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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나로 Nov 22. 2022

개발도상국은 처음입니다

국제개발협력의 시작


국제개발협력이라고 하면, 지구봉을 손에 올리고 있는 협력하는 장면, 개발도상국의 현장에 나가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 손에 손을 맞잡은 전 세계 사람들 등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나의 상상과 달리 나의 첫 개발협력 업무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주로 하는 공문서와 친해지는 일이었다.


개발협력의 첫 단추가 되어준 경험은 KOICA 해외사무소 Young Professional(YP)이다. 개발협력이라고 해서, 조끼를 입고 모자를 쓰고 현장에 가는 모습도 기대했지만 업무를 시작해보니 오피스 업무가 9할이었다. 사무소에서는 본부와 소통하며 중심을 잡고 진행하는 업무들이 많았고, 관리자로서 수행기관들의 업무를 관리하고 있었다. 현장을 가까이하는 것은 현장에서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들이었다. 지원하는 출장과 외근 업무를 통해 현장을 조금이나마 간접적으로 볼 수 있었다. 어렵게 쥐어진 기회였던 만큼 그 시간들이 소중했다.


학부시절 해왔던 일들은 알수록 갈증이 해소되었지만, 개발협력분야는 알수록 갈증이 생겼다. KOICA는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발전과 자립을 돕도록 교육, 보건, 인프라, 환경, 농촌 등 다양한 분야를 지원한다. 실제로 현장에서 각 분야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프로젝트를 형성하고 기술협력을 넓히고 있었다. YP(인턴)으로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알리는 홍보 업무를 진행하기도 하고, 헌혈의 날, KOREA WEEK 등 다양한 행사를 지원하기도 했다. 프로젝트 업무를 지원하며 1년 간의 업무 프로세스를 익히고 기획조사, 심층조사 등을 지원하며 사업이 어떻게 형성되고 진행되는지 배울 수 있었다.


이전에 다른 공공기관에서 인턴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내 손에 쥐어진 자료와 홈페이지를 보면 졸리기 일쑤였다. 관심분야가 아니었던 것이 큰 이유였을 것이다. 부동산 관련 문서를 보자마자 졸음이 쏟아졌고, 관리 중인 도서관을 다녀오며 졸음을 깨곤 했다. 


하지만, 국제개발협력 분야는 달랐다. 문서를 보면 볼수록 재미있어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관련 문서들을 다 들여다보곤 했다. 예를 들어, 불발탄 사업이 생소하면 히스토리를 찾아보고 다른 나라는 어떻게 지원하고 있으며, 언제부터 사업을 시작했고, 어떻게 진행되는지까지 쭈욱 훑어보았다. 하나씩 알아간다는 것의 기쁨이 커서 이 분야의 일이 꽤나 잘 맞는구나라고 느꼈다.




감사하게도,  업무역량이 좋으신 인상 깊은 상사분들을 만났다. 항상 업무를 잘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고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개발협력 분야에 있으면서도 업무에 치여 자신이 쥐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감각을 잊고 계신다는 분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혹은 종종 자신만의 신념이나 강한 생각에 갇히기도 한 사람도 있다. 상사분들은 수혜자들을 생각하며 업무 감각을 잊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주시곤 했다. 때론, 수혜자들과 전혀 관련되지 않은 일들과 비효율적인 일들에 대한 슬픔을 느끼기도 하셨다. (일을 하다 보면 그 업무의 본래 목적과 100% 매칭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일하다 보면 생각하기가 게을러질 수 있지만, 실무자로서 본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고민해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개발도상국에서 개발협력이 무엇인지 배우고, 어떤 마음자세와 태도를 가지며 일하는 것이 좋은지 고민하며 일에 대한 시야를 넓혔다. 같은 해외생활이지만, 중국 유학과 확연히 다른 점은 외부적인 환경보다 일이라는 본질에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며, 예전의 메모를 꺼내보았다.


2018년 6월 4일

(생략)
나중에 깨달은 것은 환경에 대해 기대는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과 환경을 마주할지는 모른다. 그곳에서 나는 신념을 지니고 해 나가면 된다. 내가 신념을 지니고 좋은 영향력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면 되는 것이다. 이 분야의 일이 어떤지 아직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끌렸다, 그리고 멋졌다. 라오스에서 경험으로 부딪히며 이 일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남길 수 있기를,

2018년 10월 18일

ODA 분야는 명료하지 않다. 나의 선의가, 우리의 선의가, 닿지 못할 수도 정작 그들에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나는 왜 이 분야에서 일하려고 하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에서? 한 사람이라도 도움으로 나은 삶을 살아가서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

2019년 1월 5일

나는 개도국 경험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파견지가 라오스였을 때 적지 않게 실망했다. 나에게 도전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생략)

운 좋게도 훌륭하신 상사분들을 만났다.

(생략)
 
결론적으로, 처음의 아쉬움과 달리 라오스에 오게 되어 많은 일을 했던 것과 좋은 상사분들과 지인을 만났던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2019년 4월 26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가고자 하는 일의 정상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ㅇㅇㅇ'나'ㅇㅇㅇ'는 하나의 길일뿐이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상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2019년 8월 21일

개발협력 분야에서 현지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들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게 현재의 꿈이다. 국제기구, 원조기관, NGO 어디에서든지. 기왕이면, 젊어서 큰 기관에서 일해보고 싶긴 하다. 그래야 시야가 넓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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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속도에 맞춰가면 된다는 것을 이젠 알게 됐다. 불어오는 바람처럼. 체력, 찾아오는 기회 등을 고려하면서.

가시길을 걸어가는 기분이 아니다. 가고자 하는 길로 가는 길에 좋은 사람들과 경험을 쌓는 기분이라 하루하루 감사하고 행복하다. 그래서 하루하루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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