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중심으로 나의 형제자매, 부모, 부모의 형제자매, 4촌 형제자매, 조부모, 외조부모….
친족 관계는 혼인과 혈통적 연결로 맺어진 인간관계라고 한다. 한국 사회가 과거와 전통을 중시하고 혈연관계를 중시하다 보니 사람들은 친족을 가족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근래에 사람들 대부분이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는 친족의 범위보다 훨씬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이 주류를 이루고,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시대이다 보니 가족의 범위도 그야말로 ‘한집에서 살며 함께 밥을 먹는 식구(食口)’라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어릴 적 시골집은 더 자세하게 말하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던 곳, 내가 태어난 본가(本家)다. 아버지 직장을 따라 초등학교 입학 전에 떠나왔지만 그래도 고등학생 때까지 할머니가 생존해 계셔서 주말마다 다녀오곤 했던 터라 여전히 나의 첫 번째 고향 집으로 떠오른다. 동네에서도 제법 규모 있는 큰 집이라 부르던 종갓집과 달리, 우리 집은 그냥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허름한 집이었다. 할아버지의 형제 자손들인 일가친척이 많아서 같은 성씨인 동네 어른들을 모두 가족이라고 생각했다.담장에 쪽문이 나 있어서 옆집 5촌 고모네 마당에 있는 감나무가 내 것 인양 들락날락하며 따먹었다. 6촌 오빠가 친오빠 인양 펑크 난 자전거 타이어를 수리해달라고도 하고, 방패연을 만들어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였다.
안방 벽 한 면은 동네 사람들이 빌려 간 급전 내용을 시골 말로 소리 나는 대로 삐뚤빼뚤 기록해둔 할아버지의 넓은 공책이었고 빌려 간 돈을 갚는 날이면 나는 연필을 들고 두 줄을 그었다. 그 옆에는 12달이 표시된 한 장 짜리 달력 속에서 이마가 빛나는 국회의원이 늘 웃고 있었다. 밥 먹을 때만 되면 찾아오는 혼자 사는 동네 비렁뱅이 아주머니는 나와 성씨가 달라서 어린 마음에 우리 가족이 아니라고 천만다행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북적북적하던 시골집 마당에 잡초가 무성하고 담장이 무너지고 나무 대문은 떨어져 나가고 파란 슬레이트 지붕이 기울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집터만 남게 되었다. 차츰 발걸음이 멀어지면서 내 가족도 점점 줄어들었다.
요즘 아이들은 촌수 계산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4촌 형제들끼리 왕래가 있으면 쉽게 가족이라고 여길 것이고, 외동아이들이 많아지다 보면 4촌도 사라져 점점 가족의 범위는 식구(食口)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다. 근래 가족은 혈연관계에 의한 가족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촌수를 따지는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반려동물이 가족이라고 여기는 시대에 강아지는 동생인지 자식인지 촌수 관계를 따질 수도 없으니 강아지 손주가 생길지도 모른다.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이든 반려동물이든 내 곁에 함께 있는 누군가가 식구이고 가족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인공지능 로봇도 가족에 포함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가족이 줄어들고 잊혀가는 일은 슬픈 일이다. 같은 집에 살고 있어도 가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집 밖에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작은 친절에는 입이 닳도록 감사하다는 말을 쉼 없이 하면서 평생 집 안에서 보살피고 헌신한 가족에게는 감사의 한마디가 인색하다는 내용의 광고는 깊은 반성을 하게 한다.
나의 그림자처럼 언제나 배경이 되어주고 쉽게 드러나지 않는 가족의 노력은 어느새 맞춤옷처럼 편안해져서 존재 자체를 잊고 살아간다. 조그마한 서운함이 불편을 초래하게 만든다고 가족에게 함부로 화살을 돌리는 반면, 가족만큼 당연하게 바라는 것이 없는 까닭인지 가족 외의 사람에게는 조그마한 친절에도 엄청 고마워하는 행동을 앞서게 하는가 보다. 가족은 아픈 손가락 다루듯 조심조심 상처를 어루만져야 한다. 더 늦기 전에 후회하지 않도록 내 가족을 챙겨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