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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쓰장 Apr 17. 2022

콩깍지는 제대로 써야지

그대 품이 나의 집이죠

  흔히 말하길 결혼할 때는 콩깍지가 쓰인다고 한다.

  예전에 아버지께서는 꽁깍지를 썼더라도 나의 한쪽 눈을 감겨서 시집을 보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제 잘난 맛에 산다고 걱정하신 까닭이다. 한쪽 눈만으로 세상을 보라는 뜻일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의 좋은 점만 보고 나쁜 점은 보지도 말라는 뜻이었다. 서로 남남이 만나다 보니 의견 충돌이 생길 것이고 그때마다 기싸움으로 티격태격할 일을 두고 미리 주의하라는 메시지를 주신 것이다.

     

  결혼식 날 새벽부터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신랑 친구들이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우리 집으로 쳐들어왔다. 사전에 친구들 피로연은 결혼식 후에 따로 하기로 했는데 짓궂은 신랑 친구들이 예정에도 없이 한밤중 새벽에 잠든 식구들을 모두 깨워 술상을 보게 했으니 신랑은 안절부절못하고 나는 화가 나서 싫은 소리를 해댔다. 부모님은 내가 참지 못하고 손님들에게 실례했다고 나무라시며 결혼식장에 못 가겠다 하시니 몇 시간 뒤에 있을 결혼식이 어떠했겠는가? 눈에 쓰인 콩깍지를 그날로 벗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렇다고 집안 체면 깎는 일이라고 걱정하는 어른들 때문에 더 이상 객기를 부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제 눈에 안경처럼 콩깍지가 쓰여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나처럼 주변 환경 때문에 어려움에 부닥치게 된 경우도 많을 것이다. 어려운 축에도 낄 수 없는 작은 사건이기는 하지만, 남편은 '이렇게 힘든 결혼을 번만 하라'는 경고 같은 것으로 생각하자고 나를 위로해줬다.

      

  젊은 날은 강박증처럼 꼼꼼함을 앞세우고 나 자신을 참 힘들게 했었다. 꼼꼼한 습관도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예전보다 무뎌져 가는데 오히려 남편의 꼼꼼해진 잔소리에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남편에게 설거지도 못 맡겼던 내가 이제는 누군가 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걸 보니 세월이 약이 되었나 보다. 남의 편이 아닌 내 편인 가족은 또 이렇게 나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면서 기다려주었다.


  신혼 시절 태교 음악 때문에 투덜거렸던 일부터 서로 맘에 들지 않아도 양보하며 살아가는 일까지 콩깍지를 쓴 30년의 세월 앞에 순간순간이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되리라.


  흔히 태교 음악이라고 하면 클래식 음악을 떠 올린다. 나 역시 그런 기대를 하고 남편에게 태교 음악 테이프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90년대에는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시대였다. 남편의 취향대로 <<태 진아, 설 운도, 나 훈아>> 트로트 가요계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가수들의 노래가 담긴 테이프를 가지고 왔다. 혼자서 트로트 노래를 아침마다 틀어놓고 흥을 돋우고 있었지만 이건 내가 원한 음악이 아니어서 다른 것으로 사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은 떠오르는 신인가수 <<성 진우 ’다 포기하지 마‘>>... 뭘 포기하지 말라는 건가?  

  그다음 날은 <<패티 김 >> 히트가요 테이프로 수준을 좀 높였다고 하면서 말이다. 트로트 건 고전음악이건 즐겁고 편안하면 되는데 무슨 수준을 이야기한 내가 이상한 거지. 트로트 가요 열심히 듣고 태어난 아들놈은 역시나 흥 많은 성격 유순한 아이로 자라났다. 쌓여가는 세월 따라 어느새 내 취향도 내 편을 닮아가고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 가족을 만드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 

  새로운 생명을 만들고 인류를 유지하는 힘이다. 유일하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족, 부부는 촌수가 없다. 촌수를 따질 수도 없이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지만 돌아서면 그야말로 아무 관계가 없어지는 사이이다. 배우자를 내 손으로 잡은 것인지 내가 잡힌 것인지 모르지만 서로가 행운아라고 생각하면서 가족을 이루는 것 같다. 미래를 향한 꿈과 사랑에 가득 차서 스스로 눈에 콩깍지를 씌우는 일이다.


  지금은 독신주의나 비혼 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배우자를 고를 것인가? 이왕이면 좋은 배경에서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꾸려나가길 바라는 건 모든 부모의 희망 사항이다. 이제 할 일은 자녀들이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길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지금부터 이렇게 자주 자식에게 세뇌시키며 말하리라.   

   

  “네가 좋은 짝을 데리고 오리라 믿고 있지만, 만약 부모가 반대한다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부모가 자식 이기지 못한다는 걸 안다. 결국 너의 인생은 네가 선택하고 책임지며 가꾸어 나가는 거란다.”


    자식이 좋다면 부모가 져준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자식이 행복하길 바라는 부모의 안목도 살펴봐 주기를 기대해본다.      


  어쩌면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게 되는 배우자, 사별로 인한 부부의 헤어짐은 인간에게 가장 높은 스트레스를 안겨주기도 한다. 사별이 아니라도 배우자를 여러 번 만나는 일 또한 마찬가지로 힘든 경험이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제 눈에 맞는 콩깍지를 제대로 골라 써야 한다. 물건을 고를 때도 신중하게 고민하는데 하물며 평생토록 함께 바라봐야 할 가족을 첫눈에 반했다고 금방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머리카락과 점점 넓어지는 이마, 통통해진 허리를 구분할 수 없는 외모에도 콩깍지 안경 도수까지 적응해가며 이제는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끼길 바랄 뿐이다.

  등 뒤를 긁어주고 파스를 붙여줄 수 있는 사람이 내 옆에 있다면 가만히 거칠어진 손을 잡아주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대는 참 아름다워요. 밤하늘의 별빛보다 빛나요.

  지친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줄 그대 품이 나의 집이죠.”     

    -  <<SG워너비의 라라라>> 노랫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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