적인 춤사위의 최승희와 비슷하다. 2천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인생 춤이다. 매일 추는 춤사위가 달랐다. 춤 동작이 매일 바뀌니 아이들이 재미있어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전설의 무용가 최승희의 춤을 한번 본 사람은 그 아름다움에 병을 앓을 정도라고 한다. 월북한 최승희는 가진 재능을 북한에선 펼치지 못했으나 세계적인 무용가로 이미 이름을 날렸다. 이념이라는 쓸데없이 만들어낸 사상은 예술가들의 발목을 잡는다. 천재 무용가 최승희는 물론 문장가 이태준 정지용 백석등 암흑 속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하는 예술가들이 어디 한둘인가.
나는 감히 정자 선생님을 최승희에 비유한다. 방학 연수로 정자 선생님의 무용 강의를 접했다. 춤추는 정자 선생님의 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9남매의 장손과 결혼한 여장부이자 아름다운 언니다. 이런 배우자는 누가 만나는가?
학교에 교실이 부족해 누군가는 강당을 써야했다. 선생님은 당연하다는 듯 내가 쓰겠다셨다. 이제 갓 학교에 입학하는 1학년이다. 책걸상도 없다. 내가 국민학교 1학년때 가교사에서 책걸상 없이 공부했다. 틈새 벌어진 가교사 마루 바닥에서 찬바람은 매섭게 올라오고 자칫하면 아까운 연필을 빠뜨리던 경험이 있다. 10여년이 흐른 후에도 교실이 부족하고 책걸상 없이 공부하던 학교의 현실은 그대로였다. 왜 학교는 항상 뒤쳐져 세상을 따라잡기가 어려운가. 마루 바닥에 엎드려 글씨를 써야한다. 천정이 높고 넒은 강당은 소리를 모아주지 못한다. 가르치는게 당연 힘들다. 선생님은 카리스마만 있는게 아니다. 강당 한 귀퉁이에서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듯이 따스한 엄마로 아이들을 가르치셨다. 강당 수업도 이렇게 아름다울수가 있구나. 평생에 이런 선생님을 만난다는건 인생의 복이다. 책걸상보다 더 중요한 선생님은 언제나 사랑으로 대해주신다. 긍정적이다. 불만은 구워먹는건가요? 웃는 얼굴이다. 눈앞에서 천사를 볼 수 있는 기회다. 학교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선생님이었다. 희생과 양보는 당연했다. 즐겁게 최선을 다했다. 결국 정자 선생님은 광역시의 교육청에서 스카웃해 모셔갔다. 오래 오래 우리 학교에서 전설로 남았다. 우리 학교뿐 아니라 간곳마다 전설로 남는 선생님이리라.
어느 날 동학년의 멋쟁이 선생님이 교실로 찾아왔다. 돈이 필요하다며 빌려달라셨다. 어디에 쓸건지 묻지 않고 빌려 주었다. 내가 쓸거 아닌데 알아서 무엇하나. 백만원이었다. 멋쟁이 선생님은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사랑에 빠지면 눈에 뵈는게 없다. 얼마 후 학교에서 난리가 났다. 1등수를 받으려 공을 들이던 교무부장님이 1등수를 받지 못했다. 누구냐 1등수를 받아간자가 오리무중이다. 승진에 관심 있는 교사들간에 뒷조사가 시작되었으나 아무도 모른다. 내신 결과가 드러나자 멋쟁이 선생님이라는게 알려졌다. 승진이 아닌 사랑하는 남자가 살고 있는 도시로 가야한다. 얼마를 교장에게 주었느냐도 다들 궁금해했다. 멋쟁이 선생님은 과감하게 단가를 대폭 높여놓았다. 내가 빌려준 돈이 그렇게 쓰여질줄은 몰랐다. 1980년대였다. 교장은 돈 백만원에 1등수를 팔았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랐다. 멋쟁이 선생님은 목표를 달성했고 나는 아무에게도 돈 빌려준 일을 말하지 않았다. 1등수의 상한선 금액은 무성한 소문으로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