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연구소 잠시 May 06. 2023

기다리는 이들에게 편지를 보내요

쓰고 싶은 글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기


나는 취미처럼 맘카페를 들여다본다. 주로 자기 전, 모든 일과를 마치고 쉴 때 내가 사는 지역의 다른 이웃 주민들은 어떤 고민이 있고, 어떤 것을 즐기고, 어떤 발견들을 하며 사는지 본다. 많은 경우 눈팅을 하지만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것엔 댓글도 종종 남긴다. 아기 의자가 있는 맛있는 밥집, 방으로 나뉘고 좌식으로 되어 있어 가족끼리 가기 좋은 고깃집, 친절한 소아과 등등... 아마도 나의 아기가 어릴 적엔 내가 물었던 것들.  

   

출산 이후 원인 모를 눈물과 말로만 듣던 우울을 몸소 겪으며 의지하던 곳이 맘카페였다. 이것은 나아지나요? 다른 분들도 이러셨나요? 언제까지 가나요? 저만, 부족한 엄마인가요.      


아기와 단둘이 있는 방을 우울의 바다로 만들고 있을 때 그렇지 않다고, 나도 그랬다고, 나아질 수 있다고 말해주는 댓글들은 바스러지는 지푸라기가 아닌 조금씩이라도 잡고 버텨갈 볏짚 정도는 되었다. 익명으로 질문을 온라인에 띄울 수 있다는 것 자체도 볏짚이었다. 무인도에 남겨진 이가 편지 담은 유리병을 망망대해로 띄울 수조차 없다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나아진 후, 여전히 그 편지를 띄우는 사람들을 볼 때 나는 답장하고 싶었다. 그러나 맘카페의 댓글로 달기에는 내가 나누고픈 이야기는 너무 길었다. 단편적인 몇 줄의 조언으로 전하기엔 알아주고 싶은 나날들, 전해주고 싶은 깨달음들이 너무 많았다. 몇 자 적어 보다가 말고, 적다가 말고. 이런 이야기를 담아 한 권의 책으로 남겨도 좋겠다 싶다가도 말고. 아주 막연하게 남아 있던 상상. ‘내 생에 가장 힘든 시간이었어’라고 하지만 어떤 것이, 어느 만큼 힘들었는지 나누지는 못하고 남겨뒀으나 이제 치유되었다고 세월의 저편으로 사라지기 직전이었던 기억.     


그런데 어느 축축한 봄날, 갑자기 줄어든 일정에 한가롭게 보내던 어떤 날, 갑자기 예전의 우울감이 그대로 몰려왔다. ‘그래 이런 기분이었지, 그런 날도 있었지’... ‘당시의 나에게 난 뭐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지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여러 문장들이 튀어나왔다. ‘약해서 그런 게 아니예요’, ‘혼자만 그런 게 아니예요’, ‘마음껏 울어도 돼요, 아기가 미워서 그런 거 아니잖아요’, ‘오히려 아기가 너무 이뻐도 눈물이 났는걸요’, ‘그 때 내가 왜 그랬냐면요, 그거 정말 내 잘못 아니었거든요...’ 산발적으로 떠오른 말들은 앞뒤로 또 가지를 뻗어나갔다. 그렇게, 운전하고 걸으면서 에필로그와 지금 내가 가장 아끼는 한 꼭지가 완성되었다.      


걷다 서다 하며 메모했고, 집에 와 목차를 꾸려 보았다. 정말 책이 될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목차를 짜고 다시 일정이 늘어나 1년을 묵혀 두었다. 그리고 다시 또 일정이 줄어드는 울적한 시기가 왔다. 프리랜서라 여러 곳으로부터 일을 받아서 하는데 공공기관, 학교 등은 12월에 예산이 마감되어 3-4월에 다시 개시가 된다. 나는 2021년 2월에 일이 줄어들어 울적해 목차를 짰고, 2022년 2월에 다시 일이 줄어들어 책을 쓰기 시작했다. 2023년 2월에는 울적할 시간이 없었다. 책과 관련한 강의 요청들이 들어와 그 준비로 바빴기 때문이다.      

맘카페에 달지 못한 댓글을 세상에 편지로 띄웠고, 내가 그토록 받고 싶던 답장이었던 만큼 누군가들이 기다리던 글이었나 보다. 2개월 간 쓴 글을 투고하여 답장을 받았으니. ‘출간의사가 있습니다’하고. 그러니 남기고 싶은 댓글이 있다면, 남기고 볼 일이다. 띄우고 싶은 편지가 있다면, 띄우고 볼 일이다. 쓰고 싶은 책이 있다면, 반드시, 반드시 쓰고 볼 일이다. 나의 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내 안의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후 조리원.. 아니 출간 조리원이 필요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