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0여 년간 참 많은 도시를 거쳤다.
나고 자란 곳에서 초중고를 마쳤다.
지방 모도시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대학원에 입학하며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 경기도, 전라도, 제주도, 강원도에 살았다.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10년 가까이 머물렀다.
와이프와 부산으로 이사오며 경상도에 처음 발을 딛었다.
방랑 본능이 살아나지 않게 집을 샀다.
1년간 살아본 부산은 참 좋다.
가족과 살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대도시라 없는 게 없다.
지하철, 버스도 편리하다.
바다를 끼고 있어 어딜 가나 경치가 좋다.
최남단이라 미세먼지가 덜하다.
여름은 덥지만 서울보다 뜨겁지 않다.
겨울 날씨는 늦가을 수준이다.
살기 좋은 곳에 집을 샀다.
그 희망 하나로 1년을 버텼다.
조금씩 지쳐간다.
부산에 살고 있지만 출장을 가는 일이 잦아졌다.
광양, 인천을 매달 몇 번씩 다녀온다.
광양은 당일치기로 다녀오지만
인천은 2~3일씩 머물다 온다.
항만 크레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와이어 교체가 가능한 업체가 몇 없다.
작은 기업이지만 전국구다.
같이 방 쓰는 오십 대 아저씨는 부끄러움이 없는 분이다.
누가 옆에 있건 방귀를 뿡뿡 뀐다.
1분에 1번씩 트림을 꺼억 꺼억 내뱉는다.
끓는 가래를 카악 쏟아낸다.
비흡연자란 이유로 같이 방을 쓴다.
이불속에서 뀌어대는 방귀 소리에 잠을 깨곤 한다.
작업 현장에는 아저씨의 가래침이 지뢰처럼 널려있다.
정말 더러워 죽겠다.
모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를 구한다는 공고를 봤다.
올여름에도 지원 했었는데 답이 없던 곳이다.
혹시나 하고 지원서를 수정해 또 들이밀었다.
일요일 오후, 메시지가 왔다.
갤러리 대표인데 통화가 가능하냐 물어왔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갤러리에 대해 이런저런 자랑을 늘어 놓는다.
내일 면접 보러 올 수 있냐 물었다.
우연인지 내일은 일이 없어 쉬기로 한 날이다.
아침 일찍 정장을 입고 차에 올랐다.
30분 일찍 도착해 이곳저곳을 살폈다.
외진 곳이었지만 나름 규모가 있었다.
대표와 관장을 마주하고 면접을 봤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로 열정적으로 갤러리를 소개했다.
누가 면접을 보고 있는지 헛갈릴 정도였다.
내가 마음에 든다 했다.
나 같은 사람을 기다려 왔다 했다.
너무 젊지도 늙지도 않은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시 뿐만 아니라 모든 사업을 총괄할 이를 원했다.
사무실에 앉아 전시를 기획하고,
공연 음향을 만지고,
다양한 교육 경험이 있는 내가 적임자다.
머리로 하는 일이던 몸을 쓰는 일이던
다 잘할 수 있다 했다.
당장 일하자고 했다.
희망연봉을 묻길래 예전에 받던 숫자를 내밀었다.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고민에 빠진다.
관람객이 몇 없는 갤러리다.
두 분의 사재를 털어 운영하는 듯 보였다.
항상 젊은 사람만 써왔으니 급여 수준도 알만하다.
입을 다물고 있었다.
대표는 약간 낮은 금액을 제시했다.
알겠다고 했다.
지금 난 가릴처지가 아니다.
이 정도면 크레인 정비 일보다 훨씬 낫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1년 만이다.
이제 몸으로 일하지 않아도 된다.
끈적한 기름을 손에 묻힐 일도 없다.
사무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일할 수 있다.
덥고 추운 야외가 아닌 실내에서 일할 수 있다.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질렀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당연했던 일상이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어머니는 아이고, 아이고 잘 되었다며 울먹이신다.
와이프 눈가가 촉촉하다.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했다.
죽으란 법은 없다.
그렇게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