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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bae Feb 14. 2024

게으름의 찬양, 버트런드 러셀이 그랬어




버트런드 러셀이 그랬,


"누구도 하루 4시간 이상 일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세상에서는 과학적 호기심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호기심을 맘껏 탐닉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수준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든 배곯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젊은 작가들은 기념비적인 대작을 내는데 필요한 경제력을 확보할 요량으로 감각적인 작품을 써서 주의를 끌어보려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옳다구나.!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영국의 논리학자, 수학자, 철학자, 사회비평가, 역사가이며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다.


행복을 정복하고자 호기롭게 집어든 그의 저서 '행복의 정복'을 끝내 정복하지 못하고, 또 다른 책 '게으름의 찬양'에 눈길이 갔다. 썸네일 뽑아내듯 훅하고 사람 끄는 제목에 또 반하고 말았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십니다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다 위 문장에 시선이 멈췄다.


4시간 이상 일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이 대체 어딨어? 그곳으로 가고 싶어 죽겠네.


만 8년을 사무실 안에서 착실히도 살았다. 민원을 처리하고 결재 올리고 민원을 처리하고 결재 올리기를 무한 반복하며 규칙적으로 시간이 돌고 돌고 또 돌았다. 나는 멀미가 났다.


이 일의 쓸모는 무얼까? 일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어느 날 인사이동이 되어 담당자가 되는 순간 나에게 말간 얼굴을 들이밀며 신속정확, 친절한 행정 서비스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런 쓸모없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징징거리다 이런 일을 하는 내가 더 쓸모없는 인간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자기 연민과 혐오가 뒤범벅되는 사이 짙은 무기력이 침잠하고 있었다.


나는 4시간 이상 일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세상에서 살기로 했다.


월급을 100번째 받는 달이 다가올 때쯤 시간선택제 전환을 신청했다. 우려 섞인 고민의 시간에 미안할 만큼 절차는 무척 단순했다. 부서장과 팀장에게 알린다. 지방공무원 인사제도 운영지침 별지 13 서식을 작성하여 인사팀에 제출한다. 인사이동을 기다린다. 4시간 티 내지 말고 구멍 안 나게 일을 처리한다.

  

모든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적은 내부에 있다더니. 우리 집 최종보스는 한껏 핏대를 세웠다. 올해는 가려나 내년엔 가려나 목 빠지게 기다렸는데 하라는 결혼은 안 하고 넌 대체 뭐 하는 거냐, 엄마는 한동안 노여움을 터뜨렸다. 어릴 적 집에 있던 가스레인지 압력밥솥이 내뱉은 황소 같은 쒹쒹거림 비스무리한 고성으로.   


나는 주 20시간 근무를 신청했고 월급은 반토막이 났다. 신속 집행으로 온갖 수당을 당겨 받은 어느 달은 통장에 급여 80여만 원이 찍혔다. 황당한 일이었다. 눈곱만큼의 열정도 없는 내게 열정페이를 주다니.


그렇게 2년을 보내고 또다시 2년을 연장했다. 통장잔고는 다행히 구멍 나지 않았다.


자기 연민과 혐오 대신

나는 내가 잘되기만을 바란다.

무조건적인 응원만 보낸다.





"하이 러셀, 당신의 주장에 감명받은 어느 지방 소도시 계란 흰자에 사는 공무원이 전일제 직원과 동일한 업무를 하루 4시간에 해치우느라 눈물 콧물 빼고 있어요. 어쨌든 당신의 주장은 21세기에도 적용하기가 겁나 빡세요. 하지만 사무실을 떠난 반나절의 이 시간이 참 좋네요. 4시간 이상 일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이곳에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마음껏 탐닉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적게 벌고 많이 쓸게요(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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