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위로자 친구 영희

학교 사회

by 반짝이는 별

시인 백석의 고향마을 사람들에 관한 시를 읽다가 어렸을 적 친구 영희가 생각났다.

산 아래 조그마한 집에 살던 영희 어머니는 희고 고운 얼굴에 단정히 빗어 넘긴 쪽진 머리로 늘 단아한 차림새였다. 마당이 티끌하나 없이 깨끗해 밥풀이 떨어지면 주워 먹을 수 있겠다며 웃었다. 우리 집 마당은 두엄더미에 닭들이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녀 지저분했다. 영희도 엄마를 닮아 퍽 예뻤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갸름한 얼굴이었다. 영화배우 같았다. 영희는 키가 커 맨 뒷자리에 앉았다. 달리기를 잘해 운동회 때면 계주 선수로 뛰었다. 운동회의 꽃은 청군 백군 계주 달리기다.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피구도 오재미도 고무줄 놀이도 으뜸이었다. 무서워서 못타는 그네도 휙휙 높이높이 새처럼 잘 탔다. 서글서글해 친구들이 다 좋아했다. 낭랑한 목소리로 책을 잘 읽었다. 선생님도 예뻐하셨다. 놀이를 잘 못하는 나를 잘 끼어주었다. 고무줄을 잡게 해주고 땅따먹기도 끼어주고 오재미 피구 할 때면 맞추지 않고 살려 주었다. 우리 집이 아버지가 안 계셔서 친구들이 자주 와 놀았다. 영희도 가끔 왔다. 웬일인지 우리 집에 와 놀면 어찌 알고 영희 오빠가 쫓아왔다. 집에 가라며 화를 냈다. 영희는 오빠를 무서워했다.


어느 날 욕심 많고 잘난 척 하던 아이의 어머니가 교문에 서 계셨다. 영희가 오자 기다렸다는 듯 잡아채며 쥐어박고 다그쳤다. 흙바닥에 넘어뜨리기까지 했다. 치마에 얼룩이 많이 묻어 있었다. 등굣길 많은 아이들이 보는데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네가 우리 아이랑 태임이랑 못 놀게 하는 거지”

영희 엄마에겐 뭔가 내가 모를 불쌍한 사연이 있을게다. 영희네도 우리 집처럼 아버지를 본적이 없다. 이걸 빌미 삼아 무고한 영희를 걸고 넘어진거다. 그 아이 엄마가 비겁하다. 영희도 그 누구도 그 아이랑 놀지 말라는 말은 아무도 안했다. 영희도 자주 못 온다. 그 아이 엄마는 선생님께도 이르셨다. 그 아이는 스스로 잘나 아무도 어울리지 않았다. 스스로 우아하고 도도한 아이였다. 곧 서울로 전학 갈거라며 이런 시골에선 안 살거라 했다. 우리랑 놀고 싶어하는지는 몰랐다. 그 아이도 외로운 줄을 몰랐다. 자기는 특별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나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고 있었다. 소공녀에도 빨강머리 앤에도 그 아이 같은 애들은 있다.


그 아이 어머니는 내게도 화살을 돌리셨다. 태임이가 선생님 욕을 해서 자기가 혼을 내 가르쳤다는거다. 꾀죄죄한 나는 깔끔한 그 집에 가서 논적이 없다. 그 어머니는 괜스리 잘 난척 별 의미 없이 한 말이었다.

선생님은 사모님께 심부름 보낼 일이 있으면 나를 시켰다. 선생님 책상 정리도 맡아 했다. 신임하고 믿는 사이였다. 그러나 그 아이 어머니의 말을 믿었다. 그 아이를 믿은 거다. 선생님께 호된 벌을 받았다. 처음으로 손바닥이 벌겋게 붓도록 맞았다. 한나절을 꿇어 앉아 벌을 섰다. 영문도 모른 체 너무 슬펐다. 더 이상 선생님 심부름은 못하게 되었다.


남자 아이들이 그 아이를 싫어했다. 대 놓고 무안을 주었다. 동백씨를 가져와 교실 마루 바닥을 반질반질 윤나게 닦는 날이었다. 교실 앞부분을 반짝반짝 닦았다. 복도 청소를 하던 그아이가 들어 올 거라며 그 자리를 중점적으로 윤을 냈다. 온다 온다. 눈을 반짝이며 주시했다. 그 아이는 여지없이 미끌어져 꽈당 넘어졌다. 교무실서 오시던 선생님도 넘어지셨다. 그 아이는 울면서 선생님께 일렀다. 남자 아이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벌을 섰다. 벌을 받으면서도 즐거운 얼굴이었다.


중학교를 가면서 영희네도 이사를 갔다. 이사 간 집의 마당에 있는 우물 펌프 손잡이를 잡고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봉투의 주소는 안양시 박달동이었다. 성인이 되어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버거운 일이 생겼을 때 영희가 보고 싶었다. 어머니도 동생도 아니었다. 쓰러져 울면서 영희 생각을 했다.


전 담임 선생님은 도시에서 오신 분이었다. 열심히 가르치셨다. 월말 고사를 봐서 성적순으로 자리를 배정했다. 1등과 2등이 짝궁이 된다. 꼴찌끼리 짝궁이 된다. 남자 여자 가리지 않는다. 성적이 만천하에 공개되는거다. 달마다 성적에 따라 자리도 바뀐다. 공부보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부모도 아이도 공부 그게 뭣이 중헌디. 예민한 6학년이다.

아이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공부 잘하는 반장이 선두에 나서자 아이들이 용기를 얻었다. 등교하자마자 교실을 나서 교문 밖으로 나갔다.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이래서 선동이 무섭다. 차마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친구 작은 어머니네 집으로 갔다. 마음을 졸이며 숨어 있었다. 결국 찾으러 온 다른 반 아이를 따라 교실로 갔다. 남자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를 어쩌나. 예정 된 일인지 모르겠으나 교육청 장학사가 와 있었다. 우린 천하에 막돼먹고 불충스런 무뢰배가 되었다. 담임이 바뀌고 매일 훈계와 벌을 서고 반성문을 쓰는 날이 지속되었다. 너희들은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 취급을 안해주셨다. 매일 우리끼리 공부했다. 자습이 내내 반을 넘었다. 어쩌다 직접 공부를 가르쳐 주실 때면 보물을 얻은 듯 공부가 신비로웠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은 심정이었다. 선생님은 연구보고서를 쓰시다가 몇 차례 나를 불러 만년필을 주시며 서명을 하라셨다. 장학지도 나오면 내 공책을 가져 가셨다. 후에 도교육청 연구사로 영전해 가셨다. 중학교 입시 시험지에 한 번도 배우지 못한 산수 문제들이 나왔다. 이리저리 궁리하며 풀어보려 애쓰던 일이 남아있다.


전 담임 선생님이 더 좋았다. 영문도 모른 체 매 맞았던 거는 잊었다. 쉬는 시간이면 전 선생님의 교실 창가에 붙어서 우리를 다시 가르쳐 주세요 하며 애원했다. 선생님은 우리가 보이면 외면하셨다. 자주 찾아가자 아예 커튼으로 가리셨다.

전 선생님에겐 평생의 아픔으로 남았을거다. 죄송하다.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모교로 발령을 받았다. 그때 일을 기억하는 선생님은 없었다.


모닥불-백석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머리키락도 헝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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