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by 일용직 큐레이터

공장을 그만둔 후 다시 알바 모드로 돌아갔다.

평일에는 일용직 노가다를 하고

주말은 물류센터에서 일했다.


항만 크레인
월 260만 원
4대 보험, 나이무관


당근에 올라온 공고를 보고 지원하기를 눌렀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면접을 보러 오란다.


사실 항만 크레인이 뭔지 잘 모른다.

나이무관이란 말에 무작정 지원했다.

마흔이 넘으니 이런 말이 반가워진다.


4시 반에 노가다를 마치고

면접장소로 향했다.

보내온 주소에 도착하니 허름한 2층집이 보였다.


사무실이 아니라 그냥 집이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2층집.


봉고차가 스르륵 서더니 면접을 보러 왔냐 묻는다.

2층에 올라가 보라며 손짓한다.

키가 큰 대표는 나에게 이것저것 묻는다.


대학원까지 나와 왜 이런 일에 지원했냐 물었다.

이래저래 얼버무리니 몸만 건강하면 된단다.

내일 일을 참관해 보고 결정하라 했다.


다음날, 오전 일찍 사무실을 찾았다.

덩치가 큰 사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대학 졸업 후 줄곧 여자들하고만 일했다.

박물관 특성상 남자가 적다.


남자가 많은 곳은 군대 이후 처음이다.

신발 사이즈를 묻더니 허름한 작업화를 내준다.

기름이 잔뜩 묻어있다.


봉고차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향했다.

사내들은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운다.

10년 전 끊은 담배 냄새를 오랜만에 맡았다.


그러려니 했다.


컨테이너 터미널에 도착했다.

아니?! 컨테이너도 터미널이 있어?!

전혀 몰랐다.


보안구역이라 신분증을 맡기고 안전교육을 받았다.

반도체 공장 방진복 같은 작업복을 껴입었다.


위잉~위잉 소리를 내는 크레인이 눈앞에 서 있었다.

수십 미터나 되는 높이에서 와이어를 내려

컨테이너를 옮긴다.


오래된 와이어를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

집게가 달린 스프레드가 땅 위에 내려왔다.

오래된 와이어를 절단하고

새 와이어를 용접해 잇는다.


와이어를 감아올려 폐와이어는 지상으로 떨구고

새 와이어로 교체한다.

떨구어진 폐와이어는 동그랗게 감는데

부산말로 "사린다"라고 한다.


부산 사내들의 말은 50%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말이 어찌나 빠르고 전문용어(?)가 많은지

맥락을 짚기에도 벅찼다.


손가락 두 개 굵기만 한 와이어를 사리니

온몸이 저려왔다.

가을 날씨였지만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일을 마치고 터미널에 있는 샤워장에서 몸을 씻었다.

정말 군대 그 자체다.


터미널을 나선 후 국밥을 먹었다.

오후 3시가 넘어 먹는 점심은 꿀맛 그 자체였다.


어때? 일 할래?

팀장이 물어왔다.

그러겠다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급여는 적지만 꾸준히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참 부산이란 곳은 쉽지 않다.

그나마 부산이라 이런 일이라도 있는 걸까?


나란 놈의 인생은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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