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축복과 저주(14)
김화백의 딸, 김지예의 풍경화가 걸린 거실 벽 아래에 네 사람이 둘러 앉아 있었다. 조금 전 손해식이 엎어 버렸던 영배의 제삿상은 대충 정리가 되어 있었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오?”
이장이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묻자 도순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손해식을 보며 말했다.
“영배의 일은 미안하게 됐소. 하지만 내 남편도 저리 되었으니 인과응보인 게지.”
손해식은 마뜩찮은 표정이었다. 도순의 말이 은근히 영배를 탓하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따지려 들지는 않았다.
도순의 말이 이어졌다.
“중요한 건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거요.”
이장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시작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도순이 가늘게 뜬 눈으로 이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을 사람들 다 죽어 나갈 겁니다.”
“뭐, 뭐요?”
이장은 물론 손해식도 놀란 눈으로 도순을 바라보았다. 도순은 일부러 뜸을 들이며 한참이나 입을 열지 않았다. 마을 이야기에 예민해진 이장이 참지 못하고 그녀를 채근했다.
“빨리 좀 말해주시오.”
영길이 끼어들어 준비한 이야기를 읊어댔다.
“그 날, 영배한테 들어가 있던 놈은 그냥 잡귀가 아니었습니다. 그 때 신녀께서도 보통놈이 아니라고 했었죠. 역귀입니다. 역병을 몰고와 인간에게 퍼뜨리는 놈이죠. 귀신을 그 능력에 따라서 하급, 중급, 상급으로 나눕니다. 갑자기 나타나 사람을 놀래키거나 장난을 치는 정도면 하급이고, 사람의 몸에 들어가 혼을 뺏고 다른 이들을 해하는 정도를 중급이라 하고, 사람들 사이에 온갖 저주와 질병을 퍼트리면 상급이라 합니다. 이 놈은 귀신 중에서도 아주 상급 귀신이죠. 이 고약한 것이 어찌 그 마을에 찾아든 건지…”
그는 강약을 조절해가며 또 들숨과 날숨을 적절히 섞어가며 극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했다. 하지만 이장이 말을 끊으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 놈이 무엇이건 그 날 무당이 물리쳤다 하지 않았소?”
“저희 신녀님은 분명히 영배의 몸에서 그 놈을 빼내었습니다. 그리고 숨어버린 그 놈의 기운을 찾아냈죠. 감나무에서 그 놈의 기운을 읽었고 퇴마의식을 진행했습니다. 그건 두 분도 보셨으니 잘 아시겠죠.”
두 사람 모두 그 날의 그 기괴한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했기에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놈의 계략이었습니다. 나무는 미끼였던 겁니다. 하필 그 날 비가 억수로 퍼부었습니다. 그 때문에 신녀님이 그걸 놓치신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비도 그 놈이 그런게 아닐까 의심이 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문제가 심각해지죠. 날씨까지 부린라면 정말 상대하기 위험한 놈이니까요. 어찌 되었든 그 놈은 감나무에 기운을 흘려놓고 본체는 다른 곳으로 숨어버린 겁니다.”
청산유수같은 영길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 놈이 대체 어디있단 말이오? 숨어 있다면 찾아내서 끝장을 봐야 하는 거 아니오?”
새끼를 잃은 아비의 분노는 이제 정체도 모를 귀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 순간 도순의 얼굴에 만족의 미소가 떠올랐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다시 심란한 얼굴로 돌아온 도순이 말을 받았다.
“그게 말처럼 그리 쉽지가 않아요. 그랬다면 내가 남편이 저리 되도록 가만히 있었겠소?”
춘광의 이야기가 나오자 두 사람 다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 뿐이었다. 도순의 말이 계속되었다.
“일단 사람의 몸에 들어가면 몸 밖으로 빼는 것은 쉽지가 않소. 영배처럼 몸이 아주 약해진 상태여야 가능하지. 그래서 귀신이 씌운 사람한테 매질을 하는 것이야. 죽기 직전까지 매질을 하면 비로소 귀신이 정체를 드러내고 그때서야 나같은 사람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이지.”
손해식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하면 되잖소? 뭐가 문제요?”
도순이 그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은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큰 슬픔을 가진 사람처럼. 그녀가 무너지듯 말했다.
“그 놈이 숨은 곳이 문제이지.”
그녀의 애잔한 모습에 이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디에 숨었길래 그러는 거요?”
“그 놈은 그 날 분명히 나와 대적하며 힘이 빠졌소. 그런 상태에서 숨을 수 있는 곳은 정해져 있다고 봐야지.”
도순은 은근히 말을 돌리며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러자 성질이 급한 손해식이 다그쳤다.
“그게 어디오?”
도순은 아주 천천히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 날, 그 자리에 모였던 사람들 중, 가장 어리고 약한 몸… 그 교활한 놈이 그 몸에 숨어버렸소.”
그녀가 두 눈을 감고 눈물을 떨구었다. 아주 무미건조한 눈물이었지만 누구도 그 진위를 의심하지 않았다. 이장이 대경실색하여 물었다.
“잠깐. 그건 보살네 아들래미 아니오?”
도순이 천천히 눈을 떴다. 붉어진 두 눈에선 어떤 감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맞습니다. 내 새끼, 그 작고 여린 몸에, 역귀가 들어 앉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어찌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을 잃은 듯한 공허한 눈빛의 도순을 향해 두 사람은 동정의 시선을 보냈다. 특히나 같은 이유로 자식을 잃은 손해식은 그 심정을 너무 잘 알기에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그가 나지막히 물었다.
“그냥 두면 어찌 되는 거요?”
도순이 시선을 먼 곳으로 던지며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병들어 하나씩 하나씩 죽어 나가겠지.”
손해식과 이장은 착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속내는 입장에 따라 달라졌다. 자식을 잃은 애비는 도순을 한 아이의 어미로 보았고, 마을을 책임져야 하는 어른은 그녀를 귀신 쫓는 무당으로 보았다. 이장이 물었다.
“어찌 해야 되겠소? 방법이 없는거요?”
질문의 의도가 뻔했지만 도순이 바라던 바였다. 결단을 내려주길 바라는 이장의 은근한 눈빛을 보며 도순은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도순은 사람들의 불안과 이기심을 너무나도 잘 이용하는 여자였다.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말과 행동을 보며 그녀는 또 한번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에 감사했다. 겉으로는 심각한 갈등에 빠진 사람처럼 연기하던 그녀가 얼굴을 처연하게 물들이며 말했다.
“제 남편이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을 넘기지 못 할지도 모르죠.”
모두가 숙연해진 가운데 도순이 결단을 내린 듯 표정을 바꾸며 강단있게 말했다.
“이것이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무당의 팔자라면 받아들일 수 밖에요. 그래도 내 새끼는, 내 자식만큼은 꼭 구해야겠습니다.”
이장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잡아야죠. 역귀를 가만히 두어서야 되겠습니까? 허나 두 분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마을 사람들을 위한 일인데 여부가 있겠소? 뭘 하면 되오?”
이장은 흔쾌히 수락하였다. 하지만 손해식은 꺼림칙한 표정이었다. 도순이 무슨일을 시키려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명목을 같다 붙인다 해도 가볍게 승낙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의 내적 갈등을 읽어 낸 도순이 교묘한 언사로 그를 옭아 매었다.
“나는 역귀를 잡고 마을을 구할테니, 마을 사람들은 제 아들을 구해주시길 바랍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도순은 손해식의 지그시 바라보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겠소.”
도순이 두 사람을 구워삶는 것을 보며 영길은 아주 흡족했다. 그리고 스스로의 총명함에 또 한번 감탄하였다. 그가 감독이라면 도순은 감독의 시나리오대로 연기를 하는 배우였다. 벌써 6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지만 보면 볼수록 도순은 명배우였다. 그런 여자를 가지고 단순히 돈만 밝히는 사기꾼에 머무는 것은 뭔가 아쉬웠다. 능력에 걸맞는 자리가 필요했다. 그는 조금 더 큰 꿈을 가져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계획은 시작부터 아주 순조로웠다.
도순이 말했다.
“제가 조용히 남편의 상을 치를동안 두 분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제가 일러주는 것들을 준비해 주십시오. 역귀가 눈치채지 않도록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준비를 마치면 이 몸이 가서 마을을 위한 굿을 할 겁니다. 아주 성대한 굿을…”
연희는 꿈을 꾸었다.
하얀 나비가 날아와 샛노란 꽃잎에 올라 앉았다. 잠시 머물다 다시 날아오른 나비는 샛노란 나비와 함께였다. 두 마리의 나비는 다시 파란 꽃잎 위에 앉았고, 날아올랐을 땐 꽃잎의 색이 섞인 나비가 더 늘어나 있었다. 그렇게 수백가지 색상의 꽃잎 위를 옮겨다니던 나비는 수백에서 수천으로 또 수만으로 불어났다. 그렇게 드넓은 벌판을 빼곡히 채운 나비의 색은 하나도 겹치는 것이 없었다.
수만마리의 나비가 연희에게 날아들었다. 연희는 두 팔을 내밀어 나비가 쉬어갈 곳을 내주었다. 나비는 한마리도 빠짐없이 연희의 몸에 내려앉았다. 연희의 몸이 그 모습 그대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늘위로 떠오른 연희가 밑을 내려다 보았다. 아찔한 높이였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땅 위에서 누군가 손을 흔들며 작별의 인사를 해주었다.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안고 있는 부부였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연희는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연희의 엄마와 아빠, 바로 상희와 춘광이었다.
“가지마세요! 아버지, 어머니.”
연희가 애타게 소리쳤지만 연희의 몸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연희는 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쳤다. 그리고 간절하게 외쳤다.
“안돼!”
그 순간이었다. 연희의 몸에 앉아있던 나비들이 일제히 날개짓을 하며 흩어졌다. 꽃잎이 흩뿌려지듯 하늘을 수놓은 나비떼는 온통 하얀색이었다.
연희는 허우적 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연희의 몸이 땅 위에서 중심을 잡더니 사뿐히 내려앉았다. 연희가 주위를 둘러 보았다. 숲이었다. 온갖 풀과 나무들이 조화를 이룬 초록의 향연이었다. 연희의 마음속에 슬픔과 걱정이 전부 사라졌다. 연희는 행복한 마음으로 숲길을 걸었다. 저 멀리서 사슴 한마리가 연희를 지켜보았다. 슬픈 눈을 가진 어미 사슴이었다. 연희는 사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슴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어딘가로 연희를 안내하였다. 사슴을 따라 이른 곳은 강가였다. 강가 한 어귀에 새끼 사슴이 쓰러져 있었다. 사람이 쏜 화살이 몸통에 박혀 있었다. 연희가 다가가 가엾은 사슴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화살을 뽑았다. 새끼 사슴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연희는 화살이 박힌 자리에 손을 가져다 대고 기도를 했다. 누구에게 청하는 건지도 알 수 없는 기도를.
새끼 사슴이 몸을 일으켰다. 상처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어미 사슴은 고맙다며 연희에게 볼을 부비어 대었다. 연희는 행복했다. 어미 사슴은 새끼를 데리고 숲으로 돌아갔다. 연희는 화살을 움켜쥐고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강 반대편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연희는 지체없이 강을 건넜다. 몸이 흠뻑 젖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힘들게 강을 건넌 연희가 쓰러진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 순간, 날카로운 발톱이 연희의 다리를 할퀴었다. 연희는 힘을 잃고 뒤로 나자빠졌다. 쓰러져 있던 사람은 서서히 호랑이로 변해 연희를 공격했다. 그 크고 무시무시한 이빨이 연희의 얼굴을 덮쳐왔다.
“안돼!”
비명소리와 함께 연희가 눈을 떴다. 민철이 눈을 부비적 거리며 물었다.
“누나. 왜 그래?”
그제야 꿈을 꾼 것을 안 연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민철에게 말했다.
“꿈을 꿨어.”
“무서운 꿈이야?”
연희는 민철이 걱정할까 둘러대었다.
“아니, 좋은 꿈이야. 아버지가 나왔어.”
민철은 졸린 눈을 하고서도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비몽사몽한 얼굴로 물었다.
“정말? 아버지는 하늘나라에 잘 갔대?”
연희가 민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응. 잘 갔대. 어머니도 만나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만났대.”
“정말? 나도 보고 싶은데.”
“아버지가 말썽피우지 말고 잘 있으래. 그래야 지켜주신데.”
“알겠어.”
잠이 덜 깬 채로 대답하는 민철을 연희가 다시 눕혀 주었다.
“조금 더 자. 아직 해 뜨려면 멀었어.”
“누나는?”
“응. 나도 잘게.”
민철은 대답도 듣지 않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연희가 방 안을 둘러보았다. 새벽빛이
어스름하게 방 안을 비추었다.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연희의 책상위에 주인 잃은 피리가 생겨났을 뿐이었다. 연희는 일어나 피리를 집어 들었다. 묵직한 나무의 감촉이 전해지는 피리에 춘광의 손떼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연희는 춘광을 떠올렸다. 피리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였다. 한번도 피리를 불어 본 적 없는 연희는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도 알 지 못했다. 그래도 춘광을 떠올리며 흉내를 내보았다. 천천히 자세를 취해보았지만 연희는 차마 불지 못하였다. 용기가 나지 않아서였다. 이 불안한 적막함을 깨트릴 용기가.
새벽이 지나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다. 4월의 마지막 날, 춘광이 세상을 떠난 뒤 일주일째였다.
잠을 설친 탓인지 수업을 듣는 내내 머리가 무거웠다. 또 끊임없이 꼬리를 무는 잡생각들로 인해 오전수업은 뭘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팔을 베고 책상에 엎드렸다. 다른 아이들은 종소리와 함께 부리나케 급식실로 뛰어갔다. 나는 입맛이 없었다. 며칠 째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았지만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차라리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더 많은 생각을 했다가는 머릿속이 터져버릴 지도 모르겠다. 나는 억지로 눈을 감았다. 손등에 느껴지는 이마의 열기가 꽤나 후끈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이깟 열 좀 나는게 뭐 대수라고. 아버지는 훨씬 더 큰 고통 속에서 돌아가셨을텐데… 머리만 대면 바로 잠이 올 줄 알았는데 또 잡생각이 밀려왔다.
민철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민철이 병원을 따라나섰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간 곳은 병원이 아니라 노래방이라 하였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물었더니 민철은 그 날 있었던 일을 전부 말해주었다. 오락가락 하는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골자는 이것이었다.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간다던 아버지가 노래방 안에서 쓰러져 계셨다. 민철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그런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였다. 민철이 잘못 보았거나 아니면 제대로 보았거나. 민철은 죽어도 잘못 본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쓰러졌다던 그 날, 그로부터 하늘나라로 가신 그날까지, 나는 아버지가 어디에 계셨는지 알지 못한다. 특별치료를 위해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다는 것이 어머니의 말이다. 그때 난 아버지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어머니는 안된다고만 하였다. 아이들은 갈 수 없는 위험한 곳이라는 이유였다. 어머니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난어디에든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어디에도 내 말을 들어 줄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가 무사하길 빌고 또 비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나를 낳아주신 엄마와 하느님에게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모르겠다. 민철인 내가 앉은 채로 잠든 줄 알고서 흔들어 깨웠다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민철의 말을 빌리자면 난 세 번이나 식사시간을 거뤘다. 한나절 이상을 앉은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 말도 쉽사리 믿어지지 않는다. 만약 사실이라 해도, 내가 정말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해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아무도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내게 마지막 인사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나가셨다. 나는 죽은 아버지의 얼굴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간청했지만 어머니는 끝내 승낙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내게 아버지의 모습을 아름답게 기억하라 하였다. 나는 그날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쓰러지기 전 날, 내게 엄마의 바이올린 연주곡을 들려주시던 그 행복한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버지는 엄마가 보고싶어 그렇게 하늘나라로 가셨나 보다. 나는 그 카세트 테잎을 아버지와 함께 보내주었다. 하늘에서도 꼭 나를 잊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제 나와 민철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지금의 어머니가 우리의 삶을 지켜 주실까?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난 수다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오늘 우금리에서 엄청 크게 굿을 한데.”
“거긴 영배네 동네잖아.”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우리 반에서 제일 말썽이 많은 남자애들이었다. 벌써 점심을 다 먹은 모양이다. 밥을 가장 빨리 먹는것이 장난꾸러기의 불문율 중 하나인가 보다.
“맞아.”
“그 때 무당이 와서 영배 잡아간거라며?”
저 아이는 무당을 사람 잡아먹는 식인종 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게 우리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나까지 그런 취급을 당하게 되겠지. 무당은 그런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지만 솔직히 나도 무서운 걸. 그 소름끼치는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똑같겠지. 무당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선생님의 말을 믿고 싶다. 그렇지만 더더욱 혼란스럽다. 어머니가 무당이라는 사실을 다른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하자는 것이 앞뒤가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 이 순간은 비밀을 지켜준 선생님이 고맙게 느껴진다.
“아냐. 그 때 영배 집으로 귀신을 잡으러 왔다가 놓쳐 버렸데. 그래서 귀신이 영배를 잡아갔는데 오늘 복수하려고 하는 거래.”
“같이 가자. 우리 엄마가 절대 오면 안된다고 했는데, 그래도 재밌잖아. 큭큭”
“싫어. 괜히 갔다가 귀신한테 당하면 어떡해.”
“겁쟁이!”
어머니가 아침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늘은 많이 늦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지금 보니 굿판을 벌이려는 모양이었다. 무당이 굿을 하는 건 신기할 것 하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장례를 치룬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어떻게 그럴 정신이 있는걸까? 어른이 되면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걸까? 아버지는 언제나 가족의 행복을 우선으로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아닌 것 같다. 아니다. 용진오빠를 대하는 것을 보면 어머니도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틀림없다. 어쩌면 나와 민철이를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나와 민철이는 어떻게 해야 되는걸까?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는 걸까?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어 두려움 뿐이다.
머릿속에 생각벌레가 들어 앉았다. 머리가 점점 무거워진다. 이마의 열은 점점 더 뜨거워진다. 온몸에 기운이 없다. 분명 난 엎드려 있는데 어지러움이 느껴진다.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이 울렁거린다. 멀미가 나는 듯 하다. 죽음의 멀미가. 죽음이 내 주위에 넘실거린다. 믿기 힘든 일들이 자꾸 나를 덮쳐온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교통사고, 어머니의 신들린 모습, 불쌍할 정도로 말라버린 영배, 피를 흘리는 나무,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정말 일어났던 것처럼 생생한 꿈. 이 모든 것들이 나를 괴롭힌다. 나는 더이상 버틸 수가 없다. 정신이 희미해진다. 내 몸이 책상 옆으로 스르르 무너진다.
“연희야, 괜찮니?”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눈을 뜰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