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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땅구 16화

땅구

1. 축복과 저주(16)

by 유봉

연희는 뒤척이며 잠에서 깨어났다. 깊은 잠에 취한 것인지 몽롱한 정신이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누운 채로 몸을 돌린 연희는 방 안에 썰렁한 기운이 맴돌자 의아함을 느꼈다. 분명 누군가가 일어나라며 몸을 흔들어 깨웠는데 아무도 없으니 묘한 기분이었다. 민철이 장난을 친 건가 하여 조용히 민철을 불러본 연희는 다시 한번 방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또 이상한 꿈을 꾸었나 보다 생각한 연희는 꿈 속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낯선 남자가 거친 손길로 여린 몸을 흔들며 일어나라 외쳤다. 그 뿐이었다. 그가 누구였는지, 왜 그리 다급했는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깨웠던 것이 자신인지 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뒤끝이 개운치 않은 기분이었지만 누군가 강제로 지워버린 듯 떠오르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불을 걷고 천천히 일어나 앉은 연희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 밖으로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약 기운에 취해 정신없이 자버린 모양이었다. 도순이 준 약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효과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동안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던 것이 한방에 해결되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무거웠던 머리는 한결 나아져 있었다. 하지만 먹지 않겠다는 약을 강제로 먹인 것은 딱히 고맙다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연희는 느닷없이 호통을 치던 도순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며칠 푹 쉬어라.”

“괜찮아요.”

“또! 또! 왜 넌 항상 고분고분 말을 듣는 척 하면서 사람 속을 긁어 놓는 것이냐.”

“죄송해요. 어머니.”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에는 절대로 토를 달지 말거라.”

연희는 도순이 왜 그리 화가 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며칠동안은 학교에 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희는 도순의 화가 풀릴 수 있도록 집안 청소라도 해놓아야 겠다 생각했다.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고서 일어나려던 연희는 오른쪽 팔뚝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머리맡에 놓인 스탠드를 켜고서 팔을 확인했지만 평소에 잠옷처럼 입고 지내는 연노랑 티셔츠 위에는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소매를 걷어붙여 본 연희는 놀란 얼굴이 되었다. 팔꿈치 바로 아래에 누군가가 움켜쥐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얼마나 억세게 잡아야 이리 될 수 있을까. 벌겋게 달아오른 손자국은 마치 손도장을 찍은 듯 선명했다. 연희는 손자국 위에 왼손을 가져다 대 보았다. 그 크기가 분명 어른의 것이었다. 도순이 이리 한 것일까? 어떻게 하면 이런 자국이 남을 수 있을까? 의문만 더해가던 중 연희는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설마… 꿈이 아니었단 말이야?

연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심스런 눈으로 방안을 살펴보았다.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수상한 흔적이 포착되었다. 방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레고 조각들이었다. 조각 조각들을 따라 시선을 옮겨가니 민철의 침대 근처에 비행기 모형의 레고가 떨어져 있었다. 민철이 오랜시간을 공들여 만들어 놓은 비행기는 두 날개가 반쯤 부러지고 꼬리는 산산조각나 여기저기 파편이 널부러져 있었다. 연희는 비행기를 집어들고서 곧바로 방문을 열었다.

“민철아. 이민철!”

거실로 나온 연희는 우두커니 서서 민철을 불러댔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당연히 있어야 할 민철이 보이지 않자 연희는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이내 민철이 장난을 치는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조용히 화장실부터 베란다와 안방까지 드나들며 장농 안과 침대 밑까지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민철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연희는 큰소리로 외쳤다.

“이민철. 장난 그만해. 누나가 졌어. 그만 나와.”

그 순간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반갑게 돌아 본 연희는 이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용진이 제 방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조용히 좀 해.”

시끄럽게 구는 연희가 못마땅 했는지 용진은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오빠. 민철이 못 봤어?”

용진이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몰라.”

연희는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오빠 왔을때도 민철이 집에 없었어?”

“몰라.”

용진의 대답에 연희는 이상함을 느꼈다.

두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연희는 도순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민철이 집에 있었고 용진은 학교에 있었다. 용진이 언제 귀가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 민철을 봤으면 본 것이고, 못봤다면 못 본 것이지 모른다는 대답은 무어란 말인가. 연희는 그것이 민철이 어디있는지 알고 있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민철이 어디갔어?”

“모른다고 했다.”

연희와 용진은 잠시동안 눈빛으로 기싸움을 벌였지만 이내 연희가 물러섰다. 연희가 용진을 지나쳐 현관으로 가려하자 용진이 냉큼 연희의 티셔츠 목덜미를 붙잡았다.

“어디 가려고?”

“밖에 나가서 민철이 찾아보게.”

연희가 용진의 손을 살며시 뿌리치려 했지만 용진이 힘을 쓰자 당해낼 수 없었다.

“못 나가.”

연희는 제자리에 얌전히 멈춰섰다. 그러자 용진이 연희를 놓아주었다. 연희는 용진을 향해 돌아서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밖에 못 나간다고.”

연희는 용진의 심술병이 다시 도진거라 생각했다. 춘광의 죽음 이후로 한동안 잠잠하던 용진이었지만 그 고약한 성격이 쉽게 달아날 리 없었다. 연희는 장난칠 기분이 아니라는 듯 눈에 잔뜩 힘을 주며 물었다.

“왜?”

“엄마가 꼼짝 말고 집에 있으래.”

용진은 이 집안에서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존재였다. 그러지 않아도 제 세상인데 무엇하러 나쁜 머리를 굴려가며 힘들게 거짓말을 하겠는가. 연희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의아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민철이는 어디 간건데?”

“모른다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용진을 연희는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연희는 용진을 무시하고 현관 아래로 내려섰다. 그러자 용진이 다시 연희의 옷을 잡아채었다. 티셔츠 목이 찢어져 버릴 듯 늘어나자 연희가 티셔츠 어깨를 붙잡고 사정했다.

“이거 놔줘. 요 앞에 놀이터만 돌아보고 올께.”

“안돼.”

용진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자 연희는 갑자기 불안함이 엄습했다. 민철을 가지고 못된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 것이다. 연희는 안간힘을 쓰며 언성을 높였다.

“제발 이것 좀 놔줘!”

용진이 짜증스럽게 한마디를 던졌다.

“그 새끼 밖에 없다고!”

연희는 이제서야 용진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왜? 용진이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한단 말인가.

연희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연희가 차가운 눈빛으로 용진을 바라보았다. 옷깃을 놓아 준 용진은 뭐 어쩔거냐는 표정으로 넘어가려 했다.

“어딨는지 아는구나? 어딨어 우리 민철이?”

“몰라.”

용진이 이렇게까지 발뺌을 하는 상황이라면 연희는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어머니랑 같이 있는거야?”

“아니야.”

어설픈 거짓말로 넘어가려는 용진을 연희가 날카롭게 몰아붙였다.

“뭐가 아니야? 모른다며?”

더이상 상대해봤자 좋을게 없다고 판단했는지 용진은 거친 말로 엄포를 놓았다.

“에이 씨발 그만 좀 물어봐라. 나도 잘 모르니까. 아무튼 넌 엄마 돌아올 때까지 밖에 못 나가.”

“그러니까 왜?”

용진은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가 오늘은 밖에 나가면 안 좋은 일 생기니까 집에 있으라고 했다고.”

용진이 화를 내든 말든 연희는 신경쓰지 않았다. 머릿속엔 오로지 민철의 걱정 뿐이었다.

“그런데 민철이는 왜 데리고 갔어?”

용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얼굴에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음이 역력히 드러났다. 그것이 좋지 않은 일임은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연희는 병원밖에서 도순과 은실이 나눈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다. 은실은 굿을 보러 가도 되겠냐 물었고 도순은 악귀가 날뛰는 곳에 함부로 발을 들였다가는 큰 일이 날수도 있다며 거절했다. 그런 곳에 왜 민철을 데려가느냔 말이다. 연희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스릴 수 없어 용진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던 연희는 이내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용진의 얼굴에 도순의 얼굴이 겹쳐보인 것이다. 귀신같은 분장을 하고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칼자루를 쥔 그 모습이. 한번 휩쓸려 오기 시작한 두려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망령같은 도순의 모습은 천장에 닿을 듯 거대하게 부풀어 올라 보랏빛으로 또 녹색빛으로 기괴하게 얼굴을 물들이며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에는 토를 달지 말거라!” 무시무시한 호통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연희는 가위에 눌린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산더미처럼 커진 공포는 심장을 짓눌러 터뜨려 버릴 것만 같았다. 도순이 무슨 술수를 부려놓은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몸이 허해진 탓일까.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 상태가 계속 되었다가는 정말로 숨이 멎어버릴지도 몰랐다. 연희는 도순의 망령을 떨쳐버리기 위해 두 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도순의 환상은 연희의 머리속까지 파고들어 덩실덩실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얼굴을 서서히 들이밀며 압박해 왔다. 연희는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무언가에 촘촘하게 결박을 당한 듯 힘을 쓸 수 없었다. 얼른 다시 눈을 뜬 연희는 더욱 끔찍해진 환상에 기겁을 했다. 도순의 몸뚱아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터질듯 부풀어 오른 배와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그것은 연희가 가장 무서워 하는 거미의 모습이었다. 거미와 인간의 끔찍한 혼종이 된 도순의 망령은 두 개의 앞다리를 휘두르며 연희를 위협했다. 연희는 자신의 몸이 하얀 거미줄에 칭칭 감겨있음을 확인했다. 도순에게 잡아먹히기 일보직전이었다. 연희는 거미줄을 벗어나기 위해 두 손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보았다. 손가락 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연희는 곧 왼손 안에 무언가가 있음을 느꼈다. 조금씩 더듬어 본 연희는 그것이 민철의 레고 비행기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지금까지도 그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연희는 현관 앞으로 쪼르르 달려나와 비행기를 자랑하던 민철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민철의 모습은 사라지고 침대 밑에 덩그러니 놓여진 부서진 비행기만 남게 되었다. 연희는 이제야 깨달았다. 부서진 비행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강제로 끌고간거야.’

연희는 도순 앞에서 벌벌 떨고 있을 민철이 떠올라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이 이렇게 무서울 진데 훨씬 더 겁이 많은 민철은 오죽하겠는가. 연희는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두 손 가득 힘을 주었다. 왼손에 짜릿한 통증이 밀려왔다. 반쯤 부서진 비행기는 여린 손바닥을 뚫어낼 듯 날카롭게 느껴졌다. ‘제발 도와줘.’ 연희의 마음을 알았는지 비행기가 작은 울음소리를 내는 듯 하였다. 그러더니 부러진 비행기 날개가 날카롭게 자라나 작은 단도의 형태를 띠었다.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검날을 보며 연희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속에서 뜨거운 용기가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지체없이 검날을 올려치자 순식간에 몸을 감싼 거미줄이 잘려 나갔다. 몇 번의 동작으로 가볍게 거미줄을 흩어버린 연희는 끔찍한 얼굴로 포효하는 도순의 망령을 향해 검을 던졌다. 푸른빛의 날이 망령을 반으로 갈라놓으며 숨막힐 듯 끔찍했던 환상은 허무하게 끝이나 버렸다.

“야이씨! 뭐하는 거야?”

성난 외침에 연희는 정신을 차렸다. 두어 걸음 앞에서 용진이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고 그 뒤로 완전히 박살난 민철의 비행기가 거실 바닥을 어지럽혀 놓았다. 연희가 던진 장난감 비행기를 용진이 가까스로 피한 것이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서 있던 연희가 느닷없이 공격을 해오니 용진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용진은 잘됐다 싶어 양 팔의 옷을 걷어붙였다. 그렇지 않아도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평소 연희가 딱히 잘못을 한 것은 없었지만, 거칠고 제멋대로인데다 생각이 짧고 악질적인 용진은 누구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굴복을 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이었다.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개도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이 발길질을 해버리는 놈이, 연희에게는 참으로 오랫동안 제 성질을 드러내지 못했으니, 쌓인 울분이 가슴속을 꽉 틀어막고 있던 형국이었다. 그 해묵은 감정을 날려버리려 용진이 거친 입을 놀려댔다.

“이런 씨팔. 정신 나갔냐? 너도 애비없는 새끼 됐다고 막 나가는 거야?”

연희가 매섭게 노려보았다.

빨려들어가 버릴 듯 깊고 공허한 눈빛을 마주한 용진은 다음 행동을 옮기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겁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상대는 어디를 어떻게 뜯어 보아도 연약하기 이를데 없는 여자 아이였다. 독하게 손을 쓴다면 단 몇 초만에 바닥을 뒹구는 굴욕을 맛보게 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또 다시 무기력함과 함께 속이 뒤집어지는 거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왜 연희 앞에만 서면 발가벗겨지는 느낌이 드는건지 용진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 요상한 기분을 씻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연희를 완전히 굴복시키고 싶은 용진이었다. 그러나 매번 화를 내려 하다가도 연희의 얼굴을 보면 순식간에 의욕이 사라져 버렸다. 그 뿐 아니라 치부를 들켜버린 것 같은 수치심이 밀려왔는데, 용진은 그 더러운 기분을 참아내기가 어려웠다. 용진이 유독 민철을 괴롭히며 못살게 굴었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용진은 연희가 주는 이 불쾌하면서도 불가사의한 느낌에 대해서 도순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도순은 굉장히 기분이 나빠져 춘광이 보는 앞에서 연희를 쥐잡듯이 잡았었다. 연희의 기를 꺾어놓기 위함이었는데, 도순은 용진이 느끼는 것이 열등감이라 판단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연희가 갖춘 풍모는 도순이 보기에도 보통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세상에 드문 것이었기 때문이다. 도순은 이런 연희의 고귀함을 더욱 가꾸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조금씩 지워버려야 겠다 마음먹었다. 오로지 용진을 위해서 말이다. 이때부터 연희를 향한 도순의 괄시는 반복적으로 또 노골적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이 정말 열등감이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차원의 감정인지, 열세살의 용진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한가지 만큼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저 눈빛 때문이야.’

아무리 매섭게 쳐다보아도 전혀 매섭지 않은 저 눈빛, 하지만 그 어떤 두려움도 능히 감당해낼 것 같은 눈빛. 폭풍도 해일도 일시에 잠재울 것 같은 심연의 눈빛, 얼음도 불꽃도 한순간에 무(無)로 돌려버릴 듯한 태초의 눈빛. 그 속에서 미지의 힘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느끼는 것은 그저 용진의 착각이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연희는 패륜적인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용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두려움에 떨며 자신을 찾고 있을 민철을 생각하면 용진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용진에게서 시선을 거둔 연희는 신발을 찾아 신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용진이 잽싸게 달려와 현관 앞을 막아섰다.

“비켜.”

“안돼.”

용진은 연희의 눈을 쳐다보지 않기로 작정한 듯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었다.

“비키라고!”

연희는 용진의 팔을 붙잡고 앞으로 잡아당겼다. 그러나 고작 용진의 자세를 낮추게 만든 것이 전부였다. 오히려 더 안정적인 자세가 된 용진은 더이상 꼼짝하지 않았다. 그래도 연희는 포기하지 않고 매달렸다. 연희가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힘을 쓰자 자연스레 용진과 눈이 마주쳤다.

용진이 재빨리 눈길을 피하더니 한순간에 팔을 뿌리치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지금 가면 안된다고!”

연희가 일어서자 용진은 다시 눈을 피해 고개를 떨구었다. 그 모습을 이상하게 쳐다보며 연희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 안해. 아무튼 일 망치고 싶지 않으면 집에 가만히 있어.”

연희의 표정이 급격히 안좋아졌다. 막연했던 불안감이 점점 실체를 갖추며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일곱살 짜리 아이가 무슨 일에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것도 귀신을 쫓는다는 굿판에서.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것이 좋은 일은 아닐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일을 용진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순간부터 연희에게 용진은 방관자가 아니라 공모자였다. 연희가 원망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을 망쳐?”

용진은 말이 없었다.

“말 안할거면 비켜줘.”

용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연희는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말해주면 얌전히 있을거야?”

연희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알았어.”

용진은 시선을 내리깐 채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민철이한테 귀신이 씌였다고 했어. 그래서 그걸 쫓아내야 한데. 엄마가 알아서 잘 할 거니까 집에서 기다려. 너가 가면 우리까지 위험해진다고 했단 말이야.”

용진은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도순이 제 자식마저도 속인 것이었다.

“으아아악!”

악에 바친 비명소리가 울려퍼지자 용진은 고개를 들 수 밖에 없었다. 연희가 울고 있었다. 바닥에 눈물방울을 뚝뚝 흘려대며 흐느끼던 연희는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용진은 괜히 말을 했나 싶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는 용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 앞을 지키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찾아왔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연희가 돌발행동을 한 것이다.

쪼그려 앉아 눈물을 흘리던 연희가 느닷없이 몸을 일으켜 용진을 들이받았다. 방심을 한 용진이 중심을 잃고 옆으로 넘어졌다. 그 사이 연희는 도어락을 해제하고 문을 열었다. 하지만 재빨리 일어난 용진에 의해 제지를 당했다.

“도와주세요!”

연희가 문 밖으로 크게 소리를 치자 당황한 용진이 한 손으로 연희의 입을 틀어막았다. 고개를 흔들어 저항을 하던 연희는 이내 용진의 손바닥을 깨물어 버렸다. 곧바로 용진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용진의 손에서 풀려난 연희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연희는 뒤도 안보고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고작 한 걸음 뿐이었다. 용진의 우왁스런 손길에 머리채를 잡혀버린 연희는 산짐승처럼 끌려 들어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서둘러 현관문을 닫은 용진이 연희를 등진 채로 불량스런 말을 내뱉었다.

“씨발년. 얌전히 있는다며?!”

손바닥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확인한 용진은 화가 잔뜩 치밀어 올랐다. 용진은 무언가 결심을 한 듯 한숨을 내쉬더니 윗옷을 훌러덩 벗어버렸다. 상반신을 노출한 용진은 윗옷으로 손바닥의 피를 대충 닦아내더니 그대로 연희에게 던지며 말했다.

“이거 머리에 뒤집어 써. 안 그러면 네 눈깔 뽑아버릴거야.”

정말 열세살 아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잔인하고 차가운 협박이었다. 연희는 말없이 일어섰다. 그러나 옆에 떨어진 용진의 옷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용진이 다시한번 차갑게 말했다.

“장난 아니야. 니 애비처럼 장님되고 싶지 않으면 얼른 뒤집어 써.”

연희와 눈을 맞추지 않으니 용진은 정말 기가 꺾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 용진의 속내를 모르는 연희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뭐하자는 거야?”

용진은 시선을 내리깐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엄마 말이 맞네. 네 년은 진짜 말을 안 쳐 듣는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진은 연희를 향해 날아올라 그림같은 태권도 발차기를 시전했다. 가슴팍을 얻어맞은 연희는 뒤로 밀려나 넘어지며 거실바닥에 쳐박혔다. 연희는 심한 통증을 느끼는 듯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하였다. 용진이 윗옷을 집어들고서 연희에게 다가갔다. 연희의 얼굴 위에 티셔츠를 툭 던져놓은 용진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연희의 머리에 발길질을 가했다. 머리를 대차게 걷어차인 연희는 반사적으로 두 손을 들어 머리를 보호했다. 차마 얼굴을 덮은 티셔츠를 걷어치울 생각은 하지 못한 연희는 가녀린 외침으로 힘겹게 저항을 할 뿐이었다.

“하지마!”

“이 멍청한 년아.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너가 가면 나까지 피해가 온다잖아!”

용진은 연희의 머리에 티셔츠를 제대로 씌울 작정이었다. 그렇게 얼굴을 가린 연희의 팔을 치우기 위해 움켜잡은 순간이었다.

‘당장 그만두어라. 네 놈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줄 아느냐!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멈추고 무릎을 꿇고 빌어라.’

늙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용진은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용진은 귀신에 홀린 것인가 하여 연희를 쳐다보았다. 연희는 붙잡힌 팔뚝에 뜨거운 통증을 느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의문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던 그 팔뚝인 모양이었다. 연희의 팔을 놓아준 용진은 더이상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이성을 상실한 용진은 다시 연희의 팔을 붙잡고 힘을 썼다.

‘이 놈! 절대로 그래선 안된다.’

다시 들려온 목소리에 놀란 용진이 연희의 팔을 놓자 목소리가 멈추었다. 용진은 이제야 겁이 나는지 연희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이런 씨발. 너도 귀신에 씌인거야?”

용진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자 그동안 연희 앞에서 기가 죽었던 이유가 확실하게 설명이 되었다. 용진은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귀신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귀신이 장난질을 친다는 말인가. 용진은 본떼를 보여주겠다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 잡자 겁은 달아나고 객기가 주체없이 발동을 하였다. 용진은 얼른 연희의 얼굴에 티셔츠를 뒤집어 씌우고는 티셔츠 팔을 목에 감아 매듭을 지어버렸다. 연희가 계속 반항을 했지만 그때마다 가차없는 주먹질이 이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용진은 바닥에 누운 연희를 향해 무차별적인 발길질을 시작했다. 연희의 고통스런 비명이 터져나왔지만 용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잔악한 면모는 용진에게 도순의 피가 섞여있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용진은 정체모를 귀신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미친듯이 날뛰었다. 정말로 귀신을 제압하고 있다 믿은 탓에 기세는 점점 등등하였다. 또한 그동안 연희에게 알게 모르게 주눅들었던 더러운 기분과 울분을 한꺼번에 씻어내려는 듯도 하였다.

연희는 속수무책이었다. 얼굴과 가슴, 배를 가리지 않고 날아드는 발길질에 아픔도 제대로 느끼지 못할 만큼 정신이 없었다. 언제 이런 매질을 당해보았겠는가. 그럼에도 연희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말려줄 사람 하나 없다는 현실에 서러움이 밀려왔고, 그것은 곧 민철의 걱정으로 이어졌다. 민철은 어쩌면 이보다 더 안좋은 상황에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곳에도 민철을 구해 줄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민철에게 손을 내밀어 줄 사람은 오로지 자신뿐이라는 생각에 연희는 호랑이굴에 끌려간 것처럼 정신을 바짝 차렸다.

마침내 용진의 발길질이 멈추었다. 1분 남짓한 시간동안 체력을 완전히 소진한 용진이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용진은 아직도 분이 덜 풀렸는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그것이 귀신을 향한 것인지 연희를 향한 것인지 이제는 구분도 되지 않았다.

“이 병신아. 별것도 아닌게 날뛰지 마라. 진짜 죽여버린다.”

용진은 힘없이 늘어져 끙끙 앓고 있는 연희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제 방에 가둬둘까 생각했지만 그럼 창밖으로 무슨 난동을 부릴지 알 수 없었다. 좋은 생각이 난 용진은 연희의 손목을 붙잡고 바닥을 질질끌어 화장실 앞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화장실 문을 열고서 연희를 짐짝처럼 우겨 넣었다. 용진은 재빨리 창고에 가 얇은 밧줄을 가져왔다. 연희가 제 방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갈 때 사용했던 그것이었다. 용진은 화장실 문고리에 밧줄을 묶고는 팽팽하게 잡아당겨 도순의 방 문고리에 걸어 매듭을 지었다. 양쪽 문 모두 열리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너도 귀신도 엄마 올때까지 거기 얌전히 있어. 소란 피우면 그땐 정말 눈깔을 파버릴거야.”

어둡고 차가운 욕실 바닥에 엎어져 있던 연희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뒷골목 양아치들이나 할 법한 섬뜩한 경고가 들려왔지만 연희는 한 귀로 흘려버렸다. 연희는 얼굴을 감싼 검은 티셔츠를 천천히 벗겨내었다. 어둠 속에서도 진득한 코피가 옷에 묻어 늘어지는 느낌이 전달되었다. 한손으로 쓰윽 코피를 닦아낸 연희는 몸을 천천히 움직여보며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통증이 상당했지만 다행히 크게 잘못된 곳은 없는 듯 했다. 조심스럽게 일어선 연희는 어둠속을 찬찬히 더듬어 변기를 찾아냈다. 그리고 두어걸음 떨어진 곳에 세면대를 더듬었고 다시 그 옆에 수납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대강 위치를 파악한 연희는 변기 뚜껑을 닫고 그 위로 조용히 올라섰다. 그리고 수납장과 천장 사이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찾아냈다. 담배와 라이터였다.

용진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일년도 더 지난 일이었다. 도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거라 연희는 생각했다. 용진이 집에 들어올 때면 담배 냄새를 풀풀 풍겨대는데 그것을 도순이 모를 리 없었다. 도순이 그것을 허락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연희는 아마도 아닐거라 추측했다. 그랬다면 용진이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태우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용진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었다. 도순이 신당을 차린 뒤부터 집안의 청소는 대부분 연희의 몫이었기에 우연히 찾아낸 것 뿐이었다. 특히나 화장실은 연희가 도맡아서 청소를 하는 곳이었기에 담배에 대해 아는 것은 오로지 연희 뿐이었다. 그 사실은 연희는 굳이 발설하지 않고 두었던 것이다. 딱히 누구에게 말해 보았자 득이 될 만한게 없었으니 말이다.

라이터에 불이 붙자 주위가 환하게 드러났다. 연희는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하고 또 처참했다. 단정했던 머리는 집나간 삽살개마냥 헝클어져 버렸고, 퉁퉁 부어오른 콧잔등 아래로 코피 자국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하얗고 고운 얼굴은 불에 그을린 듯 시뻘겋게 달아올라 멍자국이 심하게 남을 것 같았다. 연희는 입안 가득 피맛이 느껴지자 세면대에 침을 뱉었다. 핏물이 한움큼 쏟아져 나왔다. 연희는 다시 거울을 보며 치아를 살폈다. 다행히 치아에 이상은 없는 듯 했다. 그렇게 거울을 들여다 보는 연희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을 뿐, 연희의 두 볼을 타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태어나 처음 당해보는 수모에 발가벗겨진 듯한 수치심이 밀려든 것이다. 그렇게 통증보다 더 큰 모멸감이 연희를 괴롭혔다.

변기에 걸터 앉은 연희는 라이터를 껐다. 곧바로 어둠에 잠식당했다. 연희의 머릿속도 그와 같았다. 칠흑의 우주처럼 광활한 어둠속에서 연희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도와줘.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민철이를 도와줘.’

마음속으로 간절한 바램을 떠올리는 순간, 연희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왜 그것이 떠올랐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연희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점점 더 선명해지며 연희를 향해 다가왔다. 꿈속에서 보았던 어미 사슴의 눈빛이.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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