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동안의 우울증과의 동거
이 글은 우울, 불안 ADHD를 겪은 일반인의 개인적인 이야기 때문에 의학적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전문의와 반드시 상담하세요.
우울증에 대한 단상.
뭐부터 써야 할지 막상 블로그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나니 할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이 글을 보는 내 지인은 아마 놀랄 수도 있다. 내가 깊고 오랜 우울, 불안장애를 앓고 지냈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어쩌면 나의 제자, 학생, 고객들이 볼 수 있는 이런 곳에 이 글을 올리는 게 영업(?)의 관점에서는 부정적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상관없다. 나는 오히려 나의 이 고백이 말하기 어려운 같은 고민을 가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길 바란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질환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나도 우울증을 겪고 알게 되었다, 정신질환을 겪는 모든 사람 우리 모두 겉 보기에 똑같은 사람이다. 너무도 평범한.
나는 나의 병이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꽤나 길었을 수도.
전문의를 만나서 치료를 시작한 건 6년 정도 됐을까 싶다. 그전까지는 보수적인(?) 집안과 주변 환경 탓에, 그리고 요즘은 다르지만 나의 세대에서는 정신과 진료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고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항간에 돌던 소문 때문에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기 전까지는 한방치료를 받았다. 이것까지 포함하면 사실 8년은 된 거 같다.
불행한 어린 시절은 아니었지만 행복한 어린 시절 또한 아니었다. 항상 불안을 가지고 살았다.
((나 이렇게 진지하게 쓸 마음 없었는데 왜 이렇게 진지해지는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얘기까지 다하고. ))
누군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신기해한 적도 있었다. 난 한 번도 그런 생각해본 적 없었으니까.
아무튼 나에게 불안, 외로움은 기본값이었던 건 확실하다. 나는 다 이러고 사는 줄 알았다. 근데 아니더라.
아무튼 정신과 진료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지만 내가 정말 힘든 시기일 때. 한 교수님이 나를 찾아와서 "정말 못 견딜 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라."라고 하셨고 그 말을 하시면서 본인이 유학시절, 그리고 가족사를 이야기해 주시며 나에게 여러 얘기를 해주셨다. 그때 그냥 감사하다 정도였는데, 진짜로 시간이 흐른 뒤, 내가 안 좋은 마음을 먹었을 때 그 교수님의 말이 쓱 스쳐갔다.
그리고 병원을 찾았고 처음 받은 약이 효과가 좋았다. 그때부터 정신과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씩 사라졌다.
나는 다른 약이나, 치료처럼 뭐 6개월 꾸준히 치료하면 없어지겠지 생각했는데 처음 상담받을 때 그리고 인터넷에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검색했을 때, 짧아야 2년 길게는 평생 복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큰 좌절을 했다.
이게 고칠 수가 없는 거라는 생각에, 불치병 같다는 생각에 아무튼 큰 좌절을 했다.
우선 우울감과 우울증은 다르다. 우울감은 인간이 느끼는 기본적인 감정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우울증은 증상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의 경우는 말이 느려지고, 차분해지고, 생각도 느려지고, 기억력이 엉망이 되고, 반응이 느려졌다. 각종 수면장애, 불면증, 몽유병 등등은 기본으로 가져갔다.
예를 들어 한창 치료를 할 때 제자 중에 한 명은 요즘 왜 이렇게 차분하고 느리게 말하고, 혼내지도 않는다고 나를 무서워했다. 항상 빠른 톤으로 깜빡이 없이 훅들어가는 피드백하는 선생이 어느 순간 말이 느려지고 차분해지니, 오히려 무섭다는 것이다.
또 편의점 같은데에서 멤버십적립 필요하세요?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2-3초 정도 딜레이가 생긴다.
그리고 같이 공연을 세 개 정도 했던 후배를 봤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 충격을 받았다. 당연히 기억해야 하는 거를 기억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게을러지는 것과 좀 다르게 게을러진다. 다르게 말하면 겨우 산다. 일어나는 것도 양말 벗는 것도 버거울 때가 있다. 감정표현 또한 버겁다. 그래서 화내거나, 웃거나, 울거나 할 힘도 없다. 우울증이라는 병명은 매우 잘못되었다. 우울증은 우울할 힘조차 없는 병이다. 집에서 나올 힘조차 없다.
또한 폭식과 절식을 번갈아 가면서 하고, 아무튼 정상적인 생활이라고 보기 어렵다. 뭐 나를 일터에서나 학교에서 본 애들은 절대 상상 못 할 생활을 하곤 한다.
그리고 치료과정 중에 내가 ADHD환자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고 이건 약을 계속 바뀌어도 호전되는 게 없어서 그냥 살고 있다. (사실 내가 만난 대표적인 두 분의 의사 선생님의 의견이 갈렸다. 한분은 ADHD라는 병자체를 부정하는 분, 한분은 ADHD전문.) 그리고 난 경미한 난독증도 있다.
이렇게 보면 그냥 답이 없는 거 같은데, 사실 나는 답 없는 게 맞다. 근데 반대로, 저런 걸 겪으면서도 나를 실제로 봤듯,
지극히 남들 눈에는 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과 나는 사실 굉장히 많은 걸 하며 살아왔다.
누군가를 가르쳐셔, 학교를 보내고, 유학을 보내고, 오디션에 합격시키는 사람이기도 하고, 아이엘츠 4.0에서 7.0까지 만들기도 했으며,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어디에서든 일 못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것들을 겪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영국에서 많은 동료 교수님들 중에 같은 것을 겪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굉장히 잘 살고 있다.
그리고 힘들지 않냐고 묻는 다면, 힘들다. 버겁고. 요즘 행복해 보여서 좋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그건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서 보는 나의 극히 일부분, 0.1% 정도 되는 부분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요즘 나는 행복해야 된다는 사명감이 있다. 지금 나의 삶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줬기 때문에. 물론 이 생각이 건강한 생각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사실 지금은 약간의 사명감으로 누군가에 대한 부채감으로 살고 있다.
따라서 깊은 우울장애, 불안장애, 얕은 ADHD, 난독증을 겪으면서 처음에는 좌절스럽고 노답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오히려 이걸 '병명'으로 인정하게 되니 나를 좀 더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전에는 나는 왜 이렇게 노답인가 하고 좌절했다면 지금은 그냥 "맞아, 이게 나임..ㅎ 그럼 어떻게 해야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거니? “ 하게 되었다.
뭐 남들보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한 인간임은 맞다. 책 한 장 읽는 것도 버겁고, (엥? 선생님 책 잘 읽으시던데라고 생각하는 제자들이 있을게 분명하지만, 네가 본 그 모습의 난 몇 배의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방의 캐리어 정리하는 것도 버겁다.
이런 나를 받아들이면서, 인정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내가 가진 꿈을 이루고, 내게 주어진 임무를 잘하기 위한, 살아가기 위한 요령이 하루하루 늘어가긴 했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시기를 겪으면서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지고 넓어지기도 했다. 세상에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은 정말 셀 수 없이 많다는 것, 그리고 연기하는 친구들, 예술하는 친구들의 상당수가 가지고 있는 고민 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신과 상담이나, 심리상담 등을 증상유무를 떠나 오히려 추천한다. 생각보다 내가 모르는 나를 아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다리가 부러졌는데 아니야 정신력으로 걸을 수 있어!! 하는 무식한 짓은 절대 하면 안 된다. 정신질환은 다리 부러진 것과 정말 다를 게 없다. 수술하고 깁스하고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적절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당연하다.
지금 이 글도 굉장히 두서없지만 두서없는 김에 계속 두서없고 싶다. 사실 이게 나다. 나임... 나야 나 나야 나 (<-_-)/
깨달음 1
햇빛은 최고다. 정말로, 햇빛 받으면서 산책하는 것은 어떠한 약보다 강하다. 사실 죽을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을 때, 의사가 숙제로 2시간 햇빛 받으면서 산책을 숙제로 내줬고, 너무 식상했다. "건강이요? 운동과 식단을 병행하세요" 같은 말 같아서 짜증 났는데, 세 시간 산책했나? 그때 집에 와서 세수하는데 갑자기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 정서가 관리 안될 때 산책을 한다.
깨달음 2
나의 예민함, 불안함을 타인에게 배설하거나 타인의 행동에 의미 부여하지 않게 되었다.
요즘은 이럴 때면 아, 나 아프구나, 하고 넘어가곤 한다.
깨달음 3
공감능력은 많아졌지만 남에게 함부로 공감한다는 표현은 잘 안 하게 되었다. 내가 감히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깨달음 4
이건 안 좋은 것 일 수도 있는데, 진짜 이해 안 되는 제자 몇몇이 있었는데, 예전에는 진짜 싸우고 뜯어고치고 잔소리하고 지랄염병을 했다면, 지금은 음... 진단명이 있나 보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퉁치기로 했다. (어,, 이거 제 얘긴가요 선생님? ㅠ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 아니다.)
깨달음 5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걱정되는 애들이 있는데, 워낙 연기하는 애들 성격이야 가지각색 지랄염병이고 그들의 집안사정과 개인사는 엉망진창인 거는 기본값이라 걱정조차 안 된다. 배우의 인생은 엉망진창이다. 아닌 사람 본 적 없음, 다만 내가 걱정되는 애들은, 감정표현조차 멈춰있는 애들이다. 위에 언급했듯, 우울증은 우울한 병이 아니다. 우울할 힘조차 없는 병이다. 내가 한창 치료할 때 엄마랑 울면서 크게 싸운 적이 있는데, 이걸 의사에게 얘기했을 때, 그때 의사가 음 치료가 되고 있네요. 했다. 이 말이 지금은 매우 이해가 된다. 따라서 내가 걱정되는 애들은, 무언가 멈춰있는 친구들이다. 그런 애들은 유심히 관찰하고 에쮸드나, 신체훈련 때 오히려 더 유도하는 편이다.
깨달음 6
연기훈련은 이러한 정서세러피와 많이 맞닿아있다. 사실 RCSSD에서 지원하고 오퍼 받는 과정에서 가장 아이러니하게 내가 원하던 커리큘럼을 가진 과정은 Drama Therapy였다. 라반, 스타니슬랍스키 에쮸드를 배우고 여러 요가와 명상을 배우고 가르치는 법을,,, 물론 지원하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를 치료하고 캐어할 수 있는 인간이 절대... 절대....
깨달음 7
그래도 잘 살아봐야지 라는 생각을 깔게 되는 계기였다. 내가 안 좋은 마음을 먹지 않고 버틸덕분에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만난 거 아닐까. 다만 요즘 드는 생각은, 자살, 충동적으로 들어오는 안 좋은 생각에 대해서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럴 일 없어."라는 생각이 가장 위험한 생각이다. "나도 그럴 수 있어. 그러니 조심해야지."라는 생각이 더 건강하다.
깨달음 8
이것도 안 좋은 건데... 가끔 자기도 우울증이다, ADHD다, 불안장애가 있다 등등을 이유를 핑계(?) 삼는 친구들이 있는데. 음... 뭐 음... 핑계는 아닌 걸로 안다. 존중한다. 근데... 그러면... 우선 치료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말이 입술 뒤까지 도달한다. 왜 치료를 안 받고,,, 저걸 익스큐즈로 사용하지...???
아무튼
이 글을 다 봤다면, 뭐 고맙다. 역대급 두서없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일부러 수정도 안 하고 막 쓰고 있다. (((Adhd간접체험하세요)))
그리고 나는 괜찮다. 뭐 사실 좆같은데, 그러려니 하고 살고 있다. 이런 것도 읽어주는 사람들 덕분에.
진짜 어쩌겠어하고 사는 중이다. 진짜 시간이 야속한 게 지나가긴 한다. 그리고 살아 볼 만하다. 그때 잘 버틴 덕분에, 정말 많은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조카도 보고, 무모한 도전도 많이 해보고... ㅎㅎㅎ
오늘 제자 합격 소식을 들었다. 마지막 레슨 후로 연락이 없어서 마음이 그랬는데, 그 사이에 영국, 미국 액팅스쿨 여러 군데 합격 소식이 온 거 같다. 역시 살아보길 잘했어.
스승님 1인극 봤다. 리어왕의 광대(바보)로 만든 1인극... 최고의 광대를 만난 느낌. 다시 만나러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게 됐다. 약속한 것들이 많아서 다 지킬 때까지는 살아야겠다.
아무튼 괜히 사진 하나 올려본다.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