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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인남 Dec 01. 2022

조기문(弔器文)

아끼던 접시가 깨져 가진 애도의 시간, 그리고 한 가지 생각

우리 집은 거의 매일 저녁을 해 먹는 편이다. 그 이유는 아침에는 잠을 자는 게 더 좋아서 출근시간 직전까지 최대한 잠을 자기 때문에 아침에 부부가 서로 한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한다거나 대화할 시간이 없다. 점심은 각자 회사에 있으니 같이 있을 수 없고 결국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저녁이므로 별 다른 일이 없으면 무조건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로 정해두었다. 그러나 매일 저녁을 외식을 하거나 배달 음식을 먹게 되면 그 비용이 의외로 크다. 그래서 아내가 먼저 우리의 저녁식사는 손수 요리를 해 먹는 것을 제안했다. 너무 기특하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 부부는 한 주에 1번 또는 이 주에 1번씩 장을 본다. 


사설이 길었다. 여하튼 평범하게 저녁을 해 먹던 어느 날, 아내가 오늘 후식은 자기가 직접 선보이겠다고 내게 말했다. 어떤 후식일까? 아내가 잘 만드는 마늘빵일까 했는데 처음 보는 재료들이 눈에 들어왔다. 빵 위에 버터와 꿀을 발라 굽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허니버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내의 새로운 도전에 절로 기대가 되었다. 어디서 이런 레시피를 알게 되었는지 물어보자. 아내는 요즘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요리 사진이 올라오는 것이 유행인데 그중 괜찮아 보이는 것을 오늘 해보는 거라고 했다. 


원래는 에어 프라이기로만 조리한다고 했으나 양이 많아서 에어 프라이기와 전자레인지로 조리를 했다. 하루의 일과를 나누며 같이 준비한 저녁을 맛있게 먹던 찰나 전자레인지에서 '펑! 달그락'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전자레인지의 접시가 잘못 끼워져서 이제 맞춰진 거라고 생각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안일한 생각은 얼마 안가 아내의 '오빠!!' 하는 소리에 사라져 버렸다. 전자레인지에서 흰 연기가 모락모락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수저를 내려놓고 전자레인지의 문을 여는 순간, 마치 할아버지가 태우시던 담배연기와 같은 연기와 탄 냄새가 부엌을 가득 매웠다. 그리고 이내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깨져버린 접시와 '허니버터 빵이었던' 숯 덩어리들이었다.     






"아 탔다...." 나의 이 말을 듣고 앉아있던 아내가 쪼르르 달려와 전자레인지 앞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그리고 깨진 접시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고 있길래 "이미 이렇게 된 걸 어떡하겠어, 다시 밥 먹으러 가자."라고 말하니 돌아온 아내의 대답은,


잠깐 애도의 시간이 필요해
깨진 접시를 위한. 



깨져버린 접시의 역사는 이러하다. 우리가 결혼할 때 장모님께서 아내에게 신혼집에서 잘 살아라고 주신 접시였다. 접시가 깨지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은, 아내가 이 접시를 많이 아끼고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때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오랜 시간 동고동락한 바늘이 부려져 버려 슬퍼하던 한 조선시대 여인이 쓴 수필, 조침문(弔針文)이었다. 조침문을 읽으면서 당시 학문을 익히는 데 제한이 있던 여성이 어떻게 이런 우수한 문학적 표현을 할 수 있을까라고 감탄했었는데, 깨져버린 좋아하던 접시를 위해 애도의 시간을 갖는 아내의 모습에서 조침문의 작가의 제치와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고 엉뚱함에서 오는 아내의 귀여움이 내 마음을 강타했다. 


그렇다, 사소한 사물이더라도 아끼고 좋아하던 것을 잃어버리면 슬퍼하기 마련인데, 하물며 친한 사람, 소중한 사람과 이별하는 그 마음은 어떻겠는가? 슬퍼하는 사람을 비아냥 거리지 말자, 공감이 되지 않아 같이 슬퍼할 수 없는 마음이라면. 그저 조용히, 슬퍼하는 사람의 눈물이 그칠 때까지 조용히 옆에 있어주자. 그것만으로도 슬퍼하는 사람들에겐 충분한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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