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제자리를 찾았을 뿐

by 일용직 큐레이터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난 십몇 년간 손에 익었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

겨우 1년이지만 손은 거칠고 얼굴은 검게 탔다.


지루하다며 도망쳤던 일상이다.

그 지루함을 되찾기 위해 1년간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건설현장에서 자재를 날랐다.

물류센터에서 어린 선임에게 혼나며 일했다.

공장에서 자동차 부품을 조립했다.

쇼핑몰에서 새벽 청소를 했고,

24시간 잠들지 않고 일했다.


너무 힘들어 소리를 질렀고

혼자 방안에 처박혀 소리 없이 울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 년을 보냈다.

깔끔하게 새 단장한 새집에 살면서

가장 불행한 나날을 보냈다.


살기 좋은 부산에서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맛봤다.

기억하기 싫은 군대, 대학원도 이보다 힘들지 않았다.


생계곤란.

비참한 단어다.

나이 마흔에 가족을 힘들게 했다.


내 몸이 힘들고 우울증으로 잠 못 드는 건 괜찮다.

와이프가 돌아올 수 없게 묶어두고

아들 걱정에 한숨만 내쉬는 어머니.


모두 내 책임이다.


겨우 익숙한 일상을 되찾았을 뿐이다.

여전히 돈은 모자라고 사는 건 쉽지 않다.


다만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울분에 차올라 쓰던 글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게 됐다.

어딘가 쏟아내지 않으면 입 밖으로 토약질이 나올 것 같은 증상도 없어졌다.


조용히 걸으며 음악을 듣는다.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한다.

책을 읽고 그 의미를 새긴다.


마음속 깊이 병들었던 상처를 도려냈다.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 조금씩 새살이 돋아나고 있다.


마음을 편하게 갖고 약을 먹으면 나아질 거라던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진정한 치료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있다.

바랐던 일상으로 돌아오니 모든 게 나아졌다.


아침 7시에 일어나 11시에 잠든다.

유산균 한알을 물과 함께 삼킨다.

작은 봉지에 든 견과류를 씹고 두유를 넘겨 소화한다.


지하철에 앉아 책을 읽는다.

출근길에 오른 사람들을 흘깃한다.

막 출근한 직원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고

컴퓨터 전원을 켠다.


하릴없이 마우스 휠을 오르내리며 시간을 보낸다.

구운 계란을 넣은 샐러드와 찐 고구마로 저녁을 때운다.


쉬는 날은 늘어지게 잠을 잔다.

점심즈음 일어나 근처 카페로 향한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글을 쓴다.


요즘 난 이렇게 살고 있다.

남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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