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축복과 저주(13)
당진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진 국도를 따라 차로 20분을 달려가면 낮은 구릉지를 지나 드넓은 하천이 펼쳐졌다. 산과 들을 가로지르는 하천의 경계를 따라 10분을 더 달려가면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주택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토착민들의 수수한 농가주택과 외지인들의 아름다운 전원주택이 어우러져 있는 마을은 여느 시골의 풍경과 같았지만,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과는 멀리 떨어져 외롭게 자리잡은 단층 주택 하나가 유독 눈에 띄었다.
별장처럼 보이는 모던한 주택의 외관은 그리 뛰어나거나 특색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지는 것은 주변으로 펼쳐진 수려한 풍광 때문이었다. 집 앞으로 유유히 흐르는 하천길을 따라 이팝나무가 열을 맞춰 수백보나 펼쳐져 있는 풍경은 소문난 벗꽃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만큼 빼어난 것이었다. 이런 풍경을 거실에서 바라보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이곳은 김학이라는 이름난 화백(畫伯)이 말년을 보낸 집이었다.
실제로 김화백은 거실에서 바라 본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었는데, 그것이 김화백의 유작이 되었다. 그가 마지막에 남긴 풍경화는 그가 가진 명성에 비해 사실 그렇게 뛰어난 작품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에게 조명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그가 원래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화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김화백은 비현실적인 인물화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인물의 표정을 극단적으로 과장되게 표현하여 인간 내면의 심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그의 작품이 가진 특징이었다. 헌데 그 주제가 주로 고통과 슬픔, 분노와 공포 등의 어두운 감정에 치우치다 보니 그의 작품이 너무 괴이하고 불쾌하다 평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반면, 새로운 표현주의 작가가 탄생했다며 그를 극찬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것이 그의 내면속 숨겨진 어둠을 끌어내는데 크게 작용하였다. 신선함과 불쾌함의 선상에서 아슬아슬한 외줄을 타던 그의 작품은 어느 순간 줄을 놓치고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의 관념적 표상이 이세계(異世界)에 다다른 것인지, 기괴하기가 범접 할 수 없는 그림들을 그려내기 시작한 것이다. 스스로 목을 자르는 남자, 엄마의 젖을 뜯어먹는 아기, 불 속에서 광란의 춤을 추는 여자, 한 개의 눈과 세 개의 입을 가진 사람 등등, 악마주의적 색채가 드러나자 그의 불안한 정신세계를 심각하게 걱정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그가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들까지 난무했다. 그 이유가 어떻든 그는 미치광이 화가라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그는 사생활까지 파헤쳐 지며 수난을 당했는데, 이때 밝혀진 사실은 그가 심한 여성편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 결혼생활을 2년만에 마감하고서 이후로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집과 작업실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 여성들 중 상당수가 성매매를 직업으로 하는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이 때문에 그를 향한 비난의 수위는 극도로 치달았고 여성단체로부터의 고발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를 위해 증언에 나선 여성들 덕분이었다. 그에 대한 진술은 대부분 비슷하였다.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는 조금 특이한 면을 가지고 있을 뿐 확실히 좋은 사람이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고 도움이 필요할 뿐이다 등등, 그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는 자신의 거처로 여자를 불러 돈을 먼저 지불했다. 그리고 10분동안 대화를 나누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그가 할 일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다음으로 여자의 옷을 벗게 한 뒤 침대에 눕게 했다. 그리고 여자의 몸에 가짜 피를 마구잡이로 뿌렸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피를 뒤집어 쓴 여자의 모습을 감상했을 뿐이었다. 그 시간이 대략 30분에서 한시간 사이였는데, 그 전이라도 여자가 불안감을 느끼면 그는 감상을 멈추고 여자를 안심시킨 뒤 돌아가게 하였다. 이와는 상반된 상황도 연출되었는데, 피를 뒤집어 쓴 여자가 성적 흥분이 고조되어 그를 유혹하기 위해 자위를 했는데도 그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지켜만 볼 뿐이었다.
위험한 정신세계를 가진 예술계의 이단아, 김학은 49세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고향 땅으로 내려와 홀로 생활한지 반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삶의 고통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던 그는 실제 삶 속에서도 핏빛 무대를 갈망했던 모양이다. 새롭게 지은 별장을 그 무대로 사용한 그는 직접 주인공이 되었고 거실 바닥을 도화지로 삼아 자신의 피를 이용해 거대한 날개를 그렸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운 채 영원히 눈을 감았다.
그가 정말로 죽음의 무대를 꾸몄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은 CCTV의 위치 때문에 확실해 졌다. 거실 천장 가운데에 달린 CCTV가 오직 바닥만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화면이 유출되어 세간에 떠돌았는데 그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왼손으로 피를 쏟아내며 오른손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그 모습이 평온하다 못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죽음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를 보며 사람들은 사탄이나 악마, 죽음의 천사로 묘사했다. 그렇게 그가 던져놓은 죽음의 충격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한동안 들썩거렸다.
김학은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하나 있었다. 그가 생을 마감했을 당시 대학생이었던 딸에게 그의 집과 재산이 유산으로 남겨졌다. 김학의 딸은 그가 피로 물들여 놓은 별장을 처분하려 했지만 흉흉한 소문으로 인해 아무도 찾지 않았다. 그렇게 3년간 방치되었던 별장을 찾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도순이었다.
춘광의 부모가 죽고 난 뒤, 도순은 세상을 속이기 위한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그동안은 무당 행세를 하며 작은 일들을 맡아 실력을 쌓았고, 무당에 대한 이해와 연기력이 완숙 단계에 들어서자 본격적으로 큰 돈을 벌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신당(神堂)이 필요했다. 집에서 적당한 거리에 있는 건물들을 알아보던 도순은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랫동안 팔리지 않은 집 한 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동산업자와 함께 건물을 찾은 그녀는 멋진 풍경을 배경에 둔 번듯한 주택이 왜 팔리지 않고 있는지 의아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부동산업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을 테지만 그녀는 사기를 치는데에 도가 튼 사람이었다. 타고난 촉이 발동한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집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느닷없이 호통을 쳤다. “귀신이구나!” 가방에서 방울을 꺼내 든 그녀는 미친사람처럼 집 주위를 돌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다 집 앞 마당에서 뒤로 벌러덩 넘어지더니 개거품을 물고 사지를 떨어댔다. 그 모습을 지켜 본 늙은 부동산업자는 혼비백산하여 혼자 차를 타고 달아나 버렸다.
도순이 전화를 걸자 영길이 그녀를 데리러 왔다. 도순이 영길에게 대강의 이야기를 해주자 그는 척하니 알아 듣고는 혼자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동안 뒷조사를 마친 영길은 도순에게 자세한 계획을 말해 주었고 둘은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도순은 김학의 딸, 김지예에게 연락해 아버지의 혼이 또 다른 죽음을 찾아 이승을 헤메고 있다며 당신 뿐 아니라 당신의 자식까지 위험하다고 알렸다. 당시 임신중이었던 김지예는 깜짝 놀라 남편과 함께 도순을 찾아왔다. 도순은 마지 못하는 척 그들을 따라 별장을 찾았다. 그녀는 김학이 죽음을 맞이한 거실에 서서 무령을 흔들며 김학의 혼을 불러내는 척 하였다. 잠시 후 그녀는 입에 물고 있던 가짜 피를 터뜨리며 피를 쏟는 연기를 하였다. 그리고 품안에 준비해 두었던 황산을 몰래 핏물 위에 떨구었다. 그녀가 게워낸 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이런 광경을 처음 목격한 이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순은 김학의 혼과 대화를 나누고 그를 꾸짖는 모습까지 보여 주었다. 이미 뒷조사를 마친 도순이었기에 김지예의 관한 이야기를 시의적절하게 던져가며 연기를 펼치자 김지예와 그녀의 남편은 금세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악귀로세. 지독한 악귀로세. 당신 아버지는 죽음의 신이 되었소. 끝없이 죽음을 불러올 것이오. 이 집이 팔리지 않은 것이 다행인 줄 아시오. 누구든 이 집에 들어왔다가는 피가 말라 죽어버릴 것이오. 그렇게 몇 사람의 혼을 잡아먹고 힘을 기른 악귀는 이 곳을 벗어날 것이오. 그리고 자신의 피가 흐르는 혈육들을 찾아갈 것이오.”
김지예는 도순에게 매달려 도와달라 빌었다.
“악귀를 물리친다는 것은 당신 아버지의 혼이 소멸하게 된다는 뜻이오. 그것은 하늘님의 품에 들지 못한다는 말이고 다음 생도 없다는 뜻이오.”
지예는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물었다.
“아직 사람을 잡아먹은 것은 아니니 기회는 있소.”
도순은 김학의 혼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에 바로 다음날이 되어 김지예는 다시 별장을 찾았다. 이번에는 도순과 영길이 함께였다. 도순은 거실 가운데에 영길을 앉혀놓고 소혼식을 준비했다. 그동안 김지예는 거실 창 앞에 이젤과 캔버스를 놓고 그림을 그릴 준비를 했다. 도순이 준비가 다 되었음을 알리자 김지예는 연필을 들었다.
김지예는 거실밖으로 보이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그녀는 미술 전공으로 다양한 수상경력이 있는 실력파였다. 풍경화 하나 쯤 그려내는 것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이런 으스스한 분위기에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아버지를 위해 그런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손에서 자란 그녀는 살아생전 아버지와는 몇 번 만난적도 없었다. 물론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 받았지만 그녀의 인생을 뒤바꿔 놓을 만큼 큰 액수는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의 가족과 뱃속의 아이만을 생각하며 풍경화를 그려나갔다. 뒤에서는 무당이 아버지의 혼을 불러내고 있었다. 무당의 방울소리가 들리고 남자의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지만 절대 뒤돌아 보지 않았다. 무당이 당부한 것이었다. 그녀가 해야할 일은 빠르게 그림을 완성시키는 것 뿐이었다. 그 다음은 무당이 그림 안에 아버지의 혼을 봉인할 것이었다.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무당이 보여준 신기에 가까운 일들이 고민을 덜어주었다. 그녀는 이마에 땀을 맺혀가며 그림을 완성시켜 나갔다.
두 시간이 흐른 뒤, 세 사람은 거실 벽에 걸린 풍경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 그렸군요. 이제 저 그림을 아버지의 유작으로 발표하세요. 세상 사람들이 아버지의 평온을 빌어줄 거요.”
도순의 말에 김지예는 알겠다 답하였다. 영길이 끼어들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십년동안은 이 그림을 지켜야 하죠. 시주의 아버님께서는 이 그림속에서 평화를 찾게 될 겁니다.”
김지예는 걱정스런 얼굴로 자신이 지켜야 하냐며 물었다. 영길이 웃으며 답했다.
“도력(道力)이 높으신 분들이어야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수양이 깊은 고승들이나 저희 신녀님 같이 영험한 능력을 가진 분들 말이에요.”
영길은 고민을 하는 김지예를 보며 도순에게 부탁을 해보라며 조용히 바람을 넣었다. 그러자 김지예는 겸연한 표정을 지으며 도순에게 부탁을 해보았다. 그러나 도순은 단칼에 거절했다.
“나도 할 일이 많은데 어찌 이곳에서 십년을 보내란 말이오.”
“신당을 이곳으로 옮기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이 집의 주인이 따로 있는데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이오?”
영길이 난감한 척 고민하더니 말했다.
“시주께서 이 집을 팔기를 원한다고 들었습니다. 얼마에 내놓으신 겁니까?”
김지예가 금액을 말해주자 도순이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
“신밥을 빌어먹는 이가 그런 큰 돈이 어디있단 말이오?”
영길은 그 사람좋은 얼굴로 김지예를 설득했다.
“저희 신녀님께서는 정말로 세상을 위한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시주께서는 세상에 좋은 일을 한다 치고 이 집을 싸게 넘기실 생각은 없습니까? 그것이 시주 가족들의 안녕까지도 관계된 일이니 잘 생각해 보십시오.”
김지예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자신의 가족을 위하는 일이었고, 아버지에 대한 정(情)도 집에 대한 미련도 없었다. 그녀가 도순에게 얼마면 되겠냐 물었지만 대답은 영길이 하였다.
“반의 반값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부족하다면 제가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도순은 영길이 짜 준 대본대로 움직였고, 그 결과 김학의 별장을 말도 안되는 가격에 매입할 수 있었다. 김지예는 서울로 올라가 도순의 말을 따랐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아버지의 유작으로 발표한 것이다. 도순의 말대로였다. 사람들은 김학이 죽음을 앞두고서 마음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많은 사람들이 김학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별 탈 없이 일이 끝난 것을 보며 김지예는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었던 별장에 2미터 높이의 담장이 둘러쳐졌다. 이곳에 도순을 만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었기에 취한 조치였다. 집안 곳곳을 뜯어고친 도순은 그곳에 화려하게 신당을 차려놓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화려한 말솜씨로 그럴듯한 무당 행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일선당(一仙堂)
하얗게 덧칠한 합판 위에 먹색으로 휘갈긴 글씨가 휘황찬란했다. 금색의 연꽃무늬로 테두리 장식을 한 현판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현판 아래 출입문은 일반적인 철제 대문과 다를 바 없었지만 커다란 팻말이 대문 한쪽에 세로로 붙어 있었다.
허기평심(虛氣平心)
기를 가라앉히고 마음을 평온히 하라.
나사못으로 고정된 팻말이 우드득 뜯겨나갔다. 그리고 곧장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염병하고 있네!”
거친 말을 뱉어낸 사내는 영배의 아버지, 손해식이었다. 키는 그리 큰 편이 아니었지만 적당히 살이 붙은 건강한 몸을 갖고 있던 그는 한달 사이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는지 몰라볼 정도로 핼쑥해져 있었다. 하지만 성난 기운을 뿜어내는 그의 표정에는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영배의 상을 치뤄내고 사생결단을 내기 위해 곧바로 이곳으로 들이닥친 것이었다. 그의 옆에는 초로의 노인이 서 있었다. 그에게 용한 무당이 있다며 도순을 소개시켜 준 마을 이장이었다. 이장은 아무말도 못하고 그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가 대문 위에 걸린 현판까지 뜯어내려 손을 뻗었지만 가까스로 손이 닿지 않았다.
쿵쿵쿵. 쿵쿵쿵. 그는 대문을 사납게 두드렸다. 잠시 후 안에서 영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문 열어!”
다짜고짜 터져나온 고함소리에도 영길은 태연하게 말했다.
“누구신데 이러십니까?”
“그 잘난 무당년 얼굴 좀 보러 왔으니까 문 열어!”
영길은 이미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대꾸했다. 집안에서 바삐 움직이는 도순을 위해 시간을 벌어주기 위함이었다.
“지금은 뵐 수 없습니다. 급한 용무가 아니면 돌아가세요.”
“뭐? 급한 용무? 사기친 년놈들 잡으러 왔는데 이보다 급한 용무가 어디 있어?”
문이 열리면 곧바로 드잡이질부터 시작될 것 같았다. 그러니 대문 안쪽에서는 열어줄 생각이 없다는 듯 작은 기척도 없었다. 그러자 손해식이 다시 고함을 질렀다.
“내 귀한 아들래미 죽여놓고 뭐하냐?”
영길이 크게 한숨을 쉬며 안타까운 듯 말했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래? 그런데 코빼기도 안보였단 말이냐?”
“사정이 있었습니다.”
쾅! 손해식이 대문을 발로 차며 말했다.
“무슨 사정? 개소리하지 말고 문 열어!”
“오늘은 그냥 돌아…”
영길의 말을 끊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여보내시게.”
도순이었다. 현관 앞에 서 있는 그녀는 영길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영길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대문을 열어 주었다. 대문은 안쪽으로 벌컥 열어 젖혀졌고 그 바람에 영길은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안으로 들어선 손해식이 넘어진 영길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하지만 별다른 말없이 눈길을 돌려 도순을 찾았다. 이미 집안으로 들어간 도순은 보이지 않았기에 그는 성큼성큼 걸어 열려진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 안쪽에 몇 켤레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는 신발을 벗을 생각이 없었다. 곧바로 중문을 연 그는 환하게 밝혀진 집안으로 들어섰다.
“고생하셨소.”
도순이 수척한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고생?!”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냅다 도순에게 다가가 멱살을 붙잡았다.
“그 가증스런 입에서 잘도 그딴 소리가 나오는 구나.”
그는 당장에라도 도순을 때려 눕힐 기세를 보였지만 뒤에서 들려온 이장의 목소리에 주의가 흐트러졌다.
“잠깐만, 해식이. 저것 좀 보게나.”
이장을 향해 고개를 돌리던 그는 차가워진 표정으로 눈쌀을 찌푸렸다. 거실 한 쪽에 펼쳐져 있는 광경 때문이었다.
천장에 빼곡하게 달려있는 연등이 불을 밝히는 가운데, 구름을 타는 선녀를 중심으로 양 옆에 산신과 칠성탱화가 한 쪽 벽면에 그려져 있었고, 그 아래에 허리높이까지 오는 단상이 놓여 있었다. 단상의 중앙에는 1미터 높이의 석가모니와 천수관음의 불상이 모셔져 있었고 그 주위에 각종 법기와 무구가 놓여 있었다. 이곳은 무녀의 신당이었기에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광경이었다. 문제는 단상 아래에 넓은 교자상이 펼쳐져 있었다는 것이다. 교자상 위에는 사과와 배, 밤과 대추, 고기전과 생선, 약과와 떡이 올라가 있었고, 그 앞쪽에는 쌀밥이 가득 담긴 공기에 숟가락이 꼽혀 있었다. 누가 보아도 제삿상이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 놓인 신위에 낯익은 이름이 쓰여 있었다. 손영배.
손해식은 분기탱천하였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쇼라도 해보겠다는 거야?”
도순은 침착하게 말을 받았다.
“그렇게 보인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내가 당신을 불렀소?”
그녀의 멱살을 잡은 두 손이 부르르 떨려왔을 뿐 어떤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도순이 숙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켜주지 못했으니 좋은 곳이라도 갈 수 있게 빌어줘야지.”
손해식은 도순의 멱살을 잡은 두 손을 놓았다. 고개를 푹 숙인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제삿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상을 뒤엎어 버렸다. 우당탕 쏟아진 음식과 집기들이 바닥을 어지럽혔다. 조용히 들어와 지켜보고 있던 영길이 나서려 했지만 도순이 손짓으로 말렸다.
“살 수 있다면서? 살려준다면서?”
울분섞인 목소리로 외치는 손해식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였고, 한편으로는 당장이라도 흉기를 꺼내 달려들 듯 위험해 보였다. 그러나 누구 하나 쉽게 나설 수 없었다. 하나뿐인 자식을 잃은 아비의 심정은 이 자리의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도순이 처량한 얼굴로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해서 속이 좀 풀린다면 다 때려부수시오. 선녀님도 장군님도 천신께서도 다 이해하실거요.”
손해식의 눈빛이 흔들렸다. 도순이 차라리 역정이라도 내고 뻔뻔하게 나오길 바랬지만 그녀의 태도는 너무나 초연했다. 그의 내적 갈등을 눈치 챈 도순이 무릎을 꺾고 풀썩 주저 앉으며 한탄을 하였다.
“전부 내 잘못이네. 내가 막지 못했어.”
시뻘개진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손해식은 갈라지는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이런 씨벌! 잘못을 알면서 여기서 이짓거리를 하고 있어? 우리 영배 썩은 몸뚱이 앞에 와서 무릎이라도 꿇었어야 맞는 거 아냐?”
“나도 사정이 있었네.”
“사정? 아까부터 사정 사정 하는데. 지미럴, 뭔 놈의 사정이길래 사람 뒤지게 해놓고 입을 싹 닫게 만들어.”
눈물을 뿌리며 격정적인 감정을 토해내는 그의 모습에 분위기는 한없이 무거워졌다. 도순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윤기하나 없는 칙칙한 피부와 헝클어진 머리, 검푸른 다크서클에 퀭한 눈이 썩어 문드러진 그의 속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도순이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사정은 말해줄 수 없네.”
그가 눈물을 훔치며 소리쳤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사정은 무슨 사정. 네 년놈들, 내가 모를 줄 알아? 그 간사한 혓바닥으로 사람들 등골 빼먹는 짓하고 다니는 걸!”
영길이 조용히 끼어들었다.
“말이 너무 심합니다."
“심하긴 뭐가 심해!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치는 네 놈들이 할 말이야?”
그의 흥분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도순이 결심한 듯 큰 숨을 내쉬며 물었다.
“꼭 그 사정을 알아야겠소?”
그가 코웃음을 치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래. 말이나 해봐라. 별 시덥잖은 얘기면 오늘 여기서 다같이 뒤져버릴테니까 각오는 하고.”
영길이 짐짓 심각한 얼굴을 하고서 도순을 말렸다.
“안 됩니다. 잘 못 했다간 마을 사람들이 위험해 집니다.”
순간 이장이 놀라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마을 사람들을 운운하자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영길은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애가 탄 이장이 재차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위험해 진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도순이 영길을 향해 눈길을 주며 담담하게 말했다.
“어차피 이 분들과 상의를 해야하는 일이네. 그리고 나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야.”
영길이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가련한 표정으로 바닥에 앉아 있는 도순을 뒤로 하고서 영길은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따라들 오십시오.”
손해식이 못미더운 표정으로 영길을 따라나섰다. 그 뒤를 이장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따랐다. 그렇게 그들이 지나쳐 가자 도순의 눈이 음흉하게 빛을 발했다.
영길은 집 안쪽의 방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여깁니다.”
창밖으로 뒷마당이 내다 보이는 방 안은 창고로 사용하는 듯 각종 법기와 무구가 한쪽 벽에 설치된 조립식 선반 위에 정리되어 있었고, 창문 아래에 공간에는 생수와 쌀, 생활용품 등이 쌓여 있었다. 반대쪽 벽에는 색색의 한복 몇개와 구군복, 쾌자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리고 제일 안쪽 벽에는 붉은색 예복을 걸친 유금필 장군의 영정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별로 특이할 것 없는 방 안을 보며 이장이 물었다.
“이 방에 뭐가 있다는 거요?”
영길이 뜸을 들이며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허튼 수작은 때려치우라는 듯 손해식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영길은 말없이 고개를 돌려 유금필 장군의 영정 앞으로 다가갔다. 벽면의 3분의 1을 차지한 영정에 그가 손을 올려 왼쪽으로 밀었다. 영정은 안쪽으로 통하는 문이었던 듯 스르르 밀려났다. 곧바로 향 냄새와 함께 붉은 조명이 새어 나왔다. 문이 활짝 열리자 드러난 작은 공간에는 침상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을 마주한 손해식과 이장은 실색하였다.
“사..살아 있는거요?”
이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침상에 눕혀져 있는 그것은 시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도 아주 심한 중병을 앓다 간 모습이었다. 깡마른 몸에 거무칙칙한 얼굴과 탄력하나 없는 피부에 거뭇거뭇 기이하게 퍼져있는 반점들, 두 눈을 감고 있는 그것은 누가 보아도 산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간신히 숨은 붙어 있습니다.”
영길이 공허한 음성으로 말하자 이장이 나무랐다.
“헌데 병원에 안 가고 여기서 뭐하는 것이요?”
뒤에서 나타난 도순이 무기력한 목소리로 말했다.
“병원에 가도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그녀는 슬픈 눈을 떨구며 체념한 얼굴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향해 이장이 노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여기서 그냥 죽게 내버려 두겠다는거요?”
그녀는 더욱더 가련한 눈빛으로 말했다.
“자세히 보십시오. 누구인지.”
이장은 문 너머 작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상에 누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이내 이장의 입에서 장탄식이 터져나왔다.
“춘광이, 춘광이 아닌가?!”
도순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맞습니다. 제 남편이지요.”
손해식이 도순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대체 왜 이러고 있는거요?”
도순이 슬픈 눈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생각해 보시오. 무슨 병에 걸리면 사람이 일주일만에 저리 될 수 있는지.”
그렇다. 정확히 일주일 전, 굿판에서 보았던 춘광의 얼굴은, 심한 감기를 앓는 사람처럼 혈색이 조금 안좋았을 뿐이었다. 이 자리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이토록 끔찍하게 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깜짝 놀래키기 위한 분장이라 해도 믿어지지 않을 판이었다. 특히나 손해식은 영배가 떠올라 더욱 더 가슴이 쓰려오는 것을 느꼈다. 누구도 대답을 꺼내지 못하자 도순이 장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회한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알기로 그런 병은 없소. 그 날, 그 놈을 잘못 건드린거야.”
도순과 사생결단을 내겠다며 찾아 온 손해식과 그런 그가 걱정되어 따라나선 이장. 두 사람의 얼굴은 서서히 심각함으로 물들어갔다. 결국 도순의 감쪽같은 연기에 또 한번 속아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춘광은 무엇이 그리 억울한지 며칠 째 삶의 끝자락을 붙잡고 놓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미 산송장이었다. 말을 하고 싶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손끝 하나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타는듯한 갈증이 그를 괴롭혔고 피부를 갉아먹는 듯한 통증과 가려움이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그는 보고싶은 얼굴들을 떠올렸다. 그의 두 눈으로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얼굴이, 어쩐 일인지 생생하게 떠올랐다. 웃고 있는 연희와 민철의 얼굴이었다. 죽음이 주는 선물인걸까. 그는 마지막으로 연희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 순수하고 맑은 목소리를.
춘광(春光), 봄날의 햇살은 천천히 사그라 들어갔다. 숨막힐 듯한 쓸쓸함으로 가득 찬… 퀴퀴함을 감추려는 향 냄새가 진동하는… 도순과 영길이 알몸으로 뒹굴었던 작은 골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