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 다문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lleatriz Mar 29. 2024

아데나워와 젤렌스키, 그리고 JFK

봉쇄전략의 향방은?

2022년 2월 24일 “특수군사작전”을 목적으로 군을 투입한 푸틴의 러시아는, 2024년 3월 기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특수군사작전이 아닌, “전쟁”으로 간주하겠다고 원용하고 있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재선에 성공한 푸틴이 대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에게 정전협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넛지(nudge)를 제공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할 그 기회를 놓쳤다고(혹은 아직 남아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MAP(Membership Action Plan)을 통과해야만 가입할 수 있는 NATO에게 우크라이나를 가입시킬 의향은 존재하지 않아 왔고, 그 의지는 진행형일 가능성이 높다. 젤렌스키 또한 NATO의 통 큰 MAP 면제 제시에도 불구, 그들의 제의가 조건부적이고 불확실하다는 점을 짚어내 불만을 표한 점은 이를 반증할 것이다.

분명 전쟁 초반에는 러시아의 미흡했던 전투준비태세가 미디어를 통해 적나라하게 공개됐고, 이에 비해 키이우에서 탈출하지 않고 남은 젤렌스키의 리더십과 우크라이나의 선전이 빛을 발했던 순간도 있었다.

기독교 헤일로처럼 보이는 그 절묘한 위치를 엿볼 수 있다.

한편, 개전 초기 우크라이나에게 지지와 지원을 아낌없이 제공하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천명하던 많은 국가들(과 Pray for Ukraine을 열렬히 외치던 시민들)은, 어느새 그 지원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추세(그리고 전쟁이 지속되는 것에 대한 피로감)를(을) 가감 없이 보이는 중이다.

그리고 이 사례에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선도적인 조치를 취해온 미국이 가장 부합할 것이다. 근래 공화당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소극적 지지와 일부 민주당원의 동조는, 정당을 막론하고 미국 내부의 유권자들이 전쟁에 대한 피로감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반증할 것이다.

좌: 잘루즈니 총사령관, 우: 잘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 또한 군사적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대선을 치르기로 약속했음에도 불구, 자신의 정치적 목적으로 러시아가 점령지를 일부 탈환한 잘루즈니 총사령관을 해임하는 모습을 미뤄 봤을 때, 그를 성군(聖君)으로 거칠게 포장하기는 힘들 것이다.

나아가, 어떻게 해서라도 전쟁을 지속하겠다는 그의 모습에서, Heisbourg가 원용하는 아데나워는 발견하기 어렵다. 요컨대, 아데나워가 취한 접근법과 그의 귀환을 젤렌스키에게 원용하기에는 국내&국제정치적으로도 한계점이 존재하며, 무엇보다도, 둘을 절대로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

쾰른 시장 시절, (아데나워는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아데나워는 쾰른 시장일 적, 나치즘의 광폭행보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를 표했기도 했거니와, 기독교민주연합의 주요 창당 인사로서 전후 독일에 자신의 정치철학을 불어넣어 새로운 독일의 가치에 대한 지표를 제시했다. 그는 정당이 민주주의와 사회보수주의, 유럽 통합을 바탕으로 독일의 가까운 과거와 모든 유형의 전체주의를 거부하는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총리직을 역임할 때도, 그는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 겸손의 전략을 펼쳐 독일을 이끌어간다 (양차대전 패배를 인정하고, 연합국의 신뢰를 되찾고, 민주사회를 건설하고, 유럽의 역사적 분열을 뛰어넘는 유럽 연맹을 창설하는 것). 즉, 아데나워는 대내적으로는 가톨릭 신앙과 세계교회의 기독교적 가치,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맺은 안보를 동맹을 비롯해 서방과 형성한 연합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려 했다.

이 과정의 연장선 상에서 양차대전으로 인해 단절되다시피 한 프랑스-독일 간의 관계를 새로운 동반자적 관계로 재정립하자는 정치적 함의가 경제적 통합의 합의보다 더 큰 쉬망플랜(이후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ECSC)로 발전)이 1950년에 체결된다.

랑스에서 만난 아데나워(좌)와 드골(우)

그리고 1962년 샤를마뉴 대관식이 치러진 랑스에서 드골과 아데나워가 만나 양국의 관계 회복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한 점은, 기독교적, 역사적 컨텍스트와 기민련의 정체성이 조화를 극적으로 드러낸 상징적 사례일 것이다.

앙숙 간의 해우와 비전 제시에 대한 그의 정치적 역량을 차치하고서라도, 아데나워는 미국 봉쇄전략의 본격화 흐름에 올라타 독일의 전략을 잘 수립했기에 NATO에 편입됐고 나아가 통일까지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전략에는 겸손을 통해 대등한 지위를 확보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의 회고록에 적혀있듯,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NATO의 중요성의 부상과 함께 봉쇄전략의 구체화가 실현되던 와중, 독일약화정책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독일이 강성해지는 편이 이념전쟁 중인 미국에 유리했다.

아데나워는 총리를 역임하는 동안 일관되게 대서양 동맹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1955년 소련이 제의한 독일의 중립화와 통일 방안에 대한 소련의 제안에도, 대서양 연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당연히 당시 내각에서 소련의 제안이 유명무실하다는 점은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아데나워 내각은 (당시 기준 러시아 다음으로 인구가 가장 많았고, 철의 장막 최전선에 있는 서독의) 독일군 양성을 허용하는 유럽방위공동체 조약의 수정안을 마련했다. 그리고 독일이 유럽 및 대서양 동맹의 완전한 동반자로서 헌신하겠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막후의 노력도 기울였다.

취임연설 중인 JFK

한편, 겸손과 인내로 아데나워를 규정할 수 있다면, ‘황혼투쟁’의 케네디는 유연한 외교를 구사하길 원했다. 아데나워는 독일 역사상 최악의 시기에 총리직을 역임했고, 케네디는 미국의 힘과 ‘Whiz Kids’를 필두로 한 자신감이 최고조일 때 대통령이 되었다. 나아가 아데나워는 기독교적 전통 윤리관을 바탕으로 민주주의 가치를 재건할 최우선의 임무가 있던 반면, 미국의 역사적(이자 휘그적) 민주주의 가치와 최신의 과학과 계량으로 정치와 도덕 발전에 대한 신념을 확인하는 일에 자신에 찼다.

좌: JFK 미국 대통령, 우: 아데나워 독일 총리

그렇다면 오늘날 미국에 JFK 식 新봉쇄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곧 우크라이나를 포기하고 좀 더 다각적인 접근을 취해야만 한다는 은연중의 암시를 뜻하는 것은 아닐까? 사담이지만 당시 케네디 행정부의 자신감과 독일에게 기대한 외교적 유연성은 양국의 제휴가 삐걱거리도록 만들었다.

케네디에게는 핵전쟁이 터질 가능성을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완전히 없앤다는 목표가 있었다. 이를 추구하는 장기적인 여정에는 소련이 반드시 함께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데나워에게 미국 대통령의 이런 진술은 히틀러 치하의 위기를 딛고 일어나 만들어 낸 안정성과 견고성을 흔들 위험이 있었다.

통일재상 헬무트 콜

그럼에도 아데나워에게는 조국의 도덕적 물리적 붕괴를 직면하는 한편 분단을 감내하고 대서양 동반자 관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유럽의 질서를 구축할 의지가 있었고, 아데나워의 가치는 차후의 총리들(특히 헬무트 콜)에게 이어진다.

과연 젤렌스키에게(나아가 우크라이나에게) 이러한 용단을 과연 우리는 기대할 수 있을까? 그의 향방과 이후의 우크라이나 대통령들의 귀추가 주목된다. 나아가 냉전관계가 정점으로 치닫던 1950~60년대의 시대적 상황과도 다른 와중, 과연 JFK 식 21세기형 新봉쇄정책은 어떠한 모습을 지니게 될까..?


미흡한 장문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생각할 거리와 상상할 거리가 되기를 바라며.

Fine.


<읽은 문헌>

- François Heisbourg (2023) How to End a War: Some Historical Lessons for Ukraine, Survival, 65:4, 7-24

- Jonas J. Driedger & Mikhail Polianskii (2023) Utility-based predictions of military escalation: Why experts forecasted Russia would not invade Ukraine, Contemporary Security Policy, 44:4, 544-560

- Kseniya Oksamytna (2023) Imperialism, supremacy, and the Russian invasion of Ukraine, Contemporary Security Policy, 44:4, 497-512

- Max Bergmann, Michael Kimmage, Jeffrey Mankoff, and Maria Snegovaya. 2024. America’s New Twilight Struggle With Russia: To Prevail, Washington Must Revive Containment. March 6, 2024.

- Nien-Chung Chang-Liao (2023) The limits of strategic partnerships: Implications for China’s role in the Russia-Ukraine war, Contemporary Security Policy, 44:2, 226-247


매거진의 이전글 수업 간 받은 질문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