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담배 연기 가득한 곳

by 일용직 큐레이터

5시 50분 집을 나선다.

횡단보도 두 개를 건너 도착한 버스 정류장.

새벽 기운이 남은 공기는 차다.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차가워진 엉덩이를 데운다.

나에게 따스함을 주는 몇 안 되는 장소다.

늦지 않게 도착한 버스에 오른다.


매일 일할 곳이 생겼다.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일은 험하지만 미래가 있다 했다.


일단 그렇게 믿기로 했다.


허름한 2층집이 회사다.

다 무너져 가는 옛날 양옥집이다.

속속 도착한 사내들 입에는 담배가 물려있다.


카악 카악 침을 뱉는다.

담배를 끊은 지 10년도 넘었다.

지금은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낡은 스타렉스에 장비를 싣는다.

저마다 생김새가 다른 장비들은 이름도 어렵다.

맨손으로 만졌다간 기름 범벅이 된다.

살짝만 스쳐도 옷에 기름 떼가 묻는다.


갓 스무 살부터 환갑을 앞둔 오십 대 아저씨가 함께 일한다. 최고령이 아니라 다행이다.

스무 살 가까이 어린 고참들은 나를 형님이라 부른다.


누군가를 형님이라 불러본 적도

불려 본 적도 없다.

이곳 부산에서는 형보다 형님이 자연스럽다.



스타렉스 맨 뒷자리가 내 지정석이다.

나이는 중간이지만 입사일은 가장 막내다.

차에 오르자 또 담배를 입에 문다.


연초를 피우고 전자 담배를 뿜는다.

몸에 담배 냄새가 베기다 못해 썩는 느낌이다.


1시간 남짓 달려 컨테이너 터미널에 도착한다.

뉴스에서만 보던 곳이다.

보안구역이라 신분증을 맡기고 출입증을 받는다.


반도체 공장에서 입을법한 작업복을 꺼낸다.

머리부터 발목까지 감싸준다.

곳곳이 기름 범벅이라 작업복은 필수다.


9월의 부산은 아직 덥기만 하다.

수십 미터 높이의 크레인에서 스프레드가 내려온다.

스프레드에 연결된 와이어를 교체하는 게 우리의 임무다.


손가락 3개를 겹친 굵기만 한 와이어다.

재래식 장비로 당기고 조인다.

선배들은 기술자 그 자체다.


엄청난 도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걸고 저렇게 조이며 작업한다.

빨리 끝내려면 손발이 맞아야 한다.



숙련자 3명, 신입 4명으로 구성된 팀이다.

숙련자들만 모인 팀은 3~4시간이면 끝내는 작업이다.

우리는 6시간이나 걸렸다.


팀장이 신입들을 타박한다.

나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선배가 일할 의지가 없냐며 눈치 준다.

열심히 하겠다 했다.


3시가 넘어서야 작업을 마쳤다.

터미널에 마련된 샤워장에서 몸을 씻는다.

늦은 점심 메뉴는 국밥이다.


아침부터 쫄쫄 굶었다.

중간에 점심을 먹으면 마치는 시간이 더 늦어진다.

많이 먹는다고 눈치 주진 않는다.


공장에서 먹던 차가운 밥에 비하면 훨씬 낫다.

국밥, 칼국수, 중국집 등 메뉴도 다양하다.

일이 고되 먹는 건 잘 챙겨준다.


사무실로 돌아오면 5시 남짓이다.

장비를 내리면 6시다.

일찍 끝나면 퇴근도 빨라진다.


일이 많으면 하루에 두건을 작업한다.

그럼 수당을 받는다.

공장보다 마음이 편하다.


높은 곳에서 무거운 와이어를 상대하다 보니

심하게 갈구진 않는다.

신경을 곤두세웠다간 사고가 나기 쉬우니

서로 쉬쉬하는 분위기다.


일단 해보기로 했다.

입사하자마자 정직원이 됐다.

그만큼 일이 힘들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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