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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Apr 14. 2024

사랑이 필요한 이유

사랑에 대하여 4 :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10년 전에 이 책을 처음 봤다. 학교에서 봤는데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런 사랑이 존재하다니. 너무 마음이 아려서 몰래 울었다. 짝꿍이 우는지 쳐다보길래 자는 척했었던 기억이 있다. 다시 읽게 되다니. 「자기 앞의 생」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기쁘다. 다들 어떻게 읽었을지도 너무 궁금하고.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냐고. 할아버지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답하지만 종국에는 너무 늙어서 모모가 다시 그 질문을 했을 때 자신의 첫사랑의 이름을 말해주고자 하지만 기억하지 못한다. 어쩌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사랑은, 사랑 없이 살 수 있지만, 자연의 법칙에 따라 우리는 사랑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사랑이 과연 살아가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일까.


「자기 앞의 생」은 ‘레 미제라블’의 이야기다. 번역하자면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 프랑스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자들의 이야기. 아우슈비츠의 경험이 있는 유태인 창녀 로자 아줌마는 나이가 들어 창녀 일을 그만두고 다른 창녀들의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맡아주는 일을 한다. 창녀들은 몸을 파는 일을 하기에 양육권을 가질 수 없고, 창녀들의 아이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지기 때문에 그들은 돈을 조금씩 달에 붙이며 로자 아줌마에게 아이들을 맡기는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는 그들의 엄마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입양을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아이들 중 한 명인 모모는 가장 오랫동안 로자 아줌마에게 맡겨진 아이다. 모모는 유태인은 아니나 아랍인이며, 모모와 로자 아줌마가 사는 곳은 아파트의 7층으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다. 이웃으로는 여장남자와 독거노인, 흑인 등으로 프랑스라는 장소에서 ‘비주류’의 존재로 여겨지는 사람들이다. 로자 아줌마가 나이가 많이 들어 병이 들고, 몸이 쇠약해지고,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이웃들은 로자 아줌마가 조금 더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악마를 퇴치해야 한다며 정신이 나간 로자 아줌마 주변을 빙빙 돌며 전통 춤을 춘다거나 예쁜 옷을 선물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등의 노력을 말이다. 로자 아줌마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고 의사는 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로자 아줌마는 병원에 가기도, 병원에서 식물인간인 상태로 오래 생이 지속되기도 원하지 않는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의 뜻대로 모두가 모르게 로자 아줌마를 지하의 아늑한 방으로 데려가 눕히고, 로자 아줌마의 임종을 지킨다. 로자 아줌마의 화장을 고치고 시체에서 나는 악취를 가리기 위해 향수를 부으면서, 그리고 모모 스스로는 식음을 전폐하며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저항한다.


고백하자면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제대로 글을 쓸 수 없었다. 모든 글이 두서없고 중구난방이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세 갈래의 길목에서 서 있고 등 뒤로는 검은 안개가 뚜벅뚜벅 다가오는 듯한 달들을 보냈다. 마음이 곧잘 쓰려서 사람들에게 제대로 대할 수 없던 날들이 흘렀다. 그럼에도 붙잡고 가야 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처음 예상했던 것처럼 사랑은 정의 내릴 수도 없고 어떠한 분류에 속해서 풀어내기에는 너무나도 크다. 그러나 어쨌든 나에게 사랑이란 ‘생’을 가진 것들을 사랑하기에 이토록 복잡하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기에 우리는 정의하려 들어도 족족 실패하고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며, 슬픔을 끌어안으며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나에게 주는 감동은, 어쨌든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마음. 질기거나 너무나도 약한 각각의 생에 풍화되고 줄어드는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마음. 어쩌면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유일하게 자연의 법칙에 위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사랑만이 ‘자기 앞의 생’을 저항하고 또 끌어안으며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by. 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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