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아벨의 제물을 받되, 카인의 것은 그러지 아니한 점에서 카인은 아벨을 살해하게 된다. 이는 인류 최초의 살인이었다. 카인은 신의 낙인이 찍힌 채(속죄의 의미로서든 죄악의 의미로서든) 떠돌아 살게 될 것이라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놋(떠돌이 삶)이라는 도시를 건설하면서 사람들 속에 녹아들어 살게 된다. 이후 카인의 후손은 만인의 구심점과 같았던 바벨탑을 건설하고, 사람들은 흩어지게 되는 또 하나의 역설을 배태하게 된다.
신화적 요소와 함께 핵심만을 내포한 서사인 성서 속 창세기는 무수한 해석이 창발 될 소지가 있다. 한편, <영원한 평화>를 집필한 칸트는 어쩌면 아벨과 카인의 이야기에서 카인이 낙담하지 말고, 부조리함에도 살아나가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는 것이 아닐까?
다시말해 칸트는 카인의 후예인(이자 홉스적 자연상태를 전제로 한) 우리들이 원한과 용서의 순환의 과정을 통해 항구적인 평화를 지향한 것이 아닐까? 부조리하고 고통은 이미 있는 세상에 우리가 들어왔으니(즉 낙원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분별하는 과실을 먹은 후로 인간은 현세에 나왔으니), 이를 통해 성숙해져서 함께 그 고통을 넘기기를 칸트는 바라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칸트의 인생 말기에 집필된(이자 그의 철학이 만개한) <영원한 평화>를 읽어보면, 우리가 익히 몽상가적이며 허상과 같은 이성과 합리만을 통한 공과국과 연방 건설을 기대한 칸트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는 가능한 범위에서의 연방 실현을 도모하고자 한다.
(사담이지만 상기의 <영원한 평화>의 부록에는 국제연맹과 국제연합의 헌장이 함께 수록돼 있다. <영원한 평화>를 읽은 후 각 헌장을 읽어보면 칸트의 연방에 대한 구상은 미국의 연방 보다는 약하지만 국제연맹보다는 강한 어딘가로 현현되고 있는 중인거만 같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칸트가 신학적인 요소를 내포했는지의 여부는 분분하다. 다만, 그의 글에서 피어나는 이성과 합리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점과, 항구적 평화를 보증해 주는 것은 자연(이자 섭리)에 역점을 두는 점, 정치적 동물의 정치적 최고선으로서 연방체제를 통한 항구적 평화의 달성(특히 확정 2와 3조 항의 경우[1])은 바벨탑의 이야기가 꾸준히 연상된다. 어쩌면 이런 면에서 그는 기독교적인 사고를 이성과 합리를 통해 계몽이라는 이름으로 변화시키고자 한 것이 아닐까..?
단문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생각할 거리와 상상할 거리가 되기를 바라며.
Fine.
[1] 이제 지구상의 민족들 사이에 일단 전반적으로 펼쳐진 (좀 더 긴밀하든 좀 더 느슨하든 간에) 교제와 함께, 지구상의 한 곳에서의 권리침해가 모든 곳에서 느껴질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세계시민법이라는 이념은 더 이상 공상적이고 과장된 법의 표상방식이 아니라, 공적인 인권[인간의 권리] 일반을 위한, 그리하여 영원한 평화를 위한, 국가법과 국제법의 불문 법전의 필수적인 보완이다. – 칸트 <영원한 평화> 백종현 역. 아카넷 p.137
<읽은 문헌>
- 칸트 <영원한 평화> (백종현 역, 아카넷)
- I. Kant, “Idea for a Universal History with a Cosmopolitan Purpose” (1784), in Kant: Political Writings , ed. Reiss, pp. 41-53.
- I. Kant, “Toward Perpetual Peace” (1795) and the sections “International Right” and “Cosmopolitan Right” in Metaphysics of Morals (1797), both in Kant: Practical Philosophy , ed. Mary Gregor, pp 311-351 and 482-92
- Pangle, Thomas & Peter Ahrensdorf, Justice Among Nations: On the Moral Basis of Power and Peace (University Press of Kansas, 1999),Ch. 6 (pp. 190-209)
- Tuck, Richard. The Rights of War and Peace: Political Thought and the International Order from Grotius to Kant (Oxford, 1999), Ch. 7 (pp. 207-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