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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eatriz Jul 23. 2024

인간(人間) 헨리 A 키신저에 대한 소고(小考)VIII

시민적 인문주의자

IV. 나가며

중국과의 교통(交通)으로 정점을 찍은 키신저의 국무장관이자 국가안보보좌관 생활은 포드 부통령의 대통령 승계와 백악관 내부의 정치 갈등으로 막을 내린다.

한편, 아이러니와 역설을 인지하던 역사학자답게, (혹은 현실주의 외교로 데탕트를 배태했던 외교관답게) 커튼콜(curtain call)은 이르다. 죽(竹)과 철(鐵)의 장막을 찢던 키신저는 이제 스스로 만든 장막(1982년에 설립한 컨설팅회사 Kissinger Associates) 뒤에서 국제관계를 주도해 간다.

좌: 조지 슐츠, 우: 헨리 키신저

닉슨 행정부에서 인연을 맺고, 대서양연합(Atlantic Community)의 요체인 Pilgrims Society of Great Britain의 구성원이자, 레이건 행정부의 국무장관이 된 조지 슐츠는 백악관을 나온 키신저와 만남을 가지며 정기적으로 미중전략을 논한다 [1].

 대만 탈퇴와 중국 UN 가입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H.W. 부시는 아들 G.W. 부시까지 연이어 대통령에 앉혀, 왕조를 완성한다. 키신저는 이들의 객원인사로 발탁돼, 정기적인 제언을 목적으로 밀회를 가진다. 포르투나의 변심인지, 아니면  속 포르 투나에 올라탄 덕택에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비르투를 남용한 체사레 보르 자(이하 보르자)가 안되기 위해, 포르투나를 통제하기 위한 비르투를 세련해 실각 후에도 꾸준히 기용받을 수 있던 것인지는 오직 더 많은 문서 공개로 추론될 수 있을 것이다.

외교 최전선에서 활약하던 시절, 그를 보좌한 다수의 참모들은 키신저를 보르자라 여겼다. 보르자처럼 그는 자신의 비서관과 수행원에게 과한 엄밀성과 기민함을 요구했다. 다만 보르자와 달리 키신저는 포르투나의 변덕에 휩쓸리지 않고자 노력했다. 질곡(桎梏)의 서사 속에서 시간과 관습을 고려한 채, 공화주의 패러다임 속에서 (섭리(providence)에 의지한 채) 선택을 내리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좌: 엘리자베스 2세, 중: 아버지 부시, 우: 헨리 키신저

오히려 그는 버크가 미국 혁명에 대해 가치판단을 유보한 부분을 엮어내 영국 왕실과 미국 행정부 간 대서양관계를 재구축하고자 노력했다. 그런 의미에서 키신저는 리더를 위해 <군주론>을 헌정한 버크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좌: 헨리 키신저, 우: 오리아나 팔라치

키신저는 냉소적인 것처럼 보이는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공화주의로 묶이는 국가들의 연합과, 상업사회와의 공존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뇌했다. 그는 역사라는 시간의 흐름에서 비역사적인 자연상태로 도피하지 않았다. 비록 이런 모습이 오리아나 팔라치(Oriana  Fallaci)와의 인터뷰에서 본인 스스로를 영화배우 헨리 폰다(Henry Fonda)라 착각한다고 포장됐다.

다만 누군가의 보안관으로서든, 자기만족적(snobbish) 수사로서든, 뉴딜계획으로 한계에 다다르던 토지보유에 따른 시민의 덕성 함양을, 금태환 정지와 중국개방으로 상업 확대를 통한 예절(politeness) 함양과 중국 편입을 통한 주권 재편으로 패러다임의 확장 및 절충을 실천적으로 시도했다.

무엇보다 세계의 리더들과 “각별한 관계”를 다져왔다는 사실은 비서관과 기자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인후(仁厚)한 덕성(virtue)을 그들은 파악했음을 반증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일국(이스라엘, 로마, 아테네)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판도를 짜는데 유능했던 사람들인 모세, 로물루스, 테세우스를 이상적인 군주로 꼬집은 것처럼, 키신저도 직접 “친구”라 직접 언급한 대표적인 인물은 안와르 사다트, 대처, 그리고 리콴유가 있다.

누군가는 키신저를 표리부동이라 질타할 수도 있고, 추상적인 국익을 반증하기 위해 철저한 유물론자라 해석할 수도 있다. 다만 상기의 리더들 모두 공교롭게도 시간의 흐름 속에 놓인 특수한 정치체 속에서 국제사회라는 보편 속에 혼합정체를 어떻게 빚어낼 수 있을지 노력한 인물들이다.

대처는 고르바초프와 잠룡일 적부터 친분을 다져, 레이건에게 고르바초프와의 인연을 맺게 해, 끝이 안 보이던 냉전의 종식을 앞당겼다. 사다트는 키신저의 유대인이라는 접점을 셔틀외교로 활용해 골다 메이어와 함께 불가능할 것만 같은 감정의 골을 매웠다. 리콴유는 다민족이 단일 공통언어로 살아가는 싱가폴이란 도시를 무에서 창조해 냈다.

이들은 포콕이 말한 포르투나의 변덕에서 벗어나고자 개인의 자기완성을 위해 역설적이게도 집단의 공동선을 지상 목표로서 추구하는 덕성을 갖춘 시민 인문주의자적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전 세계라는 공화국을 유지하고자 각자의 지역(과 위치)에서 고군분투했다. 키신저 또한 <리더십>에서 이와 유사한 내용으로 이들을 평가하며 본인의 유작을 끝맺는다.

물론 키신저의 역사 속 자취가 곧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열린 질문으로 남겨놓을 수 있다. 그는 전간기(Inter-war Period)를 넘어, 본격적으로 팽창하는 국제사회 속에서 또 다른 고르디우스 매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구만 한 크기의 고르디우스 매듭에서 인간인 이상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키신저는 언제나 저서의 말미에 자신의 요지를 압축시킨 문장으로 글을 맺는다. 이에 박찬욱 감독의 <동조자 (The Sympathizer)> 의 작중 대사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전형적인 베트남인과 달리 벽안(碧眼)에 동양인의 얼굴로 미국에서 유학한 주인공 호아 수안데는 북베트남을 지지함과 동시에 남베트남과 CIA의 비밀경찰로 활동하며 북베트남으로 정보를 반출하는 임무를 베트남과 미국에서 수행한다.

자신은 동양인인가? 서양인인가? 개인주의적인가? 집단주의적인가? 자본주의자인가? 공산주의자인가? 구정공세를 피해 미국으로 입국한 그는 끊임없이 무엇이 국익을 위한 것인지 고뇌한다.

그와중, 소싯적 동년배들에게 혼외자이자 혼혈아라 멸시당하던 자신을 위로해 준 어머니의 한마디에 (찰나의 순간이지만) 구원받게 된다. “넌 어떤 것의 반절이 아닌, 모든 것의 갑절이다”.



[1] 같은 협회(society) 구성원이자 1980년대 영국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도 키신저를 비정기적으로 만나 조언을 구했다 (Kissinger, 2023b, pp. 425-514)


- Kissinger, Henry A. 2023b. 서종민 역. 『헨리 키신저 리더십』 서울: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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