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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Mar 24. 2024

운동화 끈이 다 풀리기 전에

꽃이 피기 전에

겨울이 유난히 길다.

지난해 벚꽃 사진들이 언제쯤 찍혔나 핸드폰 갤러리를 살펴보니, 작년 이맘때쯤엔 이미 벚꽃이 모두 만개해 있었다. 어쩐지 계속 춥더라니.


금요일에 휴가를 내고 목요일 저녁, 아주 오랜만에 본가인 대구로 내려가기로 했다. 목요일에 퇴근하고 바로 기차역으로 갈 참으로, 그날은 차를 놔두고 지하철로 출근을 했다. 이곳에 온 뒤 처음이었던 대중교통 출근. 혹 늦을까 봐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지하철 역까지 부랴부랴 걸어갔다. 제법 차가웠던 공기 속에서 몸 안의 열기는 달아올랐다 식었다를 반복했다. 상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골쥐답게, 지하철 안에서도 나는 눈알 굴리기에 바빴다. 그러나 나와는 달리, 사람들은 그 미로 속에서도 핸드폰을 보며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부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시골쥐의 촌스럽고 산만한 출근길.


퇴근 후, 광명역으로 가는 광역버스를 한 대 놓친 바람에 버스정류장에서 20분을 추위에 떨었다. 이내 서글퍼진 마음은 더욱 빨리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한참을 떨어서였나. 버스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고, 떨어진 체온은 역에 도착해서도 회복되지가 않았다. 기차에 타기 전에 간단히 저녁을 먹으며 차가워진 몸을 달랬다. 기차에 타기 직전, 아직 돌아오지 않은 과 더불어 갑작스레 배도 조금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이래서 오랜 숨 가쁜 일정 끝 꿀 같은 휴식을 앞있을 때마다,  두려웠다. 풀려버린 긴장의 끈이 내 신체리듬도 자주 놓아버기 때문이다.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귀국길, 바쁜 시즌이 끝나고 마침내 찾아온 업무 성수기의 종료. 나는 그럴 때마다 종종 그리고 꼭 앓았고 그래서 늘 불안했다. 모든 것을 통제해 가며 끌어낸 결과에서, 정작 내 몸은 통제할 수가 없었기에. 으슬으슬한 몸살안고 역에 도착해 마중 나온 아빠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할 겨를도 없이, 아픈 배를 부여잡고 빨리 집에 가자며 그를 부추겼다.


배탈은 물러갔지만 하룻밤을 자고 나니, 약한 몸살기가 남아있었다. 누가 시키기도 전에, 일찌감치 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이곳에 계속 있는 거라면 하루이틀 상황을 보고 갈지 말지 고민하겠다, 나는 이 주말 너머에 장기출장이 예고돼 있었다. 아침을 먹고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병원에 갔다. 가벼운 감기 기운임에도 불구하고, 의사 선생님께 수액을 맞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긴장의 끈이 풀어진 내 몸이, 더 그 끈을 놓아버리기 전에 얼른 제자리로 돌려놔야 했다. 영양제를 처방받아 회복실에서 한 시간 동안 링거를 맞았다. 평소였다면 이 정도 증상에 링거까지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이제 조금이라도 괜찮을 때에 빨리, 더 괜찮아져야 했다. 운동화 끈이 다 풀려버린 뒤 묶는 것이 아니라, 느슨해졌을 때 다시금 끈을 쪼여야 했다. 잘못하다간  발에 걸려 넘어질지 모르니까.


하루는 그렇게 링거를 맞고 또 다음날엔 치과를 갔다. 한 달 전에 받은 정기검진 문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뚜렷하게 입 안에 아픈 곳도 없었지만 다니던 병원에, 갈 수 있을 때, 가고 싶었다. 다행히 검진 결과,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스케일링만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있는 동안, 연초에 달여둔 한약식후 계속 따뜻하게 데워 마셨다. 내 몸이 긴장의 끈을 놓으면서 미약하게 남아 있는 항상성 마저 놓아버릴까 봐 염려하며, "어허- 안 돼! 난 지금 아프면 안 돼!" 혼잣말을 내뱉다. 그리곤 속으로 다시 생각했.


지금이라서가 아니라,

언제든 아파도 되는 때는 없어.




잠깐 머물렀던 대구에서의 주말, 무턱대고 드러누워 쉬기보다  운동화 끈을 다시 조여 맸다. 발령이 나고 어느덧 두 달의 시간이 른 뒤였고, 엄마는 날 보더니 이즈음이면 한번 아플 때가 되었다고 했다. 어찌 보면 이 몸뚱아리도 아는 것이다. 집에 왔을 때 아파야, 병원에 가는 것도 스스로를 돌보는 일도 헤매지 않는다는 것을. 시골쥐의 불안한 눈빛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테니, 누울 자리를 보고 누운 지. 역시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그렇게 주말 동안 운동화 끈을 다시 조여맨 나는,  5박 6일을 보내야 할 다음 출장지인 광주 도착했다. 한껏 별스러워진 피부를 위해 평소에 쓰던 바디용품을 공병에 다 담아왔고, 혹 잠을 설칠불면증에 좋다는 꿀 스틱과 자기 전에 읽으려고 이북리더기도 챙겨 왔다. 가능하다면 매일 일정이 끝난 뒤 저녁 산책도 하려 한다. 그렇게 다 풀려버리기 전에 틈이, 그리고 미리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어주기로 한다. 요즘 유행하는 어느 아이돌의 노래 제목처럼, 나는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병원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대구의 벚꽃명소인 두류공원을 지났다. 자줏빛으로 동그랗게  꽃봉오리들을 보아하니, 조만간 분홍빛으로 물들 이곳의 풍경이 그려졌다. 올해는 이곳의 벚꽃을 내 눈으로 담지는 못하겠지. 조금 더 오래 쌀쌀했던 날씨를 뒤로 하고, 시골쥐는 충분히 스스로를 챙 뒤 다시금 고향을 떠난다.


꽃을 피우기 직전, 마지막 추위를 온몸으로 받아들였으니 조금 늦게 마주 개화의 순간 그만큼 더 오래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운동화 끈은 조여졌, 어디든 머물고 있는 곳에서 꽃이 피면 바로 달려 나갈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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