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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연구소 잠시 Jun 10. 2023

저자 된 덕에 혹은 되어도, 미해결 과제를 만난다

나의 선택을 자책하고 후회할 때 많지만 돌이켜보면 또 가장 좋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될 때도 온다. ‘더 잘 했어야 했어’라고 채찍질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땐 그게 최선이었어’라고 위로하게 되는 것과도 비슷한 맥락일 수도 있고, 어떤 측면에서는 아쉬웠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좋았더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첫 책을 작업해 준 출판사는 과거 ‘불편하지만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당신 없는 세상은 여전히 낯설지만’과 같은 에세이를 펴낸 곳이다. 출판사 자체의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간결하면서도 메시지를 전하고, 감성적이기도 한 제목들이 마음에 들었다. 연락을 나눈 PD님도 ‘저희가 제목을 좀 잘 뽑는 편이예요’라는 말씀을 하셨던 게 각인이 되기도 했다. 나의 책이 어떤 제목으로 세상에 나오게 될지 기대하는 것은 불안하면서도 상당히 즐거운 일이다.     


초고의 제목은 ‘산후우울이 그대에게 말 걸 때’였다. 산후우울증을 치료해야 할 병으로만 보지 않고 모든 감정에는 메시지가 담겨 있으니 그 메시지에 귀 기울이며 성장의 지점으로 삼자는 내 제안이 스민 제목이었다. 출판사에서는 이 제목을 포함, 세 안을 보내주었다. 그중에서는 여전히 이 제목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담당 팀도 그 제목이 좋긴 한데, 조금 더 직관적이면서도 ‘산후우울증’이라는 키워드가 직접적으로 들어가야 검색이 잘될 것이라고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제안주셨다.     

 

나머지 안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 조금 더 생각해보며 지인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다시 출판사와 소통한 뒤 최종안이 왔다.     


‘저 산후우울증인 것 같아요’

-좋은 엄마를 꿈꾸던 어느 심리 상담사의 산후 우울 극복기-     


소름이 돋으며 의심도 없이 이거다 싶었다. ‘산후우울증’이라는 주요 키워드도 들어가고, 부제에는 내가 왜 그렇게 분투했는지가 담겼다. ‘그래, 나는 상담사였기 때문에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더욱 산후우울이 당혹스럽고 힘들었지’.      


기존 선배 작가님들의 책 소개 영상이 출판사 공식페이지에 올라온 것을 보았기 때문에 아마 나도 찍게 될 것이라 생각했고, 인사말을 연습해 보았다.     


“안녕하세요, 저 산후우울증인 것 같, 같, 어흐어흐어어억...”     


그 말은 내가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했던 말이었다.

나처럼 심한 사람이 있냐고, 당신도 그랬냐고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을 안고 수많은 지인들에게 물을 때 했던 그 말. 그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올라왔다.


그리고 나의 첫 독자인 출판사에게 이제는 비로소 제대로 이해받은 듯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예능 자막에 가끔 ‘이 방송쟁이들...!’하는 표현이, 얄미울 정도로 기획이나 상황 연출을 방송에 맞게 잘 해 버리고 말 때 등장하곤 한다. 나도 그 때 생각했다. ‘이 출판사 사람들...!’    

 

내 책은 7월 10일자로 출간되었다. 그 전에 6월 24일에 판매 페이지가 미리 열려 구매를 시작할 수 있었는데 이에 관한 것은 자세히 묻거나 듣지 못해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이해한 상태다. 그런데 6월 30일에 나에게 산후우울증 산모를 위한 모 캠페인을 위한 자문 요청이 왔다. 검색을 통해 이 책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제목에 키워드가 들어간 것에 대한 검색의 영향력이 놀라웠다.      


자본력이 있는 출판사, 홍보력이 뛰어난 출판사, 나의 글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혹은 환골탈태시켜줄 출판사, 여러 좋은 선택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의 미해결된 감정을 만나게 해 준 출판사를 만났다.

그리고 내가 성장해야 할 어떤 지점을 만나게 해 준 출판사를 만났다.

지난번 이야기한 ‘게슈탈트’에서 말하는, ‘미해결 과제’들을 만나게 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어떤 ‘좋지 않은’ 선택은 ‘좋은’ 선택이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미해결 과제를 제대로 만나면 시원해진다.

멍하고 차분해지기도 하고 감격과 위로로 뜨거워지기도 한다.

마치 내가 제목을 소리 내 읽으며 과거의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을 만난 순간처럼.     

이 미해결 과제들은 만나면 사라지는 것도 있고,

희미해졌다가 다시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있다.     

어떤 것들은 만나기가 어렵다.

잘 만나지지 않기도 하고, 만나는 것 자체도 고역이다.

그러나 만남 없이는 성장하기 어렵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도 어렵다.     


내게 아주 강한 미해결 과제에 수치심과 소외감이 있다.

단톡방에서, 조직에서, 마주해왔던 그것들.

그리고 세상에 띄운 나의 편지에 답장이 없을 때,

세상에 띄운 나의 편지에 오점이 발견될 때,

세상에 편지를 띄운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나의 존재를 증명해 내야 할 때 등...

저자로 데뷔한 뒤에도 나의 미해결 과제를 만날 기회는 끊임없이

실은 차고 넘치게 주어진다.     


내가 책을 내기 잘 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첫째, 가장 먼저 내 산후우울증을 이해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고,

둘째, 저자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그를 통해 자부심이 생긴 것,

셋째, 강연 기회를 통해 여러 지역과 여러 분들을 만나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네 번째로 그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가정, 지인과의 관계, 조직, 나의 지역사회 정도가 아니라

전국의 독자 대상이라는 아주 큰 스케일로 마주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난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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