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4] 단어가 주는 한정성

부제: 모르는 걸 알게 된다는 것

by 설원

나는 표현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다. 표현이 풍부하지 않다는 의미는 다양하게 혹은 다채롭게 말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건 음식을 먹을 때나 음료를 마실 때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맛을 표현할 때는 맛있다. 달달하다. 맵다. 짜다 등을 하는 건 가능하지만, 다르게 표현하는 걸 잘못한다. 그렇기에 음식/음료의 맛을 다양하고 다채롭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1.카이막.jpg


예전에 예신과 이태원을 지나가다가 터키 베이커리였던 알페도에 먹게 된 "카이막"이라는 메뉴가 있다. 이때 들어가게 되었던 계기도 역시 바로 '단어가 주는 한정성' 때문이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라는 프로의 터키 편에서 백종원 선생님께서 "천상의 맛"이라고 추천하셨던 메뉴였다. (실제 이태원 알페도 카페에서도 그 문구를 활용해서 홍보를 한다.)


"천상의 맛"이라니, 기본적인 맛 표현만 할 줄 아는 나에게 굉장히 신선한 느낌의 이미지였다. 천상의 맛으로 표현했는데 궁금해서 먹어볼 수밖에 없었달까(다만, 실제 먹어본 후기로는 천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유의 부드러움과 꿀을 찍어먹는 빵..?) 이렇게 맛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 바로 '예신'이었다. 정확하게 예신은 맛 표현을 다채롭게 한다기보다는 유사한 맛을 잘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쉽게 예를 들어보면, 같은 초콜릿을 먹어도 나는 '달다'라고 생각하고 말을 한다면 예신은 "페레로 로쉐"라던지, "카카오 99%"'라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신기한 건 그 말을 예신에게 들었을 때부터이다. 그 말을 듣고 나서는 내가 그 초콜릿을 먹을 때 "페레로 로쉐"나, "카카오 99%"처럼 맛을 한정적으로 느끼게 된다. 어쩌면 이런 게 말이나 단어가 주는 한정성이 아닐까? 예신과는 같이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것, 모르는 것들을 알려줘서 놀랍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가 깨닫기도 전에 나에게 이미지를 심어줘버리니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도 들으면서 그렇게 한정된다는 게 때로는 무섭기도 하다.


오늘의 작가 연습,


S#1. 서울의 호텔 식당 안(밤)

멋있는 야경에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한 식당.

다양한 곳에서 와인잔을 부딪치며 대화를 하고 있고,

전망이 좋은 테이블에서 음식을 다 먹고 디저트를 기다리고 있는 예랑과 예신.

마주 보고 앉아서 대화하는데, 직원 분이 초콜릿 디저트를 테이블 위에 놓는다.


직원: (가져온 초콜릿을 가리키며)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최고급 초콜릿으로 만든 디저트입니다.

(초콜릿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예랑과 예신)

직원: (설명을 마무리하며) 맛있게 드시고 필요하신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간단하게 목례하고 사라진다)

예랑: (동그란 초콜릿 디저트를 입안에 넣고) 아몬드랑 초콜릿이네, 생각보다 달다

예신: (같은 걸 먹으면서 입안에서 여러 번 초콜릿을 움직이더니) 뭔지 알겠다, 페레로 로쉐랑 비슷한 맛이네

예랑: (다시 한번 초콜릿 디저트를 먹더니, 고개를 끄떡이며) 진짜네, 어디서 먹어 본 맛인 거 같더니 페레로 로쉐같아. (웃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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