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게 교훈을 알려주고 싶다 했다. 그 거만함에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 거만함을 곱씹곤 한다. 그리고 그와의 두 번째 만남, 시부야 근처 태국 음식점에서 밥을 먹을 때 그가 내 나이를 물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97년생.”라는 나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Yes!”라고 반응한 그가, 그 안도와 신남이 섞인 듯한 손동작이 생각난다. 또 그 반응과 함께 바로 비친 그의 얼굴의 민망함도 선명히 기억이 난다.
“너는 몇 년생인데?”라고 물었을 때,
“96.”라는 답에서 나는 그의 순식간의 감정선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때 모든 것이 예고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네다 공항에서 만난 이유는 골든 위크가 다가와 오키나와에 갈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쌤은 그의 친누나는 아니지만 친누나라고 여길 만큼 친한 리타와 여행을 할 생각이었다. 그 여행에 나와 마이클이 합류하게 된 것이다. 마이클이 합류한 이유는 아마도 마이클과 리타가 친구 이상의 관계로 나아갈 것 같다는 공공연한 비밀 때문이었다. 내가 합류한 이유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쌤은 여느 등산때와 같이 정말 세세한 여행 일정이 쓰인 PPT를 보냈다. 모든 교통편과 숙소의 결제를 맡겨만 달라는 태도로 해치웠다. 여행 준비 관련해서 같이 분담을 하자고 리타나 내가 제안을 하면,
“All good.”이라는 답을 일관했다. 그를 제외한 세명은 모두 일을 하고 있었으니 자신이 더 시간을 쓰겠다고 덧붙이며. 중간에서 쌤이 모든 것을 조율해 주었기 때문에 사실 네 명이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하 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넷은 서로가 상상한 여행에 극명한 차이가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리타와 마이클은 편이한 여행을 선호했고 나는 과할 만큼 편의에서 벗어난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 결과 리타와 마이클은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서 목적지로 이동하는 동안 나와 쌤은 두 발로 온갖 숲이며 계곡을 해치며 다녔다. 거이 굶다시피 빵조각 같은 것만 들고 해변과 해변을 자전거로 이동하면서 날것을 만끽했다. 어쨌든 결국 대부분의 시간을 쌤과 둘이서 보내게 되었다.
첫날에 비가 많이 와서 리타와 마이클은 숙소에 바로 가기로 했고, 나는 오히려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며 쌤에게 계획대로 자전거를 타고 코우리대교를 건너자 했다. 자전거를 렌털을 하고 우비를 입고 열심히 페달을 밟기시작했다. 신발이 빠르게 젖어왔다. 코우리대교에 가까워지자 길이 경사지기 시작했다. 전문 자전거 샵에서 자전거를 빌려서인지 내가 평소에 타던 자전거와는 달랐다. 바퀴가 훨씬 더 얇았다. 그런 와중에 바람이 세게 불면서 젖은 머리가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내가 앞장을 섰지만 어딘가 심히 아슬아슬하게 나아가고 있었고, 쌤은 묵묵하게 뒤를 따라왔다. 쌤이 평소에 타고 다니는 자전거는 바람을 넣는 타이어식이 아니라 완전히 고체의 고무로 된 바퀴로 된 것이었다. 이 타입은 교체의 번거로움이 적지만 비교적 무겁고 주행의 어려움이 크다. 그래서인지 얇은 타이어의 렌털 자전거의 주행이 수월해 보였다. 이상하게 자존심이 발동해 나는 절대 힘듦을 겉으로 티 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발에 힘을 주는 순간, 자전거가 방지턱 비슷한 노란색 고무로 밀려버렸다. 콘크리트와 다르게 미끄러웠던 그 고무덕에 그대로 나의 자전거가 옆으로 기울었다.
다리와 자전거가 엉켜 일어나지 못했다. 쌤도 빠르게 자전거를 세우고 내게 뛰어오다시피 다가왔다.
“괜찮아?” 나는 그저 끙끙댔다.
“어쩐지 이렇게 될 거 같았어. 내가 뒤에서 얼마나 간절히 애원했는지, 네가 그 노란색 고무 쪽으로 가지 말기를. 자전거 타는 사람은 절대 그 고무 위에 올라가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 텐데. 건너고 싶을 때는 완전히 직각으로 꺾어야 한다고.”라고 쓰러진 자전거와 나를 세우며 그는 말을 쉬지 않고 뱉었다. 그 쉼 없는 잔소리는 흡사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했다. 사실 이번뿐이 아니었다. 그는 차도를 건너는 나를 보면서, 큰 주의 없이 하산을 하는 나를 보면서, 대충대충 요리를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쓸어내린 게 몇 번이나 된다 말해왔다. 그래서일까 그는 나와 길을 걸을 때 필요이상으로 나를 인도 쪽으로 두려 했다. 가끔은 동선이 꼬여가면서까지, 하던 대화가 중단되면서까지 그것을 고집해 왔다. 날카로운 요리 도구를 쓸 때면 언제나 뒤에서 아슬아슬하다는 표정을 하며 간섭을 하거나 본인이 하겠다 했다. 그렇게 위험한 상황도, 완벽하게 해낼 필요가 없는 경우에도 그것을 그가 위임하면서 효율성이 떨어지고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은 전혀 인지하지 못해 보였다.
무릎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고, 그는 빠르게 편의점으로 달려가 소독과 밴드를 사 와 처지 해줬다. 그는 내게 돌아가자고 애원했지만 나는 절대로 끝까지 목적지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빗물이 밴드로 덮지 못한 상처를 건드릴 때마다 따끔했지만, 다시는 이런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고 각오를 치켜세우고 페달을 계속 밟았다.
밟으며 생각했다. 여태까지 그가 해댄 진심 어린 걱정에서 우러나온 말들이 나는 어딘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나를 돌보아주고 싶어 하고 가르쳐주고 싶어 하는 그 알듯 말듯한 거만한 태도가. 그것이 나에게 최선이라 믿는 것이, 어찌 그렇게 나를 안다고 확신하면서 일면도 아는 게 없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