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or워커 Oct 03. 2023

만족한 직장. 그러나 다시 이직

SK에서의 생활은 굉장한 만족이었다. 이직 후에 삼성그룹 동기와 나눴던 대화가 기억이 난다. 삼성에서 일할 때 늘 불만을 달고 살았던 네가 SK에서 그렇게 만족할 줄 몰랐다고 했다. 실제로 내가 품었던 불만들이 이직을 통해 많이 해소되었다. 성공적인 이직이라고 생각했었다. 


SK에선 발전소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위상이 조금 바뀌었지만 당시 전기발전업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높은 영업이익에서 파생되는 높은 연봉, 낮은 업무강도, 안정적인 수익구조와 긴 근속연수 등 직장인이 꿈꾸는 많은 것이 있었다. 처음에는 좋은 점만 보였다. 그만큼 만족하며 열심히 일했고 좋은 성과와 평가를 받아나갔다.


하지만 조금씩 불만사항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직으로, 아니 이직을 해야만 알게 되는 것들이었다. 삼성에서의 근무지는 대도시의 중심부에 있었다. SK에서의 근무지는 시골에서도 가장 외곽에 있었다. 할 만한 운동이 없고, 다닐 만한 맛집이 없고, 어울릴 만한 사람이 없었다. 분위기와 생활 인프라가 내 삶에 그렇게 큰 부분이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내 생각보다 훨씬 큰 아쉬움이 생겼고 혈기왕성할 때였던 만큼 아쉬움은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생각해 보니 이건 전 직장의 장점이었다. 근무할 때는 인지하지 못했던 장점.


또 하나의 문제는 여자친구였다. 당시 나는 전 직장에서부터 계속 만나온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녀와 멀어진 거리가 많은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연애는 할 수 있어도 결혼에는 제약이 많았다. 장거리 출퇴근, 주말부부 등 몇몇 문제들은 어떻게든 설득해 볼 수 있었지만, 자녀계획을 얘기할 때면 도저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결혼 적령기가 되어갈수록 여자친구와의 골이 깊어져가는 걸 느꼈다.


정확하게 그 시점에 일이 터졌다. 그때 당시에는 잠도 못 잘 정도로 충격이었다. 내가 있던 SK E&S의 발전부문이 통째로 매각된 것이었다. 그룹사의 결정으로 모든 설비와 인력이 그대로 다른 회사로 옮겨졌다. 개인에게는 어떠한 의견 조율 없이 글자 그대로 통째로 팔렸다.


모든 근무 조건은 동일했다. 연봉, 성과제도, 직급체계, 복리후생 등 기존 SK그룹의 체계와 똑같이 운영된다는 부분이 명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우리 회사가 팔리는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되게끔 나는 SK그룹과 새로운 그룹이 요구하는 보고서를 수없이 작성하고 제출했다. 내가 이 회사에서 하나의 부속품일 뿐이라는 걸 절실히 느끼게 만드는 일들이었다.


여러 가지 문제를 종합한 결과 다시 이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두 번째 이직 준비를 하면서 느꼈던 안타까움과 후회가 지금도 생각이 난다. 첫 번째 직장에서 겪었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직하였고 실제로 몇 가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직장에서도 문제들은 생겼다. 오히려 첫 번째 직장이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들도 있었다. 결국 이직이 답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데 또 이직을 하려고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래서 이번에는 직장을 먼저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인기 많고 이름 있는 곳이라도 나와 맞지 않다면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란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부터 생각했다. 나는 여자친구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결혼과 가정생활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아이의 교육도 중요하고, 생활 인프라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씀씀이가 크지 않고 절약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정리해 나가니 오히려 더 넓은 채용시장이 보였다. 이름 있는 메이저 회사들에 함몰되어 있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진작에 나를 먼저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이렇게 뱅뱅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공공기관으로 이직을 했다. 


 

이전 05화 나 = S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