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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새타니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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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yj Sep 01. 2024

절대 선

이박사는 어두운 숲 속에서 가까스로 의식을 찾았다. 김박사 손에 죽을 줄 알았는데 왜 살려뒀을까? 겨우 몸을 추슬러 일어나려다 무당의 차가운 얼굴이 생각이 났다. 심장 속까지 느껴지는 공포의 한기.... 절대 선..김선이라는 또 다른 선...  살인자 노인네... 무당이 말한 절대 선이라는 것이 무슨 말이지? 이박사는 생각을 멈추고 주위를 돌아보며 김박사를 찾았다. 하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고 무당 또한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송연. 그녀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박사가 병원을 다시 찾았을 때 김선이라는 노인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르신, 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  이박사의 다급한 질문에도 노인은 차분했다. 

"박사님, 우리는 물고 물리는 인연의 고리 속에 있어요. 제가 왜 송연을 찾아야 하는지는 알게 되었나요?"

"저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요. 새타니는 뭐고 절대 선은 뭐예요? 어르신이 절대 선이에요? 어린아이를 죽인 살인자가 절대 선이에요?" 이박사는 화가 나서 노인을 다그쳤다. 하지만 노인은 여전히 침착했다. 

"맞아요. 제가 김선이예요. 새타니의 짝으로 태어난 아이. 제가 그 선입니다.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고, 아이를 죽이던 노숙인 범죄자. 제가 바로 절대 선이어야 했던 김선이예요." 

"그게 무슨 말이세요? 사람을 죽이는 게 선이에요?"

"박사님의 마음은 이해가 돼요. 하지만 지금 저를 도와주실 분은 박사님 밖에 없어요. 부디 화를 누르시고 저를 도와주세요." 노인의 말에 이박사는 어이가 없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소름 끼치게 싫었다. 하지만 이박사는 도저히 노인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제가 뭘 도와야 하는 건가요?" 이박사는 숨을 고르며 물었다. 

"저는 그 녀석이 나를 찾아오기 전까지 아무런 기억조차 없는 인생을 살았어요. 어려서는 부모에게 버림받았고, 자라서는 사람들을 죽이는 망나니로 살았지요. 아마도 그 녀석이 유일한 친구였던 것 같아요."

"그 녀석이요?"

"또 다른 김선, 저의 짝꿍이에요." 

"어르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큰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을 떨칠 수가 없어요. 제발 자세하게 알려주세요." 이박사는 마음은 더욱 다급해졌다. 

"박사님. 저도 전부 알지는 못해요. 제가 아는 것은 새타니가 어른이 되는 또다른 방법을 찾았다는 거에요. 예전에는 절대 선의 절대 고통만이 새타니가 어른이 되는 유일한 길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어린 시절부터 저를 따라다니며 제 인생을 시궁창에 넣어버렸던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어요."

"그게 뭐에요?"

"새타니가 원초적인 악을 찾아낸 것 같아요. 절대 선은 무너지고 원초적인 악이 대신 새타니의 길을 열어줄거에요."

"원조척인 악이 뭐에요?" 이박사는 노인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인간의 두려움을 먹고 자란 원초적인 악." 노인은 기관절개관에서 손을 떼며 한숨을 쉬었다. 

"그게 김성진 박사란 말이세요?"

"네. 아마 그 사람이 송연을 찾아갈 거예요. 그걸 막아주실 분이 박사님 밖에 없으세요."

"왜 저희를 무당에게 보내셨어요. 정말 김성진 박사가 자살이라도 하기를 바라셨어요?" 이박사의 분노에도 노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간단했겠지요. 김박사님이 제 아비인지에 대한 확신도 필요했고요." 노인을 말을 이어갔다. 

"그를 따라가서 송연을 찾아주세요. 그가 송연을 죽여 죽은 짐승과 재를 지내면 드디어 새타니가 어른이 되는 마지막 관문이 열릴 거예요."

"예전에 당신 어머니가 한 것처럼요?"

"네. 저의 아비는 누구에게나 다정했지만 누구보다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아무도 돌보지 않았고 아무도 지키지 못했지요. 제 부인도. 제 자식도 모두 버렸어요. 그의 두려움이 스스로를 원초적인 악으로 만들어 지금 여기에 있어요. 이제 제 아비는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가겠지만 우리 모두는 사라질 거예요." 노인은 눈빛이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다. 

"저는 제 아비의 두려움과 어미의 어리석음. 태어나자마자 죽어버린 아이와 그 어미의 한이 만들어낸 악마의 벗이었어요. 제가 만들어낸 모든 것을 이제는 마무리하고 싶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노인의 힘겨운 다그침에 이박사의 또다른 공포의 한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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