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스타시스 (Metastasis)

by 골든라이언

영상의 현장은 뭔가 긴박해 보였다. "박사님, 김 박사님!! 이제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곧 'UN 화성 이주 프로젝트 총책임자'가 박사님 면담 명분으로 이곳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저희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박사님을 감금 강제 이주시킬 목적으로 특수부대를 이미 연구소 주변에 주둔시켜 두었답니다. "예상 시간은?" "10분 이내입니다" "알겠네. 충분하네. 자네들은 바로 지하 비밀 벙커로 가서 피신하게" 류 박사는 즉시 '특급 보안 기밀'이라 적힌 하드디스크를 챙겨 실험실 구석에 있는 '특별 유해 물질'이라 적힌 시약장을 밀고 비밀통로인 듯 한곳으로 빠져나갔다.


입수된 자료에는 그 '김 박사'라고 하는 생명체가, 스스로 남긴 듯한 영상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김 박사는 마이크를 한 번 더 확인하고, 기록을 시작했다. "암은 스스로 소멸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자가 증식을 통해 영역을 빠르게 확장한다. 주변 세포의 영양분을 빼앗고 미세환경을 파괴하며, 신경계에 고통을 일으킨다. 그러다가, 마침내 산소 부족 및 영양분 고갈 상황이 시작되었다고 판단 되면, 발생한 곳으로부터 다른 신체 기관으로 이주한다. 이 현상을, 우리는 '메타스타시스 (metastasis)’라고 부른다. 인류는 지구의 환경이 매우 열악해졌다고 판단, 몇 년 전부터 화성 이주 시범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이제 내일이면, 인류의 일차 우주 대이동이 있을 예정이다. 지구에서 증식, 분열하며 무분별하게 환경을 파괴한 이 인류의 이동을 어떻게 정의하는 것이 옳을까. 이주? 아니면, 메타스타시스?"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을 이어 나간다. “어떻게 정의하느냐 보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이르렀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구와 대화를 한 적이 있는가? 화성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화성이 쓸모없어지면 또 어디로 갈 것인가? 이 금기된 질문을 던짐으로써 나는, 새로운 성숙한 인류가 탄생하길 바란다" 말을 마친 그가 마이크를 끌 때 문이 벌컥 열린다. "지지직…"


눈동자에 비친 지직 거림만큼 트위스트는 놀람과 함께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스네일이 건넨 물을 한 잔 마시고서야 입을 뗐다."지금 내가 뭘 본거지? 그리고, 저 영상이 EX 스페이스 셔틀 프로젝트랑 무슨 상관이 있어서… " "그때 확보한 자료야. 저 파일" "아니 우주 공간에, 무슨 파일이?" "알다시피 EX 스페이스 셔틀 프로젝트는 산소가 풍부한 곳을 찾아 '이주' 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어. 자원 확보 역시 중요한 이슈였고. 그래서, 머시너리사에서는 주변 물질들을 포집 목적으로 담을 수 있는 '특별한 이 중막 구체'를 만들었는데 우리는 그걸 엑소 소낭들(Exo-vesicles) 혹은, 엑소좀(Exosome)으로 불렀지. 그것들을 회수하고 분석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리 세계에서는 만들어지지 않는 특별한 성분의 물체가 발견되었고, 셀 위원회에서 특별 파견 나온 '분석 정보팀'이 일 년 만에 그 속에 어떤 정보가 들어 있다는 걸 알아내고서는 갖은 암호해독 기술들을 총동원해서 저렇게 번역본을 만든 거야"


"그럼, 정리해 보면… 조사 중 외계의 어떤 물질… 아니 물체를 발견했고, 그 속에 내용… 을… 해독하고 또 우리 언어로 바꿨는데… 저 김 박사라는 '인류?'가 어디론가… 아… 화성이라고 했지? 이주하기 전에 남긴 메시지…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가?" "맞아" "좋아. 그렇다고 하고. 그럼 저 발견된 정보가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거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셀들이, 저 영상에서 김 박사가 예를 들어 말한 그 ‘암’이야"


- 53의 비밀오피스 -


"현재, 그들은 4,916셀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이번이 그를 소멸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일 수 있습니다. 트위스트는 경호나 지원부대 없이 단독으로 그들 지하 기지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SCF 삼 형제를 호출 대기 시키도록" 잠시 후 그들이 도착했다. "스케피(Skp1), 쿨린(Cullin) 그리고 에프 박스(F-box) 자네들 삼 형제는 그동안 우리들의 소중한 셀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줬고, 이번이 그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기회라고 믿는다. 지난번 날 도와 스네일2와 트위스트2를 유도해서 소멸시킨 것은 훌륭했지만, 스네일에게 속아 그와 그의 로봇들을 놓친 것은 자네들의 명성에 오점을 남긴 거야. 이번에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줄 테니 꼭 결실을 맺길 기대하겠다. 그럼, 자세한 정보와 전략은 21이 알려 줄 것이다, 21?"


53은, 그들의 경례를 뒤로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21이 말했다. "트위스트는 현재 서북단 4,916셀 스네일의 비밀기지에 있고 언제든 복귀할 거야. 스네일이 트위스트 전송 후 혼자 복귀하는 길목에 잠복하고 있다가 급습해서 신속히 제거하도록 해. 프로네이즈들도 내어주고, 언더커버를 통해 스네일의 보조 로봇들도 기지에 남겨 둘 수 있도록 조처해 놓을 테니, 이번엔 실수 않도록" "다른 병력 지원은?" 맏형인 스케피가 물었다. "이번엔 없다. 저들 기지 근처이기 때문에 통신 혹은 저들 정찰대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만약 민간 사상자가 발생하면, 이번엔 우리 조직도 조사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은밀하게 진행하도록"


- 4,916셀 비밀 지하 기지 바깥 산책로-


"고마워, 바람 쐬게 해 줘서. 사실 오늘 여러 가지로 정신이 없네. 충격도 이만저만 아니고. 뭔가 정리하러 왔다가 더 복잡해진 기분이야" "그럴 거야, 그 당시 우리들의 충격과 혼란 역시 어마어마했으니까. 언니가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던 이유를 조금 알겠지? 일단 돌아가서 충분히 휴식 취하고 언제든 알고 싶은 것 있으면 연락해" "그래, 그러는 게 좋겠어. 그런데 오늘 한 가지만 더 묻고 싶은 게 있어. 53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그런 조직을 만든 거지? 회사까지" "셀 위원회 특별 파견 분석팀 팀장이 그였어. 53" "그랬구나!!" 53의 비밀은 끝이 없이 쏟아지는 느낌이다. 물론, 조금씩 그의 그간의 행적들에 대한 퍼즐도 조금씩 맞춰져 가고 있다. 트위스트는 조금 더 스네일과 함께 있으며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이 어마어마한 진실들을 감당할 시간이 필요했다. 복귀하기 위해 스네일의 보조 로봇들과 어느새 친해진 T3D1을 불러 타고 온 셔틀로 향했다.

스네일이 전송을 위해 나서려는데, 데이터 업그레이드를 위해 모든 로봇을 엔지니어 실로 보내라는 기지 내 전달에 따라 아무런 의심 없이 서빙 로봇들과 경호 로봇까지 두고 혼자 전용 셔틀을 타고 나서게 되었다. "들려? 트위스트?"


"응, 들려. 스네일" "이건 혹시나 해서 개설한 우리 둘만의 비밀 전용채널이야. 필요하거나 위험할 때면 언제든 연락해" "응, 그래. 최상위 VIP 고객님을 직접 뵙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하하. 조심해서 가. 트위스트 밤" 스네일은 채널을 끄며, "나도 보고 싶었어" 하고 복귀 버튼을 눌렀다. 트위스트는 정신없는 와중에 스네일이 언니의 연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기뻤다. T3의 한마디. "외모 관리하려고 돌아가는 거 아닙니까?" "D1, 아니야. 그런데 그 이상 한 말투는 뭐야?” 이번엔 봐줄게. 맞네 맞네 하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T3를 뒤로하고 한참을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익숙한 비밀 채널을 통해 연락이 왔다. "프카!! 무슨 일이야? 퇴원했니? 몸은 어때?" "얘는, 나보다 더 빠르게 말해! 됐고 나 퇴사했어. 그리고 53 정체를 추적하던 다른 친구 둘이랑 스타트업하기로 했어. 참참참, 이거 말하려고 한 게 아니라!!" 트위스트는 셔틀을 급히 돌렸다. "T3D1, 전투 모드. 전투용 슈트도 준비해!" 스네일, 그가 위험하다.


EMF 포탄을 맞은 스네일의 셔틀이 추락하고 있다. '통신도 안 되는군!' SOS 용 버튼 누르기를 포기하고 전투용 슈트를 장착 후 탈출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한 번 더 그의 착륙 지점 쪽으로 EMF 탄이 떨어진다. '완전히, 허를 찔렸네' 온전히 복귀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동 조명탄을 쏘아 올리고 검을 뽑아 들었다. "저기다!" 트위스트의 외침. "EMF 충격파 감지. 반경 일 킬로미터는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들어가면 셔틀이 작동 안 될 것입니다." "셔틀을 멀리 두고 달려가면 늦어. 중심으로 최대속력으로 들어가서 비상탈출 후 전투 돌입한다" 프카의 말에 의하면 스네일만을 전문적으로 노리는 헌터들이라고 했다. 길게 끌지 않을 것이다.


스네일이 세 마리째 프로네이즈를 제거할 때를 노려 에프박스가 뒤에서 기습적으로 긴 창으로 찔렀다. 창끝이 허리에 닿는 순간 스네일의 벨트에서 진동이 생기며 그의 몸 주변에 실드가 생겼다. 그의 형이 남긴 구슬이 즉시 반응한 것이다. 그러나, 튕겨 날아간 에프 박스 뒤로 나머지 두 형제가 동시에 칼을 뻗어 급히 막은 스네일의 검을 멀리 날려버렸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덤벼드는 프로네이즈 무리들 위로 순간 번쩍하고 강한 빛이 발생했다. 트위스트의 외침. "동시타격!!"


순간 스네일의 눈에는, 천사가 플라스마 건을 쏘며 내려오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트위스트의 슈트에서 전투용 드론들과 스파이더들이 동시에 튀어나와 프로네이즈들을 순식간에 소멸시키고 SCF 삼 형제에게 날아가 섬광탄을 터뜨렸다. 뒤이어 분리된 T3와 D1 그리고 트위스트의 플라스마 건에 의해 한 명씩 소멸했다. 전투 훈련과 조사단 활동으로 어느새 트위스트 팀의 전투력이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던 것이다.

"이제, 빚 갚은 것 같은데"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워주는 트위스트에게 스네일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물었다. 어떻게 다시 돌아왔는지보다 더 궁금한 게 있다. "EMF 충격파에 플라즈마 건이 작동 안 될 텐데 어떻게 한 거지?" "그럴 줄 알고, 충격파 상쇄탄을 특수 제작해 뒀지, 난 검이 안 맞아서" 처음 본 섬광이 EMF 상쇄탄이었군. 이럴 땐, 그녀가 윙크해도 거부할 수 없다.


[ 오늘은, 처음으로 일기를 쓴다.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는 데 좋다고 해서. 뭐, 정리 안 되면 할 수 없고. 내 일기니까. 우리가 배운 역사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의 초기 정착 시기에는 풍족한 자원으로 계속 셀을 늘려나가면서 거대한 연합셀이 된 현재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셀들은 자원도 고갈되어 가고 있고 산소 키트도 일상화된 것처럼 산소 농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게다가 언젠가부터 M1들의 출몰과 투명 결정체들의 공격이 잦아지고 더불어 카인들의 빈번한 셀 표면의 신호전달은 셀들이 소멸하거나 이탈하려는 현상들로 이어진다.


당시 53이 이끄는 분석팀의 해석이 정말 맞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셀이 그 김 박사라는 인류가 정의하는 그 '암'의 행동양식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그다음은 스네일과 그의 조직들이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곳으로 이주'일 것이다. 어디로? 그러나, 53과 셀 이탈 방지 위원회와 같은 그의 배후 조직들은 셀이 이동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왜일까? 왜 이렇게 살기 힘든 곳을 그대로 있기를 바라는 걸까?


언니와 스네일의 형은 셀 이탈을 성공시키기 위해 비밀 프로젝트를 감행하다 그들의 계략에 의해 그렇게 1,123셀과 함께 소멸되었다고 들었다. 53은 내가 이미 언니와 그들에게 위협이 될만한 비밀을 공유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접근 한 걸 보면 대단히 대담하고 무서운 자인 걸 한 번 더 느낀다.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높다. 스네일의 오늘 위험만 보더라도… 스네일… 다행이야. 꽃미남.

그저, 떠나려는 자와 그걸 막는 자들의 전쟁인가? 아직도 난 아직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TT. 김 박사의 얘기대로라면 결국 우리가 성공적으로 이주하더라도 그곳의 환경은 또 고갈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불운한 상태에서 그저 소멸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귀한 삶의 배움을 쉽게 저버린다고 할까? (이거 좀 멋진 표현 아님?)


언젠가부터 우리는 늘 소멸에 대한 준비를 하는 마음의 가르침을 생활화하고 있다. 집착을 놓고 다음 여행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결국 소멸되며 구슬로 남겨졌다가 다음 생으로 별과 함께 태어나는 이 과정을 잊지 않기 위해 교육받고 또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수동적 죽음을 기다리라고 가르치진 않는다. 운명이든 숙명이든 또 우연 같은 상황이든 소멸을 맞이하게 될 때 평온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일 뿐 그때까지는 있는 힘껏 살아야 한다고 배웠는데. 정작,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뭐, 묻지도 않았으니 누가 알았어도 그럴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어떻게 소멸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우선은, 스네일과 잘 살아 보…자고 내일 생각해 보자. 미녀는 잠꾸러기.


- 셀력 1825일 새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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